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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방인

여행 슬럼프

문득 여행이 지겨워졌을 때.

by 박하


거리가 소란하다.


내가 그 약쟁이 놈의 목덜미를 잡고 오십 미터는 족히 걸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더러는 마약을 하러 온다지만 난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수없이 망가지는 녀석들을 봐서일까. 평소라면 무시하고 지나쳤을 상황에 흥분을 한 건, 따라오며 일삼는 조롱도 한몫했으나 우울한 내 기분에 취해 그랬다. 이 새끼 잘 걸렸다,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녀석을 힘껏 끌고 간다. 그리고 경찰이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Mcleodganj, India.(2016)


국기를 사야지. 다시 또 배낭에 하나의 깃발이 늘겠지. 그녀는 무슨 의미냐고 물었던 것 같다. 가방에 수 놓인 수많은 국기는 여행을 오래 했을 법한 아무개들의 배낭보다는 형편없지만, 적당히 많다. 배낭을 다 뒤덮게 되면 난 여행을 관둘까, 아니면 배낭을 새로 하나 마련하게 될까.


의미는 없어. 허세용이야.


이깟 허세쯤 부려도 어떠냐 싶어 그랬다. 그래, 이게 무슨 의미라고 난 땡볕에 배낭을 메고 반 시간 정도를 헤맸나 보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깔끔하고 작은 국기를 산 뒤, 가방에 처 박아 넣어 놓는다. 그러나 여태 가방 한편에 처박혀 있을 뿐 아직 박아 넣진 않았다. 국기를 늘리는 것이 정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페이스북을 열었다. 내가 목매는 sns. 여기선 휴대폰 인터넷 사용료가 한 달에 약 2000원 정도. 물가로 따져봤을 때 결코 작은 돈은 아니지만, 데이터를 펑펑 쓰길 아끼지 않는 이 어플에 사진 한 장 덩그러니 올려놓고 일침인 듯 글을 적어 놓으니 제법 그럴 듯하다. 좋아요를 한참이나 살피다가 이내 화면을 눈에서 뗀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난 정말이지 미련한 여행꾼이 아닌가.


사람들이 내게 관심이 없음을 실감한다. 불편함을 지향한다는 나의 외침은 그냥 ‘불편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가만 생각해보면, 매일 보는 거리가 지겨워질 때쯤 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음악을 들었다. 꽤 값이 나가는 좋은 이어폰을 애지중지 아끼는 것과 별개로, 난 홀로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순식간에 느꼈다는 걸. 그래서 금세 지겨워진 이 생활에 이어폰이 낡아지도록 사용했었는데. 꼬박 3개월 정도, 난 이어폰을 꺼내본 적도 없던가. 이렇게 오래도록 지겹지 않은 삶이었다니.


이젠 충분히 나타날 때가 되었다. ‘슬럼프’라는 녀석이.




3,6,9


이게 무슨 숫자인지 알아? 여행자가 슬럼프가 오는 숫자야. 단위로 따지자면 월이겠지. 그다음엔 연차로 간다더만. 새로운 도시로 빨리 이동하면 되긴 하는데, 너도 잘 알잖아. 그러면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관광객이랑 별 다를 바 없는 거. 그러니까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여행자들은 이 슬럼프를 대처하는 방법부터 찾아내야 해. 어떤 친구는 겨울잠을 자듯 자더라고. 또 어떤 친구는 눈 딱 감고 가장 좋은 레스토랑에서 비싼 메뉴를 시키기도 하고, 누구는 길에서 밤을 꼴딱 새기도 하더라. 생존 본능이 생긴대나 뭐래나.


Kullu, India.(2016)


그는 말했다. 뭐 벌써 몇 해에 걸쳐 그를 봤는지는 모르겠는데, 여전히 여행하느라 바쁜 그는 그런 말을 했다. 마침 부모님에게 온 연락도 슬프도록 아픈 ‘돌아와’였던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제 편안해져도 되지 않겠냐는 위로는 내 스스로에게 너무나 이른 말이어서 그만둘 수 없다고.


힘들다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까닭에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여행자들은 오늘도 묵묵히 외로움, 아픔, 고독을 삭인다는 걸.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받는 삶이란 그 어디에도 없다고. 지루하고 끈질기에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 온갖 나라의 인사말을 뱉으며 함부로 손목을 잡는 사람들. 그러나 매일 인사를 하고 오늘은 어떻냐는 물음을 건네 오는 그 ‘사람들’.


나는 이 속에 치열히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오늘도 하루가 지겨울 당신들과 다를 바 없이 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어차피 그렇게 될 거, 정말 잘 지내는 척이라도 해볼까 하며 다시 휴대폰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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