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는 장소에 대한 생각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독서의 달’ 행사를 진행한다. 교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행사인데, 한 달 동안 가장 많은 권수의 책을 빌려간 학급을 시상한다. 2017년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우리 반은 이 행사에서 전교 꼴찌라는 불명예를 입었다. 이런 행사는 보통 저학년이 강세다.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그림책을 잔뜩 빌려간다. 한 달 동안 한 학급에서 빌리는 권수는 대략 1,000권 정도가 된다. 물량 공세를 펼치는 그들 앞에 고학년은 적수가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그림책을 본다고 핀잔을 놓을 순 없다. 그들에게 그림책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정말 재미있게 알려주는 랍비 같은 존재이다. 그렇게 ‘다독학급’은 저학년들이 독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반은 남들이 보기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책을 빌리지 않았다. 우리 반 합계는 고작 15권. 우리 반 구성원은 20명이니 한 사람당 한 권 꼴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전교 꼴찌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설마 꼴찌를 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나 역시 아이들에게 억지로 책을 빌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학년이 시작되는 3월 초, 나는 맨 처음 학급 문고를 잘 가꾸려고 노력했다. 책을 꽂아 놓을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했다. 복도 쪽 창가 아래에는 아주 긴 서랍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곳에는 보통 학습 준비물, 보드 게임, 잡동사니가 널려있지만 나는 책을 넣었다. 작년에 졸업한 학생들이 학급 문고로 기증한 도서를 먼지를 닦아 넣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아이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을 넣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읽지 않는다고 가져온 책도 넣었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보이는 도서가 자동으로 선별되어 있었다. 긴 서랍장에 책이 가득 들어섰다. 도서실과 거리가 꽤 먼 우리 반은 학급 문고 때문에 굳이 먼 길을 갈 필요가 없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깊게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많이 읽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평소에 엄청 많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행사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역시나 아이들은 행사 기간에도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아예 행사 기간인 것을 망각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났을 땐, 내가 너무 소극적인가 뜨끔하기도 했다. 학교 행사에 잘 참여하는 것도 중요한지만, 어쨌든 난 꼴찌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려면 접근성이 좋아야한다. 내 손이 닿는 곳에 책이 있으면 좋다.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책은 잠에 들기 전 고독한 시간을 함께해준다. 화장실에 놓여있는 책은 따뜻한 물을 받은 욕조에 훨씬 더 많은 시간 몸을 담글 수 있게 만들어준다(작거나 큰 욕심을 버릴 때에도 무료함을 달래준다). 손에 들린 책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적막함을 달래준다. 책은 무조건 가까이 두는 것이 좋다.
책에 대한 접근성을 극적으로 높인 공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도서관, 하나는 서점이다. 우리가 평소에 가장 많은 책을 만질 수 있는 공간은 이 두 곳이다. 당신은 어떤 공간이 더 마음에 드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책을 고르면 된다. 두 공간 모두 책을 주제로 다루는 공간이기 때문에 어디가 더 좋다고 감히 단언할 순 없다. 말 그대로 개인의 취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두 공간의 특징을 내 나름대로 관찰해보려 한다. 사람은 어떤 곳에 있느냐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성당에 들어가면 경건한 마음을 지녀야 할 것 같고, 학교에 가면 뛰고 싶고, 예비군 훈련이 있는 연병장에 들어가면 군복을 풀어헤친다. 공간적 성찰이 독서습관을 형성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장소에서 책을 읽는 게 나한테 맞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먼저 서점부터 살펴보자. 일단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간과 베스트셀러 도서를 서점의 입구부터 전시해 놓는다. 책의 넓은 앞면이 잘 보일 수 있게 진열한다. 입구를 지나면 인문/교양, 자기계발, 역사, 경제, 소설, 청소년 등의 푯말이 눈에 띈다. 푯말 아래에는 그 주제와 관련된 도서들이 누워있다. 누워있는 도서들은 대게 인기 있고 잘 팔리는 책들이다. 같은 책이 여러 권 누워있는 경우도 있다. 휘황찬란한 책의 전시를 관람했다면 이제 아늑한 인테리어를 느낄 수 있다. 특이해 보이는 의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 한권을 뽑아 자리를 잡도록 만든다. 그런 공간은 왠지 책이 책 본연의 역할보다는 하나의 인테리어로 기능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예쁘고 앉아서 머물고 싶게 만든다. 웅장한 규모의 책장은 벽을 가득 메우고 있고, 새 책들이 잔뜩 꽂혀있다. 새 책 냄새를 맡으면 구입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하지만 명심할 것! 책은 빌려갈 수 없다. 사야한다. 사지 않으면 그대로 꽂아두어야 한다.
서점은 책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서점 옆에는 카페가 있기도 하고, 잡화점이 있기도 하고, 음식점이 있기도 하고, 영화관이 있기도 하다. 서점 자체가 아울렛이나 상가 속에 위치한 경우도 많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만약 어떤 연인이 데이트 코스로 서점을 방문했다면 각자가 자리를 잡고 오랜 시간 책을 읽는 것보단, 함께 이 책 저 책 구경하고 서로 한 권씩 선물하는 정도로 서점을 활용할 것이다. 그러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영화 시간에 맞춰 자리를 옮길 것이다. 책이 인테리어처럼 변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책 자체보다는 서점이라는 특수한 공간의 분위기를 소비하게 만든다. 그래서 서점은 마음 편히 책을 읽으러 갈 곳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서점은 최신 동향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은 무엇인지, 사람들이 요즘 많이 읽는 책은 무엇인지 서점에 가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는 수고 없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서점은 도서관의 어려운 십진분류표로 책을 찾지 않는다. 책의 인기를 반영한 진열 속에서 책을 찾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듯이 서점은 예쁘게 전시되어 있는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그래서 무언가 새롭고 재미있는 책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서점을 가보는 게 좋다. 무엇보다 서점에 있는 책들은 모두 새 것이다. 사람은 새 것을 좋아한다. 새 것과 중고가 있으면 새 것부터 찾는다. 서점은 독서욕구와 소비욕구를 올려주는 곳이다.
도서관은 서점과 분위기가 다르다. 서점이 화려하다면 도서관은 정돈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도서관에서 책은 팔리지 않는다. 책은 그저 사람들의 손을 타고 돌고 돌 뿐이다. 책을 인기에 비례하게 진열할 필요가 없다. 십진분류표에 맞게 분류하면 그만이다. 그게 신간이든 나온 지 한참 된 책이든 상관없다. 우리나라 도서관의 특징 중 하나는 독서실이라는 공간과 큰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은 조용하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앉아서 진득하니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나라는 공공 도서관 시설이 잘 갖추어져있다. 내가 어디에 살던 집 근처에서 도서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점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옷차림으로 간단하게 방문하기도 편하다. 그래서 도서관은 서점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책에 대한 배경지식 혹은 기본 정보가 아예 없다면 도서관은 조금은 막막한 공간이 될 수 있다. 서점은 빅데이터가 적용되는 곳이다. 베스트셀러일수록,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일수록 접근성이 좋다. 그러나 도서관은 오로지 내가 판단해야한다. 어쩌면 서점보다는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한참을 더 고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고민하지 말라. 도서관은 내가 고른 책을 다시 반납할 수 있다. 내가 고른 책이 나에게 별 느낌을 주지 않으면 아무런 부담 없이 되돌려놓으면 된다. 단 돈 10원도 들지 않는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공부나 자료 조사에도 좋은 공간이다. 요즘은 도서관에 인터넷 설비가 잘 되어 있어 인터넷 서핑과 문헌 조사를 겸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자료를 접하고 짜깁기해야하는 보고서 과제를 해야 하는 학생들에겐 정말 좋은 곳이다. 우리 학생들도 과제를 내주면 교내 도서관 활용을 아주 잘 한다. 서점에서는 힘들겠지만 도서관에서는 가능하다.
서점과 도서관 두 공간은 단순히 ‘독서’의 관점에서만 놓고 우위를 가릴 수 없다. 재미있는 책을 찾고 싶거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독서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서점이 좋다. 진득하니 내가 원하는 책을 찾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겐 도서관이 좋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니 만큼 시장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어디 시장에 물건만 있겠는가? 볼거리, 먹을거리, 눈요깃거리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서점이 그렇다. 단순히 책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어떤 책은 열심히 홍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배치되지만 어떤 책은 공간의 아늑함을 위해 뒤로 빠져 인테리어의 역할을 한다. 도서관은 공공성을 특징으로 한다. 누구든 쉽게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책은 모두 평등하게 다뤄진다. 나대는 책도 없고 물러선 책도 없다. 오로지 책 고르기에 대한 판단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맡겨진다.
우리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 근처에 있는 서점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학생 인문 책 쓰기 동아리에 공모하여 예산을 받아 동아리를 운영했다. 남은 돈으로 학생들에게 한 권씩 책을 선물했다. 서점에 간 아이들은 눈을 밟은 강아지처럼 즐거워보였다. 온갖 새 책을 펴가며 단 한 권의 도서를 신중하게 골랐다. 도서관에서는 사뭇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결국 서점과 도서관은 이렇게 상생한다. 서점이 벚꽃이라면 도서관은 소나무다. 벚꽃의 화려함에만 취해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소나무의 늘 같은 모습에 익숙해져 일상의 특별함을 망각해선 안 된다. 독서의 새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서점으로 갈 것을 권한다. 온전히 책과 둘만의 대화를 하고 싶다면 도서관을 갈 것을 권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읽는 모든 책을 서점에서 구입한다. 출판 시장이 활성화되어 더 양질의 도서를 많이 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또 내가 구입한 도서는 한참 후에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간에 못 읽더라도 큰 부담이 없다. 어떤 책은 모두 읽는 데 1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책을 구입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 읽은 책을 서재에 꽂아두면 뿌듯한 마음도 들고 내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 나름의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매 달 읽던 읽지 않던 책을 세 권씩 구입한다. 가끔 정말 비싼 책을 구입하면 용돈이 많이 줄기도 한다. 그건 좀 슬프다. 그래도 책 사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당신은 책을 어떻게 접하는가? 뭐가 됐든 나는 당신의 취향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