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과 교내 도서관에 종종 방문한다. 수업 진도가 의도치 않게 빠르거나, 아이들이 힘들어하거나, 내가 힘들거나, 차분한 무언가가 필요할 때면 우리 학급은 도서관을 찾는다. 아이들에게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골라서 읽으라고 한다. 어떤 책이든 상관없다. 초등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은 보통 아이들이 읽기 좋은 책들로 구성되니 교사가 따로 책을 걸러주지 않아도 좋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들은 책을 고르는 걸 어려워한다.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서는 ‘선생님. 책 못 고르겠어요.’, ‘책 좀 추천해주세요.’라고 하소연을 하거나 부탁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로 책을 못 고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독서는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작업이다. 특히 6학년 학생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어렸을 땐 그림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림책은 결말에 비교적 빨리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펴는 시도 자체가 부담되지 않았다. 하지만 줄글이 많은 책을 읽기 위해서는 결말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나에게 맞지 않는 책을 골라 엉뚱하게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이들은 책 고르기를 머뭇거린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책을 고를 수 있을까? 책 고르기에 조금 더 확신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글이 책 고르기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시각은 다른 감각보다 많은 판단을 한다. 인간은 시각 때문에 매우 직관적이다. 시각은 한 번도 이야기를 섞어보지 못한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어떤 물건이 좋아 보이는지 안 좋아 보이는지, 어떤 그림이 아름답고 추한지, 시각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모를 때,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 책을 읽을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요소는 디자인이다. 책 디자인은 정말 다양하다. 책이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이유는 팔리기 위해서이다. 잘 팔리려면 사람을 끌어당겨야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려면 매혹적인 디자인을 뽐내야한다. 그러니 책 디자인을 마음껏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는 것이 책의 디자인을 완성한 출판사에게도 보람 있는 일이다. 우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라. 대단히 중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책에 다가가는 첫 걸음으로써는 의미 있는 일이다.
책의 디자인을 살펴봤다면 책의 겉표지를 살펴봐야한다. 겉표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겉표지는 단 세 부분으로 나뉘고 지면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제한적인 공간에 내 책을 읽어달라고 할 만한 홍보가 모두 들어가 있다. 가장 먼저 책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넓은 지면은 보통 제목과 저자, 출판사가 명시되어 있다. 조금 더 정보를 보태기 위해 새 책에 불필요한 띠가 둘러진 경우도 있다. 또 이 책이 수여한 상도 표시되는 경우도 있다. 핵심은 하나다. 책을 구매하시오!
책의 앞부분은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하나는 매우 심플한 스타일로 글씨도, 그림도 거의 없다. 내 생각이지만 보통 이런 경우는 책 자체가 워낙 잘 팔리거나 저자가 유명한 사람인 경우, 출판사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책을 많이 펴낸 곳인 경우가 많다. 브랜드 자체가 홍보 요인이기 때문에 특별히 무얼 쓰지 않아도 된다. 또 다른 하나는 글씨도 많고 이미지도 많은 다소 복잡한 스타일이이다. 내 생각이지만 이런 경우는 이 책을 구입하시면 후회가 없을 거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외국에서는 매우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이를 알리기 위해 많은 글을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스타일도 책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다. 맥도날드를 옆에 둔 수제 햄버거 가게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햄버거가 훨씬 더 맛있고 정성이 들어가 있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그래야 손님이 온다.
책의 가운데 부분, 그러니까 책을 서가에 꽂았을 때 우리가 처음 맞닥뜨리는 얇은 부분은 보통 제목이 쓰여 있다. 책의 앞부분과 마찬가지로 책을 홍보해야하는데 이 가냘픈 지면에서 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돋보이게 만드는 방법은 촌철살인의 글귀를 적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문장 하나! 그 멋진 문장이 책을 꺼내들게 만든다. 그 짧은 문장에도 이 책이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책의 뒷부분은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영화 포스터로 치면 주인공들의 사진 밑에 작은 글씨로 영화를 대략 설명해주는 글귀들에 해당한다. 책을 고를 때 뒷면에서 알려주는 정보를 유심히 살펴보면 큰 도움이 된다. 보통 이 책을 읽은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 책을 추천하는 이유, 책에 대한 평가가 적혀 있다. 그래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쓰려고 하고 가장 멋진 찬사를 적으려고 할 것이다. 어떤 책은 본문 중에서 저자가 매우 의미 있다고 여기는 문단을 통째로 뽑아서 그대로 쓰기도 한다.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다. 책을 읽지 않았을 때 책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니 참고하시라. 모든 책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 책 표지의 특성을 참고하면 어느 정도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 표지를 살펴보고 흥미가 생겼다면, 이미 당신은 책을 읽을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우리는 더 효율적인 독서를 위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책을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책날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책의 앞부분에 붙어있는 책날개는 보통 저자에 대한 소개가 주를 이룬다. 저자의 사진이 있는 경우도 있고,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다. 책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대게 젊은 작가보다는 중년의 작가들의 사진이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책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데 이왕이면 나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산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거다. 작가 소개는 단순히 작가가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대게 글은 사람 냄새가 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그 사람의 삶에 베여 있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면 어떤 느낌의 글일지 짐작할 수 있다. 작가 소개가 끝나면 저자가 쓴 다른 도서들이 목록으로 혹은 줄글로 소개가 되기도 한다. 책을 많이 쓴 사람일수록 그 소개가 장황할 것이다. 이 정보는 그냥 경력 정도로만 판단하면 된다. 이 전에 쓴 책과 내가 결정할지 말지 고민하는 책은 엄연히 다른 책이다. 그냥 일러만 두자.
책의 뒤쪽 날개를 살펴보면 추천 도서가 나열되어 있다. 이것도 책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보통 추천 도서는 같은 출판사의 책이다. 출판사는 저마다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출판사는 여행 관련 에세이를, 어떤 출판사는 육아 정보를, 어떤 출판사는 문학 작품을, 어떤 출판사는 교육 관련 글들을 주로 다룬다. 당신이 고른 도서가 어떤 출판사에서 탄생했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떤 내용을 어떻게 풀어가겠구나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작가의 말, 서문, 프롤로그, 들어가며 등 책의 앞부분에는 책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 짧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 초등학생들이 책을 읽을 때 본론의 내용을 너무 궁금해 해서 이 부분을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 짧은 글은 꼭 읽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째, 책이라는 긴 여행 전에 잠시 심호흡을 할 수 있다. 둘 째, 작가의 글투 혹은 글 스타일이 나와 잘 맞는지를 먼저 파악할 수 있다. 셋 째, 작가가 독자와 어떤 만남을 원하는지 느낄 수 있다. 여기서는 책을 고르는 방법을 살펴보기 때문에 두 번째의 이유로 짧은 글을 읽어봐야 한다. 사람마다 말투가 있다. 말투는 그 사람의 특성이다. 차분한 말투, 다정한 말투, 조곤조곤한 말투, 느끼한 말투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글투를 가지고 있다. 글 스타일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사람마다 글투가 다르다. 그런데 말투와 글투는 큰 차이가 있다. 말투는 말을 할 때 발휘된다. 말은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을 동반한다. 가령, 목소리의 크기, 표정, 동작 등 굳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글은 말과 다르다. 읽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게 써놓으면 영원히 알아들을 수 없는 글로 남는다. 물론 책으로 출판될 정도면 독자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쓰인 경우가 많다. 이제 공은 독자에게 돌아온다. 당신은 작가의 짧은 글을 읽었을 때 읽기가 쉬웠는가? 이해하기 편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사람이 쓴 책을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그게 에세이든 문학이든 상관없다. 저자의 글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의 짧은 글을 읽기가 어렵고 이해하기도 불편했다면 조용히 책을 접어 꽂아놓는걸 추천한다. 반드시 읽어야하는 사정이 있거나 모르는 내용을 공부하겠다는 집념으로 책을 고르는 게 아니라면, 억지로 꾸역꾸역 넘기는 독서를 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독서는 읽는 게 아니라 먹는 것이다.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이다. 내 입맛에 맞지도 않는 걸 꾸역꾸역 먹으면 쉽게 체한다. 우선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 다른 음식도 먹어보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내 수준에 맞게 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
책은 결국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다.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도 돈을 받고 곡을 썼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그림을 팔고 돈을 벌었다. 글을 쓰는 모든 작가는 자신의 책이 잘 팔리기를 바란다. 물론 그것만을 위해 글을 쓰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은 팔리기 위해 존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고르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책 표지, 책날개, 저자, 작가의 짧은 글을 살펴보고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골라보자. 이 방법으로 내게 꼭 맞는 책을 완벽하게 고른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에다가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 쌓다보면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책을 결정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