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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백반 Nov 10. 2024

2023년의 전두탈모

작년 전두탈모가 진행되었을 때는 한여름이었다. 

어떤 계절이든 머리가 빠지는 것은 참담하겠지만 여름은 더욱 참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땀.

땀이나 머리를 쓰윽 손대는 순간 탈락하는 머리카락을 보면 찬란한 여름의 햇빛과는 반대로 내 마음은 을씨년 스럽다. 생명이 터질것같은 에너지를 뿜어대는 여름의 한 낮에 머리카락을 줍고 있는 나는 자기연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샤워.

샤워를 자주하는 여름날. 샤워를 할때마다 내 몸에는 머리카락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원래도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빠지는 양도 대단했고, 머리가 길었기 때문에 온몸에 머리카락이 휘감았다.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아내는 동안에도 땀이 났기 때문에 잘 떼어지지 않았다. 

벗은 몸에서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나는 또한번 자괴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으며, 거울을 보면서 하루가 달라져가는 내 모습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가장 최고봉은 선풍기와 관련된 일화이다. 

더워서 선풍기를 틀고 있으면 뭔가 시원하고 낯선 기분이 들어 확인해보면 선풍기의 바람에 머리가 빠지고 있었던 것.

두려움이란 그렇게 불쑥 찾아왔는데 마치 공포영화에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옆에 귀신의 얼굴이 있는 듯한 소름이 끼치곤 했다.


열정적으로 머리가 빠지게 되었고 집근처 대학병원에서 여러번 약을 바꿔 대응하였으나 속도는 더 빨라졌다. 

남편의 후배가 치료를 받았다는 다른 지역의 대학병원에 대기를 걸어 놓았는데 한달 반이 남아있었다. 

성격급한 나는 당장이라도 뭔가의 조치를 취해서 지금의 현상을 바꿔놓고 싶었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기다림은 필연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말릴때면 수북히 쌓여 있는 머리카락을 눈대중으로 세다가 포기하고 매일 울었다. 무서워서. 두려워서. 

시간이 지나 대학병원 진료일이 되어 찾아간 곳에서도 처방은 그전 대학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면역억제제를 쓰고 처방받아온 약을 먹으며 내일은 괜찮을까란 희망을 갖고 절망을 만나며 시간이 지나갔다. 

그 때 대학병원에서는 신약을 권했다. 한알에 2만원이나 하는 신약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란 생각과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매일 겪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줄다리기를 했다. 

마음 착한 남편은 울면서 말했다. 뭐라도 먹고 나아보자고. 덕분에 나는 용단을 내려 신약을 먹기 시작했다. 

9월부터 먹기 시작한 신약은 차도가 없었다. 먹어도 머리는 한정없이 빠져나갔고, 얼굴을 보면 머리카락이 있는 영역보다 없는 영역이 더 많았다. 눈썹이 빠지기 시작하니 3일만에 사라졌다. 체모도 마찬가지..

거울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넌 누구야? 넌 누구니...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낯설었고 이상했고 기이했다. 

처음 발병은 뒷머리였는데 완벽하게 빠지기 시작한 곳은 앞머리부터여서 타격감은 더욱 심했다. 

모자를 쓴 머리테두리는 벌겋게 부어올랐고, 대학병원에서 받는 레이저 치료로 두피는 벗겨졌다. 

가려웠고, 아팠다. 그래도 나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찬바람이 조금 불 무렵부터 솜털이 보송하게 올라왔다. 

하얗게 난 솜털들은 앞머리부터 덮어지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면서 솜털들을 손으로 가만히 눌러보았다. 

빼곡히 솜털이 채워질때마다 빠진 머리는 생각나지 않기 시작했다. 

가만 있어도 히죽거리게 되었고, 한알에 2만원씩이나 하는 신약을 기쁘게 먹었다. 

돈이 아깝고 아쉬웠지만, 잠시 쉬어가는 정거장이라 생각하고 신약에 반응하는 내 몸이 고마웠다. 

한주가 다르게 머리카락은 달라졌다. 솜털은 까맣게 색이 변해갔고 있던 머리는 다 빠졌지만 솜털로 채워지는 뒷모습이 기특했다. 

모자를 쓰거나 가발을 썼지만 친한 이들과 만날때는 가끔 모자를 벗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낯선 모습이었을테지만 나는 모자를 쓰지 않고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자체가 축복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머리카락이 날리던 바람을 사랑했던 나는 한동한 상실되었던 바람을 느끼던 머리카락을 다시 만난 것 같아 기뻤다. 

다시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에게 코로나로 얻은 그 지긋지긋한 후유증은 전생같은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해가 바뀌고 1월이 되었고 6개월만에 엄마를 보러 친정에 갔다. 머리가 없을 때는 도저히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이제는 보여줘도 될 것 같아서. 머리가 빠져 엄마. 라는 이야기와 직접 머리가 없는 것을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본 엄마도, 엄마를 본 나도 같이 울었다.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낸 나를 엄마는 격려해주었다. 2월이 되어 내가 원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기쁜 마음에 덜컥 회사에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4월 코로나에 걸리게 되었고, 5월에 재발했다. 


신약은 2월부터 용량을 줄여 처방받았다. 하지만 5월에 발병이후 다시 원상복귀되었고, 

그렇게 신약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증세는 멈춰지지 않았다. 퇴사를 했고, 밀가루를 끊고 운동을 했다. 

하지만 작년과 같이 머리가 빠지는 것을 멈출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올해 8월 신약을 먹는 것을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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