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가기 위해 복도 통로를 지나가는 데 뭔가 낯선 풍경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누군가 복사용지 상자 뚜껑을 활용해 모과 여러 개를 담아놓은 거였다. 이게 뭐지 싶어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옆엔 A4 용지에 인쇄한 안내문 하나가 붙어 있었다.
'본관 앞 나무에서 수확한 모과입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마음껏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이 안내문을 보는 순간 나는 반가웠다. 그러잖아도 오가는 길에 모과나무에 열매가 탐스럽게 열린 걸 보며 욕심을 내오던 참이어서다. 인공적인 향이 나는 방향제를 싫어하는 터라 평소 차 안에 뭘 안 두는 성격인데, 모과가 나오는 계절에 한해 한번씩 사치 아닌 사치를 즐겨오고 있는 까닭이다.
횡재했다 싶은 심정으로 잘 익어 향기가 좋은 녀석으로 냉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차 안에 가져다 놓으면 이제 아침 저녁으로 차문을 열 때마다 기분 좋은 모과향이 내 코를 즐겁게 해줄 터였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가 아주 매우 많이 좋아졌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20년 넘게 지금 있는 건물에서 근무를 해왔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런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모과는 변함없이 열려왔었으되 그 열매가 이렇듯 공개적으로 여러 직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진 적은 없었다는 얘기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그래서 물어물어 그 범인(?)을 추적해봤다. 그 결과 예상하고 기대했던 대로 범인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풋풋한 MZ세대 새내기 직원이었다. 과수원이 아니다 보니 수확해봐야 흐지부지 버려지다시피 해온 모과 열매가 아까워 팀장에게 건의해 그같은 기분좋은 나눔을 기획했단다.
이를 보며 나는 요즘 '으르신'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MZ 애들은 너무 이기적이야!"라는 불만을 떠올렸다. 예의 새내기 직원 사례만 보더라도 사실은 MZ가 문제인 게 아니라 사람 나름이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으르신들 중에도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에 책임감이라곤 1도 없는 싸가지없는 베이비들이 넘쳐나는 것처럼, 내 경험에 비춰보면 MZ세대 중에도 배려심과 책임감 넘치는 멋진 친구들이 참 많았다.
물론 MZ세대들 행동을 으르신들 눈높이로 봤을 땐 언뜻 '이기적이고 무책임해 보이는' 구석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준점을 '라때' 으르신들 눈높이에 맞췄을 때 얘기다. 이기적이라 보이는 건 좋게 해석하면 손해보기 싫어 제몫은 확실히 챙기려 들되 그 이상은 침범하지 않는 합리적인 행동이라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MZ들이 다 천편일률적으로 그런 것도 아니다. MZ들 중에는 길거리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기꺼이 달려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친구들도 많고, 앞서 예로 든 모과 나눔을 실천한 새내기 직원처럼 참신한 아이디어와 남다른 배려심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니까 '라때' 타령이나 일삼으며 자신들과 좀 다르다는 이유로 MZ들을 무조건 못마땅한 시각으로 째려보며 틀려먹었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다. 50대 중반을 넘어서며 간헐적으로 '으르신' 소릴 듣고 있는 나를 비롯해 우리 어른들과는 MZ들 행동 패턴이 좀 다를 뿐이다. 그건 '다름'이지 '틀림'은 아니다. 가뜩이나 영호남 갈등이다 남녀 갈등이다 이런저런 갈등도 많은 세상에 꼴난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제발 꼰대짓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