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읽기 좋고, 듣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다
독자 입장에서 좋은 글을 판별하는 연습을 했다. 좋은 글은 사실 별거 아니다. 글은 말처럼 표현을 하는 수단이다. 표현을 잘 하는 건 내 진심을 잘 전달하는 것이다. 좋은 글은 진심을 느끼게 하는 글이다. 또 좋은 글은 내가 판단한다. 남들이 콕 집어 좋은 글이라고 추천해줘도 내가 마음 깊이 와 닿는 무언가가 없다면 굳이 좋은 글이라 말하기 힘들다. 텍스트를 해석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남의 판단이 아닌 내 판단이다. 내가 이 글을 대할 때 좋은 글이라 느낄 수 있다면 적어도 나에게 그 글은 좋은 글이다. 자신감을 갖자. 내 판단을 응원하자. 다른 사람의 판단에 눈치 볼 것 없다. 글은 그러한 것이다.
이제는 방향을 틀어 텍스트의 생산자 입장에서 좋은 글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다. 내가 쓰는 글은 좋은 글일까? 내가 쓰는 글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런 고민을 한 번 씩은 해봤을 것이다.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읽는 순간 그게 무엇이든, 어떻게든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되어있다. ‘이게 글이야?’,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글을 정말 못 쓰는군!’과 같은 부정적인 피드백도 있고, ‘와! 글을 정말 잘 쓰는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기 쉽군!’, ‘감동적이야.’등과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도 있다. 나 역시 지금 이 책의 여러 글들을 쓰면서 독자의 판단이 긍정적이길 기대하면서 쓰고 있다. 하지만 장담 할 순 없다. 쓰는 건 내 자유지만,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은 크게 세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읽기 좋고, 듣기에 편하고, 이해하기에 수월해야한다. 유시민 작가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진전시켜보려 한다.
“어떻게 하면 잘못 쓴 글을 알아볼 수 있을까?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만약 입으로 소리 내어 읽기 어렵다면,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잘못 쓴 글이다. 못나고 흉한 글이다. 이런 글을 읽기 쉽고 듣기 좋고 뜻이 분명해지도록 고치면 좋은 글이 된다.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중략)
그동안 육상에서의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관장하는 부서가 각각 본부조직과 외청으로 이원화되어 있고, 해상에서의 재난은 해수부와 해경으로 분산되어 있어 재난 안전을 통합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육상과 해상의 재난,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모두 통합하여 국가안전처로 일원화하여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철저히 책임 행정으로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안전처가 하루라도 빨리 출범해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획기적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2014년 7월 8일 국무총리 담화문 中)
눈으로 읽어서 무슨 뜻인지 금방 들어오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리 내어 읽어보니 어떤가. 눈으로 볼 때보다 나은가? 오히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 글은 뜻을 알기가 무척 어렵다. 소리 내어 읽으면 말이 입안에서 엉키고, 적당히 숨 쉴 곳을 찾기가 어렵다. 읽기만 그런 게 아니라 듣기도 불편하다.
이것은 담화문이다. 담화문은 눈으로 읽으라고 쓴 글이 아니다. 국무총리는 소리 내어 읽고 국민은 귀로 들으라고 쓴 글이다. 그런데도 입에 착 감기지 않고, 귀에 쏙 들어오지 않으며, 뜻을 바로 알기도 어렵다. 잘못 써도 크게 잘못 쓴, 못나도 한참 못난 글이다. 이 글은 살아 있는 우리말이 아니라 국적불명(國籍不明) 죽은 말이다. 국무총리도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담화문을 읽으면서 힘들었을 것이다.
*출처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2015), 유시민, 생각의 길, 170p-171p
유시민 작가는 2015년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정부의 담화문을 잘못된 텍스트의 예로 들었다. 잘못된 글은 학생, 선생, 여자, 남자, 노동자, 고위 계층을 구별하지 않는다. 누구나 잘못된 글을 쓸 수 있다. 위에서 언급된 담화문도 국무총리 담화문이 아닌가?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초등학생이라면 잘못된 글을 쓸까봐 망설이지 말기를 당부한다. 누구나 잘못된 글을 쓸 수 있다. 혹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아이에게 글이 잘못됐다며 질책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초등학생은 글을 많이 틀려봐야 한다. 그게 초등학생의 특권이다. 더 많은 실패는 더 많은 발전의 여지를 남긴다.
담화문은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읽기 어렵고, 듣기에 불편하며, 무슨 소리인지 숱한 반복을 거쳐 이해해야한다. 정말 불편한 글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이런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대표적으로 보험 가입 약정 설명서와 같은 책자에 적힌 글을 정말 불편한 글이라고 손꼽는다. 우선 책자 구성 자체가 워낙 읽기에 불편하게 만들어졌다. 글씨가 너무 작고 줄 간격이 너무 좁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보험 가입 약정 설명서가 가진 특징은 사람들이 꼼꼼하게 읽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 사람들이 꼼꼼하게 읽으면 읽을수록 보험 상품에 의문이 생기고, 보험 계약을 유도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런 의문들 하나하나에 답변하는 게 피곤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잘 읽지 않아야 한다. 그게 보험 가입 약정 설명서가 가진 특징이며 수많은 글이 쓰여 있지만 제대로 내용을 전달하고 있지 않다. 독자 입장에선 나쁜 글이 아닐 수 없다.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그런 면에서 책은 좋은 글이 모여 있는 집합체이다. 책 고르는 노하우에서 언급한 것처럼 책은 팔리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책이 팔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잘 읽어야 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우수하고 글의 질이 높아야한다. 또,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글자체, 글자크기, 줄 간격, 여백, 디자인, 삽화 등 글의 내용을 더욱 충실히 전달하기 위한 정성스러운 노력이 담겨 있다. 좋은 글을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당신 옆에 있는 책 한 권은 수많은 사람들의 필터링을 거친 훌륭한 글의 집합체다.
6학년 아이들에게 매일 아침 400자 원고지를 주고 생활 글을 쓰게 한다. 아이들은 늘 담임 선생님의 처사가 가혹하다고 아우성이지만 나는 끝끝내 매일매일 작성된 원고지들을 검토한다. 그러면서 초등학생들의 글에 종종 놀랄 때가 있다. 너무 잘 읽혀서, 듣기에도 편해서, 이해하기 쉬워서 그렇다. 잠깐 우리 학생들의 글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이 글은 한국에서도 큰 감동을 준 영화로 평가되는 ‘해피 버스 데이’에 대한 감상문이다. 보통 많은 선생님들께서 영화 감상문을 쓰라고 하시면 영화의 내용을 쓰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만 쓰라고 강조를 하시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드는 생각과 느낌은 오로지 영화의 스토리에서 발생한다. 내가 감동을 받았거나 슬픔을 느꼈거나 분노가 치밀었다는 감정을 쓰기 위해서는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된 원인을 쓰는 게 응당 맞다. 이 학생은 400자 원고지의 짧은 틀 안에서 자신이 감명을 받았던 영화 스토리의 큰 줄기를 아주 담백하게 서술한다. 문장은 짧고 간결하다. 소리를 내어 읽어보자.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읽기에 편하지 않은가? 한 문장 안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지 않다. 그러니 듣기에도 편하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내 마음 속에 와 닿은 이유, 지금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진심으로 쓰였다. 정말 이해하기 쉬운 영화 감상문이다. 물론 더 좋은 글을 위해 수정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그냥 그대로 두었다. 나에게 이 글은 엄마에 대한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이해하기 쉽게, 진실 되게 전달한 아주 좋은 글이다.
좋은 글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 머리를 쥐어 짜낸다고 일필휘지로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다. 좋은 글을 쓰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매일 아침 400자 원고지를 쓰는 우리 반 학생들도 학년이 끝나갈 무렵, 여전히 글을 쉽게 쓰지 못한다(학생들이 자주 보여주는 글을 쓸 때의 오류는 뒷장에서 정리하겠다.). 한 가지 팁은 처음부터 좋은 글을 쓰려고 아등바등하지 말 것! 일단 글을 완성하고 완성된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어색한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읽는 게 어려우면 고쳐야 한다. 듣기에 불편해도 고쳐야 한다. 이해하기에 쉽지 않으면 다시 써야한다. 이게 좋은 글을 생산할 때 고려해야 할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