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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Oct 27. 2022

<전국노래자랑>이 장수프로 1위인 이유

소소잡썰

'이 사람은 분명 "수고하셨습니다"일 거야!'

그러나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그는 심사위원으로부터 "합~겨억"을 받았다.

'이 사람은 합격이 분명해!'

그러나 이번 역시 내 예상과는 반대되게 그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불합격 통보를 들었다.


얼마 전 우리 동네에서 열렸던 전국노래자랑 예선전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상황들이다.

참가자로 나선 회사 동료 응원차 예선전 현장을 방문했는데, 그 진행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백인백색이란 말이 있듯이 300여명 가까운 참가자들 모두 제 각각 다른 개성있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건 알듯 모를듯한 합격과 불합격 기준이었다.

이 정도 실력이면 예선전 정도는 가볍게 통과할 거란 판단이 들었던 사람은 불합격을 받았다.

반면 수준 미달이라 판단됐던 사람은 합격을 받는 사례가 여러 차례 반복됐다.


처음엔 '음악적 소양이 별로 없는 내 막귀 탓인가?' 하고 생각을 했었다.

오랜 세월 예선전 심사를 진행해 온 티가 역력한 베테랑 심사위원이 나보다야 더 정확히 판단할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저런 걸 다 감안해봐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7~80대 어르신들로 구성된 농악 퍼포먼스 팀이 등장한 순간 나는 '아하!' 하는 깨달음 같은 걸 얻었다.

그동안 봐온 전국노래자랑 본선 방송에 비춰 곰곰 생각해본 결과 비로소 예선전 합격 불합격 기준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된 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국노래자랑이란 프로그램은 팬텀싱어 류의 프로가수를 뽑는 경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가족들이 함께 둘러앉아 편안히 보고 즐길 수 있는 가족예능에 가까웠다.

노래 실력만으론 예선 통과가 어려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찌어찌 합격 판정을 받았던 게 바로 그런 이유였다.

본선 무대 전체 흐름을 그려봤을 때 특산물 소개 등 그 지역 특색을 드러내는데 필요한 뭔가를 갖고 있다면 기본실력 정도만 갖춰도 충분히 합격을 받을 수 있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끼와 흥은 넘치지만 노래 실력은 다소 떨어지는, 인기상 후보쯤 될 법한 한 참가자가 나왔을 때였다.

춤을 곁들인 신바람나는 그의 무대를 보고 난 뒤 심사위원은 그에게 조심스레 이런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선생님 노래 실력으로는 본선에 나가봐야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한번 가보시겠습니까?"라고.

노래 실력은 좀 부족하지만 전국노래자랑 본선 무대 재미를 살리는 덴 필요한 인재라는 의미일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국노래자랑이 어떻게 그 오랜 세월 국민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노래 잘하는 잘난 사람들을 모아 죽어라 노래 대결만 유도하는 서바이벌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 거다.

형식은 노래자랑이되 그 지역과 사람들, 감동적 사연 등을 두루 담아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프로그램이라 쉽게 질리지 않았던 거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탑을 찍는 대한민국이라서 더 그게 가능했지 않나 싶다.

그만큼 세계 어느 나라보다 경쟁률이 치열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라서 말이다.


그 치열함을 반영하듯 방송에서도 미스트롯이니 팬텀싱어니 각종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들도 넘쳐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 세계에서도 날마다 극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판에 TV에서까지 그런 걸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 거다.

바보상자라 불리는 TV를 보면서까지 그렇게 극한경쟁으로 내몰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싶은 반발심리다.


전국노래자랑은 그런 우리를 위해 세상에 필요한 건 노래를 가장 잘 하는 1등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노래 실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끼와 열정만은 차고 넘치는 사람도 필요하고, 내가 사는 지역과 가족을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걸 알려준다.

1등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최장수 프로그램 1위로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사실은 이렇듯 1등 아닌 사람들 덕분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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