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 백반 Oct 13. 2024

이게 무슨 일이지?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내가 해야할 일들을 머리로 셈했다. 

우선 설거지를 끝내고, 프로젝트 인증해야하는 것들 중 못한 것을 기억해내고,

아이들 해야할 일들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곧 수료할 독서 과정의 숙제를 어디까지 했는지 생각하다 

간지러워 뒤통수를 긁다가 뭔가 기분이 쎄했다. 

어? 여기랑 여기가 다른데? 라는 생각을 하고 

밥을 먹고 있던 아이에게 부탁해 뒤통수를 찍어보았다. 

열살 아이 주먹만한 구멍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밥을 먹다 말고 나는 원형탈모에 대해 검색했고,

주 원인으로 스트레스라는 것을 읽고 그대로 침대에 기어 들어가 누웠다.  

이게 말로만 듣던 원형탈모? 근데 이만큼 될때까지 나는 왜 몰랐지?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듦과 동시 그때 나를 힘겹게 했던 몇개의 요소들이 야속했다. 

바보같이 이런것도 모르고 내 몸을 갈아 해댔던 나의 루틴들이 원망스러웠다. 

6월 중순에 발견된 원형탈모는 집 근처 피부과 두곳을 거쳐 대학병원에 가야할 만큼 진행속도가 빨랐다.

대학병원에서도 몇번의 약을 바꿔도 좀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빠지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조급해진 나는 다른 대학병원에 가서 신약을 먹기로 결정했다.

신약을 먹어도 결국 내 머리카락은 다 빠지게 되었다.


원형탈모를 처음 발견한 것은 뒤통수였지만,

이틀 뒤엔 옆통수 5개를 더 찾아냈고, 그 기점으로 원들은 이어졌고 앞머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변발을 한 오랑캐같았다. 

나 삶에 있어서 오랑캐 같은 병이기도 했다. 

눈썹은 3일만에 다 빠졌다. 

체모 역시 빠지기 시작해서 얼마가지 않아 몸에 털은 종아리와 콧털, 속눈썹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약 덕분에 머리는 다시 나기 시작해 전부 머리가 빠졌을 때 솜털이 그 빈곳을 채워주었다. 


코로나를 5월에 겪고 6월에 원형탈모가 시작되었고,

해가 바뀌어 4월에 코로나를 겪고 다시 나기 시작한 머리는 5월부터 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두번째 전두 탈모를 겪고 있다. 

남아 있는 내 머리는 관대하게 봐줘야 15%가 될까 말까다. 

물론, 2024년 10월 중순의 기준으로 말이다. 


그 과정에 있어서 자기 연민이 진짜 나를 사랑하게 된 과정을 나는 누군가에게 남기고 싶었다.

어이없이 만난 병에 무릎이 꺽이고 손과 발이 묶이고 내 인생의 오랜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된 이야기를.

그리고 혹시라도 인생에서 희망을 찾고 의미를 알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나의 이야기가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작게 희망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