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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Nov 16. 2022

아버지 車가 부끄러운 <급식이>

혼자 살며 경제적 여유 누리면 행복할까?

얼마전 한 인터넷 유머게시판에서 <아버지 차가 부끄러운 급식이>이라는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인즉 이랬다.

'급식이다. 아버지가 학원갈 때마다 태워주신다.

아버지 나이 52세, K3...

쪽팔려서 못 타겠다. 내일부터는 지하철로 학원 간다'


철없는 <급식이>의 이같은 배부른 투정에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너 없었으면 아버지 차 K9이었다'

'K3건 뭐건 태워다주는 아버지 있는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니 학원비에 아버지 차값 있다' 등등 주로 그의 철부지 행동을 나무라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남들 눈에 한창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 입장에선 <급식이>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단 각부터 들었다. 가난하게 자란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 가난한 집 아이의 자격지심이란 건 별거 아닌 일로도 종종 큰 상처를 입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급식이>를 나무란 사람들 생각이 잘못됐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황희 정승 흉내를 내는 건 아니지만 철부지 행동을 나무라는 사람들 입장 역시 충분히 공감이 가서였다. 자식을 키우고 있는 50대 아버지 입장에선 '아버지 노릇이란게 정말 녹녹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차 바꿀 시기가 된 나는 다음 차는 뭘로 살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 유머게시판 글을 다시 떠올렸다. 은퇴하기 전에 한번쯤 타보고 싶단 욕심을 품게 만든 <드림카>가 하나 생겼는데, 현재 내 처지에선 다소 '넘사벽'이란 생각이 들면서다.


내 나이 또래 회사 동료들 중엔 예의 드림카를 타는 사람이 제법 있었고, 나이 40 넘도록 독신으로 지내는 후배 녀석 하나도 그걸 끌고 다니고 있다. 속물 근성이 있어 그런진 몰라도 그래서 더 은근 욕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드림카라 말은 했지만, 사실 조금만 무리를 감수하면 탈 수 있는 차이기도  했다. 다만 그렇게 했을 때 우리집 가계에 얼마간 주름이 생기는 게 문제일뿐이었다. 다행히도 내 경우 그걸 감내하면서까지 욕심을 낼만큼 차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저런 상념 끝에 든 생각이 문제의 <급식이> 아버지도 어쩌면 K3 같은 소형차보단 좀 큰 차를 타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단 거였다. 타고 다니는 차 크기로 사회적 지위와 성공 여부를 성급하게 판단해 버리곤 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소형차는 중년의 아버지들에게 그리 마뜩한 존재는 아니어서다. 사실 소형차로 학원에 태워다주는 아버지 때문에 <급식이>가 느낀 쪽팔림보다 몇백 배쯤 힘든 인고의 시간들을 그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묵묵히 견뎌왔을 수도 있었다.


이 같은 상념은 드림카 구입 같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누리며 혼자 사는 게 행복할까,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게 행복할까 하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아마도 결혼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물었다면 십중팔구 혼자 다 누리며 사는 게 행복하다는 비중이 더 많을 걸로 짐작된다. 결혼한 중장년층에게 묻는다면 그 비중은 현재 가족관계라든가 삶의 행복도 여하에 따라 반반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떨까? 혼자 살았다면 경제적으로 조금 더 여유롭게 살았을진 몰라도 여기까지 무사히 잘 올 수 있었을까 솔직히 의문이 든다. 경제적 측면에선 남 부럽지 않을만큼 다 누리며 잘 살았을지 몰라도 내 지랄 맞은 성질로 미루어 봤을 때 이 나이까지 한 직장에서 월급쟁이 노릇을 계속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흔해빠진 유행가 가사처럼 토끼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분유값 벌어오기만 기다리는 새끼들 때문에 참 많이 참으며 월급쟁이로 그럭저럭 잘 살아온 셈이라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란 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아니라 내가 지칠 때 주저않지 않도록 곁에서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 같은 거 아닐까 싶다.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몸이 기울어 무게 중심이 흐트러질 때 그걸 바로잡아 주는 균형추 역할을 해주는 존재이기도 할 거다.  <혼자서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처럼 쉽게 유혹에 빠지고 쉽게 미혹 당하는 내가 여기까지 무사히 잘 걸어온 건 거의 전적으로 가족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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