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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an 25. 2023

<악천후>라서 좋았던 날

겨울왕국으로 변한 부안 내소사에서

<악천후> 하면 보통 '사람 발목을 잡는 아주 나쁜 날씨'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건 보통의 경우다. 그걸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어서다.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찾아간 부안 내소사가 그러했다. 온통 눈으로 뒤덮여 차선조차 안 보이는데다가 그 위로 계속 쏟아지는 눈, 설상가상 몰아치는 눈보라로 인해 10미터 앞도 잘 안 보이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래도 악천후를 무릅쓰고 이미 100km 가까이 달려간 길이었다.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거북이걸음으로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어깨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절 입구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심봤다!"를 외쳤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은 내소사 시그니처 전나무숲길이 대설주의보 속에 빚어낸 비경 때문이었다. 순백색으로 물든 숲길은 늘 북적대던 사람들 발길마저 끊긴 채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줬다.


<악천후> 덕분이었다. 차선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진 눈에 눈보라까지 더해진 덕분이었다. 그 악천후를 뚫고 들어가자 평소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 거다.


등산을 즐기는 주변 사람들 중에 뒤늦게 사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왕왕 있다. 등산을 즐기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자연의 비경들을 많이 보게 되는 까닭이다. 눈으로 보고 말기엔 너무 아쉽다 보니 결국 사진을 찍고 싶단 욕망이 불붙는 거였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 보면 <게으른> 사진작가들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 악천후를 피해, 몸 힘든 곳을 피해, 머리 터지게 고민해야 하는 대상을 피해 편하게만 사진을 찍으려 드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시즌>이라는 때마다 전국 곳곳 유명 출사지들이 삼각대 세울 자리조차 없을 만큼 크게 북적이는 이유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맛난 점심을 먹으려면 시간이 됐건 노력이 됐건, 혹은 재능이 됐건 내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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