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에 대하여
스물아홉 어느 날 누군가에게
'나이가 몇인데 아직 근로소득밖에 없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물어온 본인부터도 여태까지 삼십 대 중후반이 되도록 근로소득밖에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피나는 노력으로 해외기업과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 근무 경력에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었다.
월세 받기 위한 투자용으로 얼마 전 생애 첫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서 대출계약서를 쓰는데 이자납부 및 대출상환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소득 체크란에 여섯 가지 소득이 있었다고 했다.
멋진 커리어를 가진 그 또한 근로소득 이외에도 다양한 소득이 있음을 그날 처음 배웠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스물아홉 살까지 근로소득밖에 모른 체 살아왔다.
대학교 졸업 후 몇백만 원의 목돈을 모으는 족족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한번 떠나면 짧게는 열흘, 길게는 돌아오는 비행기표도 없이 편도로 떠나는 말 그대로의 욜로 인생이었다.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른 체 스물아홉이 되었다. 그 나이까지 중소기업이라도 되는 번듯한 직장이 아닌 누구나 스무 살들도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목돈을 모으는 족족 해외여행을 가야 하니 일을 쉽게 그만둘 수 있고, 또 쉽게 다시 일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만 일해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현실을 깨닫게 하는 한 사건이 발생했다.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친한 형님이 본인 생활비가 필요하다면서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아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그 형은 그 당시 신용불량자 상태였다. 더 이상의 대출이 안되니 지인인 나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스물아홉의 나는 참 어리석었다. 열아홉 때의 경제관념 그대로였다. 그 형이 그동안 어떻게 지내서 신용불량자가 된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뉴스 한번 안 보고 세상 물정과 경제지식이 전무했으니 별생각 없이 아무렇지 않게 그 형이 그랬던 것처럼 케이블티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출광고에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도와주었다.
신용등급? 들어만 봤지 정확한 개념이 없었다. 직장선배들은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나보다 어린 친구들뿐이니 어디 물어볼 선배도 없었다.
삼백만 원의 돈을 무대리가 광고하는 곳에서 대출받으니 신용등급은 바로 7등급으로 떨어졌고 몇 달 뒤 상환하니 6등급이 됐다.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은 신용 6등급으로 시작됐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어느 날 문득 스물아홉이 되도록 돈 한 푼 모아둔 게 없는 나 자신이 참 한심스러워졌다. 요즘 말로 현자 타임이 온 것이다.
평생 책 한 권 안 읽던 내가 그렇게 독서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이었기에 종이책은 부담스러웠고 누워서도 볼 수 있는 전자책으로 구입했다. 당시 신간 목록 중에 관심이 가는 책을 선택했다.
천만 원 정도의 목돈만 있으면 이렇게 평범한 나도 월세 받는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그렇게 우연히 만난 인생 첫 독서를 계기로 난생처음 간절함이란 걸 갖게 됐다.
그전까진 간절함의 사전적 정의인 마음속에서 우리나와 바라는 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간절함은 생각보다 갖기 쉽다. 결핍을 느끼면 된다. 하지만 단순한 결핍을 느껴서는 부족한 듯하다. 정말로 절실하게 느끼는 결핍이 간절함이 되는 것 같다.
월세받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찾았으니 평균을 정해야 했다. 뚜렷히 목표하는 바가 없으면 어렵게 찾은 간절함 또한 작심삼일이 될 게 뻔해 보였다.
이 평균이라는 게 사람마다 너무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당시 내가 바라보는 평균은 월세 받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