'안녕하세요?'

너, 한국말은 어디서 배웠니.

by 박하


안녕하세요?


미간의 근육이 다시 팽팽해진다. 해발 3천 미터, 비가 이미 한 번 거쳤고 무수한 돌계단의 끝 집. 시내와 이어지는 큰 도로에서부터 꼬박 사흘을 걸어온 길. 꽃을 쥔 소녀에게 '안녕하세요.'를 듣는다. 스스로가 짐짓 강대국의 시민이 된 마냥 굴고 싶지 않아 못 들은 척했다. 외면해버렸다.


납득할 수 없었다. 깨끗한 물 한 병 구하기 힘든 외딴집 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칠 이유는 없었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없었다.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언짢았다. 그래서 나아지는 것은 도대체 뭐지? 십여 년쯤 전에 방문한 어느 한국인이 ‘미래의 한국인에게 안부를 전해 줘. 그럼 이만!’ 하고 떠났다던가.


DSC03419.jpg Chomrong, Nepal. (2016)


꽃을 달아줬다. 무사히 산행을 마치길 기원하며. 인사말로 발걸음을 잡은 뒤 소녀는 그랬다. 자칫 믿을 뻔했다. 뒤에 초콜릿을 달라는 말만 않았더라면. ‘안녕하세요.’ 신보다 초콜릿의 달콤함을 사랑했던 소녀가 반드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문장이 되었겠지. 주머니엔 사탕이 있었으나 주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건네는 일을 말릴 순 없었다. 나는 사회운동가가 아니었고, 소녀는 초콜릿을 받았다. 무수한 걸음으로 학교를 가느니, 집 옆에 난 꽃 한 송이를 꺾어 건네고 끼니를 때우는 편이 낫다 여긴 걸까.


인사말로만 친다면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소녀를 가르쳤을까.




네가 한국말을 했더라면 오지 않았을 거야.


여자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건 일종의 부탁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왔을 때 그는 한국말이 늘었다. 고작 한 달 남짓, 그 친구는 언어를 괜찮게 다루었다. 유창하진 않아도 여느 호객꾼들과 비슷한 정도로. 되려 불쾌할 거야. 하도 많이 당해서.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했다.


DSC02948.jpg Pokhara, Nepal. (2016)


난 안녕하지 않다. 그놈의 인사는 억양이 제멋대로였다. ‘니하오마’와 ‘곤니찌와’로 나의 국적을 짐작할 때의 그 폭력성이란. 실례가 되는 추측이 남기는 건, 그 어떤 편안함도 분명 없다. 그러나 나는 그걸 극복할 방법을 모른다. 물어보지 말라고 할 수도.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그 사이에서 외줄 타기 하는 나를 건져낼 방법을.


난 뒤도 돌아보지 않는 이방인이 되었다. 어설픈 인사도 그렇지만 가끔 정말 나에게 용건이 있는 인사말까지 무시할 만큼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다. 가끔 보이는 어떤 바보들은 날 귀머거리라 놀리기도 했다. 그 말에 가만히 있지 않았던 시절에서 가만히 있을 시절이 오기까지 온갖 사람들의 안녕하세요를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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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물어뜯어.


주머니를 열어 보여준다. 난 너보다도 가진 것이 없어. 사실 있어도 줄 생각이 없지만. 바닥에 침을 뱉는 모양새가 마치 내 얼굴에 뱉고 싶었다는 듯 그런데, 옆구리에 낀 아이는 우유 먹을 나이가 한참 지났다. 젖병을 들고 불쌍한 척하는 모습에 돈을 쥐여줄 수 없어 안녕하세요를 가르쳐 줬다면. 심지어 돈까지 쥐어주고 안녕하세요를 가르쳐 줬다면 그 사람은 지금쯤 지구를 구원했어야 할 텐데.


남극에서도 들릴 듯, 익숙한 인사말은 가슴속에 메아리친다.


한국어를 가르쳐 한국인을 상대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쳤다면 그녀는 몇 나라의 언어를 더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미 너보다 더 이른 시점에 내가 왔었으니 잘난 척 말라.’ 앞서 거쳐간 사람의 자랑스러운 어떤 징표처럼 혹은 깃발처럼, 어설픈 억양의 안녕하세요가 들려 마음속에 꽂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