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사랑받는 새로운 방법
바쁘고 힘든 육아를 하다 보면 한 편으로는 내심 허전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와 아내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서로의 애틋한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우리 아내는 TV 속 <하트 시그널>이나 <썸바디>를 보고서야 설레는 감정을 느끼곤 한다. 내게 보이는 남자 출연자들의 온갖 수작들이 우리 아내에겐 ‘심쿵’을 유발하나 보다. 하지만 서운하거나 섭섭하진 않다. 나는 우리가 또 다른 형태의 사랑, 어쩌면 이전보다 더 끈끈하고 더 아름답고 더 멋지고 더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발전한 형태의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이나 신혼 때 했던 달달 구리한 사랑 표현들은 이제는 별 소용이 없어졌다. 사랑의 형태는 변했다. 달콤한 말, 그럴싸한 허세, 별도 달도 따다주겠다는 허황된 약속은 통하지 않는다. 남편들이여. 바쁜 육아 중에 꽃을 한 다발 사들고 아내에게 선물해보라. 당장은 좋아하겠다만 우리 아이의 기저귀 가는 것을 귀찮아한다면 꽃은 곧 몽둥이로 탈바꿈할 수 있다. 밤하늘의 별도 달도 따준다고 백날 얘기해보라. 아이와 제대로 놀아주지 않으면 별로 달로 보내버리고 싶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렵지 않다. 더 쉬워졌다. 아내에게 사랑받는 새로운 방법은 간단하다.
나는 이 간단한 문장을 적극 사용한다. 우리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분명 오늘 저녁에도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
“여보. 젖병 소독은 내가 할게!”
“정말? 이 멋진 사람.”
우리 아내와 나는 훌륭한 육아 파트너이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정해놓고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네가 더 편하네 내가 더 힘드네 으르렁대는 유치한 싸움을 왜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잘할 수 있는 걸 먼저 나서서 하고, 잘하지 못했던 것을 잘할 수 있게 노력했다. 그 결과 우리 집은 마치 가사노동 공장처럼 모든 일들이 척척 진행된다.
역할을 정해놓는 것에 대해서 조금만 더 짚고 넘어가려 한다. 사실 우리는 생일 케이크를 조각내어 각자의 접시에 가져가는 것처럼 역할을 정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면 내가 멍청한 아빠였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내가 우리 아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아내는 퇴근하고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했다. 예를 들면, “먼저 샤워를 하고 나와서 청소기를 돌리고 오늘은 먼지가 많이 쌓여있으니 물걸레까지 돌려줘. 아! 어제 아기를 씻기고 욕조를 깨끗하게 닦지 못했어. 샤워하면서 그것도 해줘. 밖에 택배가 많이 쌓였으니까 그것도 뜯고 들어오고. 조금 이따가 분유 먹일 시간이니까 분유 타 먹이고 트림까지 시켜줘. 다 하면 놀아주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내는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더 많이 하고 나는 딸을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는 육아를 더 많이 하게 됐다. 어느 집마다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50:50으로 역할을 나눠 손해 보지 않으려고 공평함을 강조하는 것보다, 서로의 역할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또한 시간이 흘러야 체계가 잡히는 것이니 육아 초기 부부들은 힘들 것이다.
그런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종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젖병 소독’이다. 우리 부부는 이 일을 통틀어 ‘젖소’라고 부른다. 크게 두 가지 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젖병을 세척하는 일이고 하나는 젖병을 소독하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젖소’를 싫어한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다. 보통 젖병 세척은, 일반 설거지처럼 수시로 하지 않는다. 아기 세제가 일반 세제보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하루에 많아봤자 6개 정도의 젖병만 세척하면 된다. 또 젖병 소독은 젖병 소독기가 한다. 얼마나 훌륭한지 소독기 안에 물기를 턴 젖병을 넣고 AUTO버튼만 누르면 건조와 소독을 알아서 해준다.
나는 우리 부부가 ‘젖소’를 싫어하는 이유를 뒷심을 발휘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우리 부부의 ‘젖소’는 대게 아이를 재운 늦은 저녁이나 밤 시간에 이루어진다. 아이의 마지막 젖병까지 모아서 씻기 때문이다. 바쁘고 고단한 하루의 마지막 일과에 속하는 일. 아침부터 일어나 직장에서 가정에서 온갖 에너지를 쏟았는데 이제 다 끝났다 싶을 때 젖병 소독이라니. 누가 되든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도 우리 아내도 쌓여 있는 젖병들을 보고 마음속으로 혹은 실소를 머금고 당신이 하지 않겠냐고 서로에게 투쟁한다.
남편들이여.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지 않았는가. 고통을 감수하면 꿀 같은 보상이 찾아온다. 아내를 편하게 해 주면 나도 편해지는 순간이 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면 눈 감는 그 날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처럼 이 삶을 소풍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기회는 지금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
“여보. 가서 쉬어. 젖병 소독은 내가 할게.”
알랭 드 보통이 쓴 「낭만적 연애 그 이후의 일상」이라는 책을 권한다. 사랑은 두근두근 설렘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을 더 견고하게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처음에서 사랑의 형태가 발전한다고 표현한 건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지쳐있는 아내를 쉬게 하는 것이다. 나도 힘들지만 내 옆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 조금만 더 힘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애써 젖병을 소독한다. 힘들게 젖병을 소독할 때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아내를 보면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육아에 지친 남편들이여. 꼭 젖병 소독이 아니어도 좋다. 아내보다 조금 더 힘을 내어보자. 아이러니하지만 힘든 순간이, 때로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