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전북 순창 여행길에 마주친 잊혀지지 않는 풍경이 하나 있다. 이 지역 대표 볼거리 중 하나로 손 꼽히는 강천산이나 고추장마을 같은 명소가 아니라 순창읍내 한 밥집에서 마주친 소박하고 정겨운 '밥상 풍경'이 그것이다.
어느 밥집을 가나 밥상 풍경이야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 순창 밥집에서 마주친 건 그런 흔해빠진 풍경은 아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주 특별한 풍경이었다.
고추장의 고장이자 맛의 고장 순창을 대표하는 맛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새집'이 그 배경이었다. 100년 넘는 세월을 품고 있는 고색창연한 한옥을 터전 삼아 67년째 이 지역 대표 한정식 맛집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밥집이다.
이 '새집'에 관한 내 첫 기억은 직원 안내를 받아 방문 하나를 열고 들어서자 짠 하고 나타난 썰렁하리만큼 텅 비어있는 너른 한옥 방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침 우리 일행이 첫 손님이었던지 선객은 아무도 없었는데, 문제는 선객만 없었던 게 아니라 밥집을 가면 으레 있게 마련인 식탁 같은 기본세팅 역시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있는 거라곤 여기저기 층층이 쌓여있는 방석 몇 무더기뿐이었다.
난생 처음 접하는 이같은 당혹스런 밥집 풍경에 우리 일행은 잠시 엉거주춤하고 서 있었다. 식탁이 있으면 맘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을텐데, 아무 것도 없으니까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앉아야 좋을지를 모르겠어서다. 그렇게 잠시 당황한 심정으로 서있노라니 일행 중 한 명이 일단 아무 데고 앉아서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한번 지켜보자는 제안을 내놨다. 그 말이 맞다 싶어 우리 일행은 일단 방 한쪽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음식 주문이야 밥집 입구를 들어서며 이미 해놨으니 달리 할 일도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엌쪽으로 짐작되는 방향 방문이 활짝 열리더니 식당 직원 두 명이 한 상 잘 차린 큰 밥상 하나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알고 보니 그곳은 준비돼 있는 방 안 밥상 위에 음식을 차려주는 게 아니라 아예 부엌에서부터 한 상 잘 차려 상째 들고 들어오는 서빙 시스템을 갖고 있었던 거다.
똑같은 한 상인데, 묘하게도 상을 받는 느낌이 달랐다. 다른 밥집에서 원래 방 안에 놓여있던 식탁 위에 한 상을 차려줄 땐 그냥 식당에서 밥을 사먹는 느낌이었는데, 부엌에서부터 한 상을 차려 상째 들고 들어오자 마치 잘 아는 사람 집에 오랜만에 찾아가 집주인으로부터 귀하게 잘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언제 순창 쪽 갈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다시 들러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얼마전 드디어, 마침내, 기어코 예의 새집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아내와 함께였다. 텅 빈 방안에서 멍 때리고 앉아있다 보면 잘 차린 한 상이 상째 들어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사전정보는 알리지 않은 채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내가 기대했던 대로 상을 들고 들어오는 식당 직원들을 보며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눈이 동그래지며 화들짝 놀랐다. 이런 신기한 식당은 처음 본다며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내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서프라이즈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기분이가 좋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밥상을 받아서 그런지 밥맛도 유달리 달고 맛있었다. 20가지가 넘는 반찬들은 어느 하나 빠짐없이 골고루 다 맛있어서 그릇들을 핥다시피 다 비우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특히 연탄을 활용해 불향을 잘 살린 소불고기와 이 지역 특산품 고추장 맛까지 덧입힌 돼지불고기는 평소 불향을 싫어하는 편인 나조차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들만큼 '존맛'이었다.
소불고기 돼지불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된장찌개 맛도 일품이었다. 고기 한 젓가락에 밥 한 술을 더한 뒤 된장찌개 한 수저를 떠먹으면 단짠단짠 혀가 즐거워지는 건 기본이요, 느끼한 기름기를 걷어냄으로써 입안이 개운해지는 게 환상적인 맛의 조화를 이루었다.
순창 새집은 낮 12시에 영업을 시작해 저녁 7시까지 연중무휴로 영업을 한다. 일하는 사람들은 힘들겠지만, 나같은 손님입장에선 휴무일 신경 쓸 필요없이 아무 때나 마음 내키는대로 가도 맛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얘기 되시겠다.
한가지 아쉬운 건 주차장이 그리 넉넉하진 않다는 거다. 골목길에 위치한 오래된 한옥이다 보니 6~7대쯤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이 간신히 마련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많은 골목길 식당들이 그러하듯이 골목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