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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지침 사이에

by 바카

할머니는 이제 기억의 시간을 더 자주 헤매이신다.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화를 내시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시기도 한다.


나 역시 예전만큼 말동무가 되어드릴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조심스럽게 요양원을 권유드렸지만,
할머니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흩어지던 정신을 붙잡듯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절대 그곳에 가지 않을 거야.”


산책을 나갔다가 치매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던 기억,
법적 변호사가 자신의 권리를 대신 행사했던 그 기억 때문인지
이제는 산책조차 꺼려하시고
집 안에서만 머물고 싶어하신다.


그래도 아직은,
할머니는 나를 기억하신다.
사흘에 한 번 찾아가는 나에게

“좀 더 자주 오면 안 되겠니?”


하고 조용히 부탁하시고,
도우미가 없는 시간에
둘만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말씀도 하신다.


그런데도 도우미를 완전히 믿지 못하시겠다며
연신 언제까지 일하느냐고 물으신다.
떠나고 나면 또 혼자 남겨질까 불안하고,
그 불안이 쉬 가라앉지 않는 듯
도우미가 물건을 가져간다고 의심하는 말도 점점 늘어간다.


할머니가 사용하기 편하도록
화장실 공사를 해야만 한다.

할머니가 먼저 요청하셔서
변호사에게 부탁해 견적을 알아보았고
집을 세 주 동안 비워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는 단칼에 거절하셨다.

“나는 집에서 절대 나가지 않을 거야.”

그렇게 공사는 여전히 시작도 못하고 있다.

공사를 하지 않으면
샤워도, 머리 감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도우미는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드리고,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 머리를 감겨드린다.
할머니는 그 정도면 괜찮다며
조용히 받아들이고 계신다.


할머니의 언니 역시 몸과 마음이 많이 쇠약해져
요즘에는 두 분이 통화할 때마다
할머니의 언니는 할머니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곤 한다.
결국 통화를 자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 역시 오래 지쳐 있었다.


어느 날, 쌓여 있던 울분을 내게 털어놓으셨다.
외국에 살면서도
벌써 30년을 동생을 돌봐왔다고.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왜 여전히 누군가에게 기대는지 모르겠다고.
본인도 나이가 들고 아프고 혼자인데
그래도 어떻게든 혼자서 살아내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며 흐느끼셨다.


변호사는 여전히 비협조적이다.
도움 요청에도 답이 없거나
늦게야 겨우 회신이 오고,
이제는 할머니의 집 열쇠까지 가져갔다.

할머니는 자신의 열쇠가 사라졌다며

“왜 내 열쇠를 가져가냐”


속상해하시지만
나는 그저 그 마음을 달래드릴 뿐이다.


이제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도우미의 하소연도 함께 들어야 한다.
그녀가 무너지면
그 힘듦이 고스란히 할머니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도 내 몫이 되었다.

24시간 도우미를 구하는 일이 이곳에서도 쉽지 않아
할머니에게 도우미와 잘 지내셔야 한다고 말씀드리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 생각한다.

할머니가 정말 내 가족이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곰곰이 떠올려 보면,
가족이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가끔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손을 잡아드리는 것..

그게 전부일 것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다를 게 없을 것 같은 그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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