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일에서 9개월간 직업 훈련 과정에 참여했다.베를린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용지원센터가 있다. 그리고 워크넷이라는 사이트와 같은 기능을 가진 사이트 또한 있는데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거의 대부분 거쳐가는 곳이다. 하지만 노동비자가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한해서만 이용이 가능하다.위 기관에서는 외국인이 자국에서 취득한 학력이나 자격증으로 취업이 가능한지 상담 및 학력 인증 과정을 도와주고 필요시 어학지원과 취업알선 그리고 직업 훈련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이 과정은 모두 100% 국비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교통비까지 지원해 준다.독일의 세금이 이러한 복지 형태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직업 훈련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참여하기 전만 해도 월급의 30~40%를 세금으로 떼는 것에 불만이 있었고, 노년에 연금으로 준다고 해도 우리나라와 다른 시스템에 그저 세금을 많이 떼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로 사회에 뛰어들려고 보니 외국인 복지 시스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복지를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독일이 복지국가라는 것이 실감이 났으니까. 어쩌면 독일의 이런 복지는 한 사람을 사회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장시킴으로써 사회 경제 발전과 크게는 국가 발전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복지를 악용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지원만 받고 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많이 낳아 아동수당으로 한몫 두둑이 챙기거나 등등. 독일은 아동 수당을 아동이 만 26세가 될 때까지 금액 변동 없이 지급해 준다.단, 아동이 졸업 후 취업을 할 경우에는 아동 수당 지급이 종료된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라는 것은 이런 부분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돈은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까.
또한 독일은 복불복의 나라라는 별칭이 있다. 케바케가 너무 많아서인데, 비자부터 일처리 등등 직원마다 기관마다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서류의 나라답게 서류가 많고 꼼꼼한 건 좋은데 허당끼도 만만치 않달까. 외국인이 처음 노동비자를 받으면 독일어 과정 중 하나인 인터 그라치 온 코스를 받을 수 있는 쿠폰을 준다. 그런데 이 쿠폰을 주는 기준이 제각각이다. 학력기준도 아니고 비자 등급도 아니고 직원 마음인 것이다. 예로 누구는 학력이 높아 못 받았다고 했는데 같은 조건의 누구는 쿠폰을 받았거나 한 번에 쿠폰을 받은 경우 혹은 여러 번 신청 끝에 받은 경우 등 다양한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누군가의 후기보다는 직접 부딪혀야 결과를 알 수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고용지원센터에서 직업 훈련에 참여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했었다. 심지어 누구나 받을 수 있었던 독일어학 지원도 못 받았다. 거절당한 이후, 아마 6개월 후쯤 직업 훈련을 받고 싶다고 상담 요청을 했는데 다행히 내 담당자가 바뀌어있었고, (처음 등록하면 지정 담당자가 정해짐) 새로 바뀐 담당자는 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번에 승인해 주었다. 그야말로 복불복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직업 훈련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지인은 나랑 같은 경우였음에도 깐깐한 담당자를 만나서 직업 훈련 쿠폰을 받지 못했다. 대신 독일어학지원 6개월을 지원받았다. (담당자에 의해 모든 것이 달라지는 행정시스템, 분명 자기들만의 프로세스가 있긴 하겠지........ 그래야만 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코스에 등록했고, 직업 훈련에 참여하는 자들은 자국에서 해당 전공으로 공부했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해당 직업에 대한 경험자는 나 외 1명뿐이었고, 나머지 수강생은 모두 다른 전공을 했거나 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 중 난민이거나,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잘못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독일어를 모르니 독일어라도 배우자라는 마음으로 수업에 임했다. 하지만 수업에 참여할수록 내 자존감은 바닥으로 내려갔다. 나와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같은 주제를 가지고 토론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문화, 종교, 민족성 등 모든 것이 다른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야기하고 상대를 이해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시리아인들을 이해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과거 무슬림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슬림들도 나라마다 파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무슬림들 간에도 편견과 차별, 선입견이 심했다. 서로를 밟고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려는 몇몇 수강생들과 자존심이 남달랐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선생님과타협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나라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임을 강조합니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를 매일매일 느끼면서 나는 어디에 있고 나는 누구고 내가 여기 왜 앉아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 결국 끝까지 버틴 사람만이 자격증을 품에 안을 수 있을 테니까.라는 생각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여기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생략하겠다.
아무튼 직업 훈련 과정은 해당 기관에서 우리 반이 첫 1기였고, 선생님도 처음 채용한 사람이고, 프로그램이나 규칙 등 모든 게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면에서 체계가 없었고 우리 반은 마루타 역할을 해야만 했다.(마루타여서 운이 좋게 참여가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2기부터는 참여 자격 조건이 더 까다롭고 높아졌기 때문에) 운영 규칙이 매일 바뀌었고 선생님도 바뀌었고 전달되는 공지는 매일매일 새롭게 리뉴얼되었다. 게다가 매달 시험을 봐야했기에 열심히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명색히 참가자 중에서 유일하게 전공자인데 점수를 못 받으면 창피하지 않나 싶어 더 열심히 했다. 다행히 필기시험에 강한 한국인인지라 우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오히려 나는점점 의욕을 잃어갔다.거의 매일 혼돈의 도가니였고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중간에 수업을 취소하고 포기할까 하는 고비도 있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내가 독일까지 와서 나이 먹고 공부하는데 왠지 포기하면 지는 거 같아서 존버하는 것을 택했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요 시간에 몸을 맡기자'했더니시간이 어느새 흘러 종강하는 날이 왔다.
그 사이에 다행히 좋은 선생님도 만났고, 좋은 친구도 생겼고, 인생을 배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9개월의 시간은 다문화 인생을 압축시켜 놓은 것만 같았다. 사춘기 시절 자아를 찾아 헤매던 것처럼 내가 누구인가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번뇌하는 시간이 되었다.그리고 사람은 모두가 다르고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했고마침내 수업의 끝이 왔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나를 더 성장시켜 주었고, 인생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피 터지게 처절하게 배웠다.더불어 진짜 인생을 즐기는 방법 또한 배웠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를 발전시키는 인생을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에게 한마디 하겠다. 잘해왔고, 잘했고, 잘했다!!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