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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r 31. 2023

별로 추천하고 싶진않은 콩나물국밥 맛집 <삼백집>



제목을 보고 ‘이게 뭔 도그 껌 씹는 소리야?’ 하고 생각한 분들이 많을 거다. 사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라 생각되긴 한다. 버뜨(but), 이름난 맛집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다 맛집은 아니지 않은가? 나에겐 나만의 입맛이란 게 있고, 내가 추천하고 싶은 맛집은 내 입맛에 맞는 맛집이란 얘기다 <글쓴이 註>


전주 하면 흔히 맛난 음식, 그 중에서도 비빔밥 혹은 콩나물국밥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전주에 산다는 죄로 내가 여행오는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부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관련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거다.


지인들 중에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알게 된 맛집을 콕 찝어 이 집 어떠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전주에 살긴 하지만, 여행 다니는 걸 워낙 좋아해 시내 도로보단 고속도로가 더 익숙한 처지다 보니 사실 나도 잘 모르겠는 경우가 더 많다. 서울 산다고 서울 맛집 다 아는 거 아닌 것처럼 전주 산다고 전주 맛집 다 아는 거 아니다. 전주가 서울보다 많이 작긴 하지만, 그렇다고 맛집까지 적은 건 아니다.


​콩나물국밥집 얘기가 나오면 내가 꼭 입에 담는 맛집이 하나 있긴 하다.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전주 대표선수급 콩나물국밥 맛집 가운데 하나인 <삼백집>이다. 하지만 내가 그 집을 입에 담는 건 추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 집에 얽힌 재밌는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전주 삼백집은 전주 콩나물국밥의 명성을 이끌어 온 대표 음식점 가운데 하나다. 70여년 전인 1947년, 이봉순 할머니가 전주시 고사동에 간판도 없이 다섯 평 남짓한 해장국집 문을 연 게 그 시초다. 맛이 워낙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지만, 하루 300그릇 이상은 팔지 않는 영업방침을 고수해 주목을 끌었다.​​


할머니 혼자 힘으로 정성껏 준비할 수 있는 재료 양이 하루 300그릇 분이 한계여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던 중 정부에서 가게 정비령 같은 게 내려졌고, 간판조차 없던 할머니의 가게도 상호를 정해 관에 등록해야만 했다. 이 문제로 할머니가 고민을 하자 단골손님 중 시인 하나가 "하루 300그릇만 파니 삼백집이라 하심 어떻겠냐?"고 제안해 이 이름이 탄생했다.


삼백집은 이봉순 할머니가 욕을 잘하는 걸로도 유명했다. “아, 이눔아, 그렇게 처먹어서 살로 가겄냐? 팍팍 좀 처먹어라” 등 욕이 예사로 손님들에게 날아가곤 했다. 음식점 주인이라기보단 친어머니 같은 푸근한 느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국밥보단 욕을 얻어 처먹으러> 이곳을 즐겨 찾기도 했을 정도란다. 단골손님들 중엔 새벽에 욕 먹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설을 믿고 가게 문 열기도 전인 새벽 4시에 찾아가 일부러 문을 걷어차며 소동을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1970년대 초반, 한번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호원도 없이 이곳에 들른 적이 있다. 할머니는 그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아따 이눔아, 누가 보면 니가 대통령인 줄 알겄다. 옛다, 계란이나 하나 더 처먹어라” 하고 구수한 욕을 선물했다. 유신독재가 시퍼렇게 눈을 부라리던 시절이었고, <각하>라는 호칭 안 쓰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시대에 자칫 잘못했음 대통령 모욕죄로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단 걸 할머니는 알았을까?


이쯤 얘기하면 많은 분들이 그 집 콩나물국밥 한 번 먹어보고 싶단 생각을 할 거다. 하지만 난 지인들에게 이 집을 추천하진 않는다(삼백집 역시 나 같은 별 영향력없는 사람 추천까진 바라지 않을 거다). 맛이 없어서는 결코 아니다. 전주 음식점들 가운데 사실 맛없는 집 찾기란 맛집 찾기보다 더 힘들다. 하물며 삼백집처럼 맛집이라고 이름난 곳이야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다만 하루 300그릇만 판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삼백집 이미지를 막연히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일 뿐.


이옥순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후손이 물려받은 지금의 삼백집은 그릇 수 제한도 없고, 평일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주말엔 24시간 영업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다수의 체인점도 운영하고 있다. 삼백집이라는 이름이 간직하고 있는 과거의 정감 넘치는 국밥집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단 얘기다.


그래서 나는 지인들에게 삼백집을 소개할 때 “전주에는 이런 집도 있다” 정도의 재미있는 얘깃거리 정도로만 소개하고 있다.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삼백집 스타일보다는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을 더 선호하는 탓도 있다.


참고로 전주 콩나물국밥엔 크게 두 개의 유파가 있다. 삼백집식이 그 하나요, 전주남부시장에 뿌리를 둔 남부식이 다른 하나다. 삼백집식은 뜨겁게 뜨겁게 끓여내는 담백한 국물맛이 일미이고, 남부식은 토렴 방식으로 뜨거움은 좀 낮추고 매콤함은 더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삼백집 콩나물국밥 맛있기만 하더만 무슨 자격으로, 왜 추천을 하니 못 하니 태클을 거냐?”는 오해는 없길 바란다. 입맛에 관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속하는 영역이고, 내 경우 남부식을 좀 더 좋아한단 얘기일 뿐이다. 다만 삼백집엘 갈 경우 이런 얘기 정도는 알고 가면 더 한층 흥미로운 맛집 여행이 될 거란 순수한 의도에서, 백퍼 내돈내산 후기 삼아 소개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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