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다면 뭐라도 해야 한다
2017년 6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아이들과 독특한 독서활동을 했었다. 우선 모든 아이들이 같은 책을 구입해서 수업 시간에 함께 읽어나가기로 약속을 했다. 도서는 「수상한 아파트」(박현숙, 2014)로 결정했다. 책값은 온라인 서적에서 9,9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책 구입을 위해 10,000원을 용돈으로 받아올 수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모든 학부모가 허락을 해서 큰 어려움 없이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책이 도착한 후부터 우리는 아주 즐거운 독서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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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책을 구입한 후에 발생한 20,000원을 학급비로 사용했다. 100원씩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것보다 20,000원으로 학생들에게 더 기억에 남는 것을 해주고 싶었다. 책을 구입했을 때는 12월이었다. 날씨는 매우 추웠다. 우리 학교 옆에 있는 사거리에 붕어빵을 파는 노상이 있었다. 그래! 아이들과 함께 붕어빵을 사먹자!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 20,000원 어치의 붕어빵을 단번에 주문한 손님은 없었다며 멋쩍은 미소를 띠었던 사장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장님도 기뻐하셨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붕어빵을 사 먹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다. 나도 아이들과 그런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뿌듯했다. 박스로 사 온 붕어빵을 먹으면서 우리가 함께 구입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대략 200쪽 정도 분량이었다. 나를 포함한 스물 한 명은 동시에 같은 책의 같은 줄, 같은 글자에 집중했다. 중간 중간 끊어가며 주인공이나 상황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졸릴 때면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지루할 때면 뺏어 읽기를 활용해 다소 공격적인 독서(?) 분위기를 조성했다. 단 3일 만에 한 권의 책을 모두 함께 읽을 수 있었다. 모두가 뿌듯해했다. 혼자서 책을 읽었을 때보다 무언가 더 큰 성취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 이제는 책을 읽었으니 적당한 독후활동을 찾을 때다.
도서는 내가 골랐지만 활동은 내가 고르고 싶지 않았다. 책과 관련된 활동을 모둠끼리 토의하여 한 가지를 선정하라고 과제를 제시했다. 아이들은 책을 살펴보며 이런저런 의견을 발표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을 고려하여 캐리커쳐 만들기,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1주일 동안 관찰하여 책에 나온 아파트의 모습과 비교하기, 각 장 별로 분담하여 릴레이 연극하고 UCC 제작하기, 그리고 닭갈비 만들어 먹기! 교과 진도도 거의 다 나갔고, 아이들은 졸업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요구한 활동들을 가능한 한 모두 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닭갈비 만들어 먹기라? 책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한 데 모여 닭갈비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때 그렇게 대단한 의미를 가진 장면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그 장면이 정말 끌렸나보다.
어느 날 우리 교실은 춘천의 닭갈비 거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엄청난 닭갈비 냄새를 풍겼다. 6학년 복도는 맛있는 냄새에 마비되어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 학생들이 삐죽삐죽 우리 교실을 넘겨봤다.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실과 교육과정에서 실제로 음식을 만들어보는 수업이 있다. 보통 달걀을 삶거나, 김밥을 말거나, 비빔밥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닭갈비를 만들었다. 다 같이 먹으니 맛도 훌륭했다.
닭갈비 파티가 끝나고 한참이 지났다. 6학년을 마치며 즐거웠던 순간을 공유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대체로 아이들은 수학여행, 체육대회 등의 굵직한 행사들을 즐거운 순간으로 기억하곤 한다. 그런데 대뜸 우리가 함께 책을 읽었던 경험이 즐거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들에게는 책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책을 사면서 먹었던 붕어빵, 책을 읽고 만들었던 닭갈비 등이 책과 함께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다. 이 책을 쓴 박현숙 작가가 붕어빵이나 닭갈비와 자신의 책이 함께 연상이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다소 엉뚱하지만 학생들은 책을 읽은 경험, 책의 내용이 이러한 사건들과 연결되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었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이 책의 내용과 얼마나 연결되는지, 얼마나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인지는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어떤 책을 읽었을 때 그 내용 혹은 교훈이 장기기억으로 남기 위해서는 연상이 되는 ‘무엇’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왕이면 학생들이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활동, 참여를 할 수 있고 소통을 할 수 있는 활동이 유익하다. 우리 학급은 그 ‘무엇’으로 「수상한 아파트」를 기억한다.
매일 제출하는 400자 원고지 과제에 그 날 그 날 읽은 책에서 마음에 드는 글귀 하나를 꼭 써넣는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제자의 노트를 보니 그렇게 구절구절이 쌓여 있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학생에겐 커다란 자산이다. 그 학생은 ‘무엇’을 글귀 남기기로 정하고 실천했다. 글귀만 봐도 그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그냥 덮어두면 그동안 읽은 게 너무 아깝다. 책을 읽었다는 것은 글자를 읽은 게 아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어떤 생각을 만드는 과정이다. 우리 학생들이 그냥 책을 읽고 덮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이라는 활동을 통해 책을 곱씹고 자신의 가치로 재생산하는 맛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