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끌린다
어렸을 때 방문하는 박물관은 재미가 없었다. 특히 학교 현장 체험 학습으로 박물관을 견학하는 건 웬 말인가? 오랜만에 학교를 벗어나 친구들과 놀이공원에서 스릴 넘치는 놀이 기구를 타줘야 소풍 아닌가? 시간이 많이 흘러 교사가 됐다. 이제 현장 체험 학습 장소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내가 생각한 가장 좋은 현장 체험 학습 장소는? 코웃음 치지 마라! 국립 중앙 박물관이었다. 국보 제 86호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우뚝 서 있고 온갖 유물들이 전시된 바로 그 박물관이다. 그 다음 해에는 천안에 있는 독립 기념관, 그 다음 해에는 충북대학교 박물관이었다(개인적으로 충북대학교 박물관을 강력 추천한다. 다양한 유물뿐만 아니라 발굴 체험, VR 만들기, 국궁 활쏘기 등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가족과 시간 내어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학생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인 이곳들을 나는 왜 교사가 되어 그렇게 고집할까? 답은 하나다. 박물관은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커지고 경험이 많아지며 지평이 넓어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는 게 참 많아졌다. 아는 게 많아지니 더 자세하고 더 정확하게 알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어떻게 저 높은 탑을 건축했을까? 나무로 만든 옛 집들은 어떻게 관리되고 유지됐을까? 독립군들은 어떤 옷을 입고 추위를 견디며 일제에 저항했을까? 소주는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우리 조상들은 어떤 방법으로 술을 빚었을까? TV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내 머릿속은 꿈틀 대는 호기심으로 수많은 잡학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어린 나이에 이런 탐구 의식이 발휘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 나이엔 어쩌면 이런 호기심과 거리가 먼 게 당연한 일이다. 왜냐?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 지역에서는 ‘반 고흐 미디어 아트 전시회’가 열렸다. 우리 학교 교직원들과 함께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집, 학교, 집, 학교만 다니며 일과 육아에 전념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겐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큰 기쁨이다. 문제는 내가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가수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고흐는 세상을 불행하게 살다 간 사람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고작 <Starry Night> 정도만 알고 있었다. 간만에 쐬는 바깥바람인데 설레는 마음을 더 증폭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전시회 관람 전 날, 나는 공부를 했다. 고흐의 생애와 이력, 미술작품, 작품 관(觀), 고흐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닥치는 대로 조사했다. 그 때 드는 생각은 이러했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을 몰라봤다니! 내일은 정말 재밌을 거야.’
그렇게 나는 도슨트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지식을 갖고 전시회에 입장했다. 인터넷 블로그와 백과사전에서 봤던 그림과 텍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색채를 보고 고흐의 화풍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 안에 놓인 침대와 의자를 보고 그 당시 고흐가 고갱을 기다린 설렘을 공감할 수 있었다. 고흐가 사랑했던 여인 ‘지누’를 보고, 고갱과 있었던 작품 관과 삶의 가치관이 큰 차이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아몬드 꽃>을 보고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와 조카 빈센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관람을 했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고흐를 잘 느낀 이유의 팔 할은 고흐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잡학 지식을 추가했고, 온라인 서적에서 고흐와 관련된 책을 구입하기 위해 마우스 스크롤을 오르내렸다.
책을 고르는 것도 이와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는 이것을 ‘독서 감수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어떤 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정도가 높아야 독서를 한다. 마음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주제는 무엇인지, 그 주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인지 부정적인 입장인지,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사람인지,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읽혔는지, 이와 같은 대강의 정보는 독서 감수성을 높여준다. 우리는 독서 감수성이 높은 도서를 골라 읽으면 된다.
그렇다면 책에 대한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시점에서 초등학생들의 독서 교육을 맡고 있는 교사들과 학부모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5년 기준 OECD 국가 국민 중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이 가장 적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OECD 국가 평균 20.2%에 비해 우리나라는 고작 8.4%이다. 10명 중 단 한 명도 되지 않는 통계다. 만 15세 이상 국민이 1년에 1권 이상의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을 독서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독서율은 2013년 기준 74.4%로 OECD 평균 76.5%에 못 미쳤다. 더 큰 문제는 독서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에는 65.3%, 2017년에는 59.9%로 60% 아래로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책을 권하는 사회가 아니다. 성인도 책을 읽지 않는다. 하물며 어른을 보고 배우는 아이들이 책을 읽기가 만무하다. 이에 어른들이 각성하여 아이들에게 책을 권해야 한다. 이 책 읽어라, 저 책 읽어라 말은 쉽지만 왜 그 책을 읽어야 하는지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 아이들은 고작해야 학교에서 가정통신문 형식으로 나눠주는 추천도서목록이 나름 내가 읽어야 할 책의 정보이다. 달랑 책 제목과 저자, 출판사가 적혀있는 게 전부다. 당장 온라인 서적 사이트에 들어가서라도 도서 검색을 해야 한다. 미리보기 기능으로 책도 한 번 넘겨보고, 책 소개도 읽어보고, 리뷰와 별점도 살펴보라. 돈과 떡이 떨어지진 않지만 우리 아이에게 책을 홍보해 보자. 그냥 읽으라고 권하는 것보다 대략의 정보를 제공하고 권하는 게 독서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연스럽게 책과 관련된 정보를 얻는 것도 좋다.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를 다녀와서 고흐와 관련된 서적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고 느낄 때 윤홍균 박사의 「자존감 수업」을 찾듯이,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고 국가 권력에 투쟁하면서 올바르게 선 국가를 상상하며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찾듯이. 내가 살면서 얻은 생각과 느낌도 책과 관련된 훌륭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책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좋지만 내 삶을 하나의 정보로 인식하여 책과 연결 짓는 것도 의미가 있다.
독서는 쾌락이다. 여행지를 답사하듯 책의 정보를 겉핥는다면 더 큰 쾌락을 느낄 준비를 할 수 있다. 인터넷을 뒤지든, 내 삶에서 정보를 추출해 내든 그 어떤 방법도 상관없다. 당신이 아는 게 많아져 독서라는 쾌락에 흠뻑 취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