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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01. 2023

대한민국 인터넷엔 <슈퍼아재들>이 사신다

이미지출처 : 보배드림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인상적이고 통쾌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청소용역업체 일을 하는 형이 건물주한테 모진 갑질을 당한 끝에 무릎 꿇고 사죄한 뒤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자 주인공 한동훈이 복수에 나서는 장면이다.

그는 갑질 건물주를 찾아가선 처음엔 평소 성격대로 좋은 말로 사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건물주가 안하무인으로 배째라를 시전하고 나오자 갑자기 가방에서 쇠망치를 꺼내든다. '설마 저걸로 깔려구 그러는 건 아닐텐데...'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다짜고짜 벽 한쪽을 쇠망치로 내려찍는다. 예상 밖 행동이다.

'아하, 성질은 나지만 차마 사람을 어쩔 순 없으니 대신 벽에다 화풀이를 하는구나' 하고 다시 생각하는 순간 그는 건물주에게 일갈한다. "내가 건축구조 기술사인데, 당신 이 건물 다 불법 투성이야!"라고.

박사 학위보다 어렵다는 기술사 자격 보유자로서 그는 쇠망치로 문제 부위 벽면들을 땅땅 찍으면서 조목조목 법 위반 사항을 지적한다. 그가 지적한 불법 부분들을 다 시정하려면 건물을 다 허물고 다시 짓다시피 해야 할 지경이다.

결국 갑질 건물주는 그날 저녁 한동훈 집에 과일바구니를 사들고 찾아와 그 형 앞에 무릎 꿇고 사죄를 드린다. 항상 <슬픈> 눈을 하고 무기력하게만 보이던 <나의 아저씨>가 원빈 주연 <아저씨>보다 더 멋지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오늘 언론 기사를 보던 중 이 <나의 아저씨>를 떠올리게 만드는 멋진 아저씨들을 봤다. 싱글맘과 함께 사는 어린아이 하나가 실수로 주차된 차 사이드미러를 건드린 사건 기사에서였다. 사고차 주인은 그걸 빌미삼아 수리비 100만원, 렌트비 300만원 등 천문학적 보상을 요구해왔다.

속상하고 답답해진 싱글맘은 인터넷 한 자동차 커뮤니티 게시판에 해당 사연을 올렸다. 그러자 정의감에 불타는 <슈퍼아재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저마다의 슈퍼파워 하나씩을 장착한 채 전투모드로.

슈퍼아재1은 인터넷 지도 거리뷰를 샅샅이 뒤진 끝에 문제의 사이드미러 사고지역 인근에서 문제의 차가 2022년 7월 한쪽 사이드미러가 고장난 채 주차돼 있는 장면을 찾아냈다. 차 주인이 어린아이 때문에 고장났다고 주장한 왼쪽 사이드미러가 고장으로 인해 접히지 않은 채 주차된 모습이었다.

슈퍼아재2는 문제의 사고차 사진을 본 뒤 리어스포일러 등 다수의 불법개조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찾아냈다. 그는 즉시 관계기관에 이같은 사실을 신고했다. 관계기관에서는 조만간 사실 조사에 나설 거였고, 벌금 부과와 불법개조 행위 개선 명령을 내릴 거였다.

이들 외에도 많은 슈퍼아재들이 각자의 전문지식을 동원해 사고차주를 압박하고 나섰다. 결국 사고차주는 문제의 왼쪽 사이드미러가 원래 "작동이 되다 안 되다 하는 상태였던 건 맞다"고 잘못을 시인하고 나섰고, 차량 수리비도 받지 않겠다고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이 일로 아이가 충격을 받는 등 못볼 꼴을 당한 싱글맘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슈퍼아재들 도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한 울분이 쌓여서였을 거다. 그래서 "법대로 보험처리해 줄테니 견적서  보내달라"고 강경대응에 나섰고, 일이 너무 커져 감당하기 힘들어진 사고차주는 "앞으로 마주치면 불편하실테니 제가 이사를 가겠다. 제발 인터넷 글 좀 내려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며 나는 대한민국 인터넷엔 <슈퍼아재들>이 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엔 평범한 동네아저씨로 살아가다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아차 이건 짱가지, 어찌됐든 짜잔 하고 나타나는 어벤저스급 히어로들이 득시글대는 느낌이다. 덕분에 우리 사는 세상은 나쁜놈들의 홍수 속에서도 아직은 아슬아슬하게나마 좋은 쪽으로 잘 굴러가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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