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코 고는 소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by 글짓는 사진장이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제주 여행 첫날, 여행 기분에 너무 들떠 무리한 강행군을 일삼은 까닭이었을 거다. 거기다 11월 중하순 날씨라기엔 너무 따뜻하다 보니 마라도 다녀오는 배 2층 펑 터진 전망대 뷰 자리에서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흉내내기라도 하듯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다 맞은 탓도 있었을 거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쿡쿡 쑤셔오기 시작했다. 몸살기의 시작이었다. 여기서 몸을 좀 사리며 약이라도 챙겨먹었어야 했는데,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너무 안일하게 일정을 강행한 게 몸에 더 큰 무리를 일으켰던 듯하다.



결국 오후가 되자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온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져 일거수일투족이 힘들어졌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면 늘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를 외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뒤로 처지더니만 나중엔 간신히 가족들 뒷꽁무니를 쫓아 보조를 맞춰 따라 걸을 지경이 돼버렸다.



중간중간 그런 내 눈치를 살피던 아내는 "병원 가봐야 하는거 아니에요?", "많이 힘들면 우리 남은 일정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갑시다" 하는 말들을 반복했다. 하지만 어렵게 제주도까지 갔는데 고작 몸살 정도로 가족들 여행까지 망치고 싶지 않다는 내 고집이 완강히 이를 거부했다.



그 고집의 대가는 참담했다. 약국에서 사온 몸살감기약과 해열제 몇 알로 어찌어찌 극복해보려 했으나, 그날 밤 내내 계속되는 고열과 몸살에 나는 끙끙 앓아야만 했다. 그런 나 때문에 아내 역시도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채 이불을 두겹으로 덮어준다, 찬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준다 어쩐다 난리를 쳐야만 했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나와 아내는 둘 다 퀭한 모습이 돼있었다. 그런 몸으로 여행을 계속하는게 무리다 판단됐는지 아내는 "여행이고 뭐고 남은 일정 다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갑시닷!" 하고 강경하게 나왔다. 전날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완고한 태도였다.



그런 아내를 달랠 겸 두 딸들과 모처럼 함께 하는 가족여행을 기분좋은 추억으로 잘 마무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는 타협안을 내놨다. 평소 아주 매우 많이 안 친하게 지내는 편인 병원을 내 발로 자진해서 방문해 주시기로 한 거다. 주사라도 한 대 맞고 나면 어느 정도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서였다.



병원 의료진들은 여행 중 갑자기 몸살에 걸려 찾아왔다는 설명에 "이 정도는 약 좀 드시면 충분히 남은 여행 가능하다"며 진통소염제 성분의 링겔과 몸살약을 처방해줬다. 한 시간 남짓 링겔을 맞으며 병원 침대에서 푹 쉰 덕분인지 이날은 전날보다 훨씬 나은 컨디션으로 동선을 최소화해가며 여행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아내 쪽에서 발생했다. 약 기운에 취해 힘들게나마 어느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난 나와는 달리 끙끙 앓는 남편을 보며 애가 닳아 밤을 거의 꼬박 새우다시피 한 아내가 병든 닭처럼 해롱거리기 시작했던 거다. 내 컨디션 때문이 아니라 아내 컨디션 때문에 여행 일정에 차질이 우려될 지경이었다.



급기야 여행 중간에 승마 체험을 하러 가기로 한 일정에 이르자 아내는 "숙소에서 쉬고 있을테니 딸들만 데리고 다녀와요" 하고 우리 등을 떠밀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 여행 일정에는 절대 빠지려 들지 않는 평소 아내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이었다. 그만큼 몸이 많이 힘들었단 얘기일 거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래 놓고는 또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고 했다. 차라리 같이 가서 차 안에서 쪽잠이라도 잘 걸 그랬다나 머라나 하는 걸 보니 남편과 딸들만 보내고 난 뒤 마음이 영 편치 않았었던 모양이었다. 즐거워야 할 가족여행 분위기가 자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차질을 빚을까 염려됐던 듯하다. 참 걱정도 팔자다 싶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병원에서 링겔을 맞는 투혼을 발휘해가며 여행 3일차를 그럭저럭 잘 마무리하고 맞이한 밤, 초저녁부터 독한 병원약 기운에 취해 잠이 들었던 나는 새벽녘에 문득 잠이 깼다. 뭔가 낯선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뭔가 싶어 주변 분위기를 살펴보니, 세상에나 마상에나 아내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것도 방이 떠나가라고 아주 드르렁 드르렁 골고 있었다.



평상시 코를 심하게 고는 편인 나를 향해 "같이 사는 아내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부족한 거 아니에욧? 어쩌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코를 골 수가 있대요?" 하고 팩트폭격하기를 즐길(?) 정도로 코 고는 것과는 거리가 먼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코를, 그것도 아주 방안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순간 내 머리 속에 산울림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놓고 주무시는구나/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하는 귀절이 그것이었다. 변변치 못한 남편놈 때문에 병간호하느라 잠도 못 자고 하루 종일 마음 고생하더니만 결국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골아떨어졌구나 싶었다.



코를 드르렁거리며 아주 단잠에 취해 있는 낯선 아내 모습을 어둠 속에서 한참동안이나 들여다 봤다. 이 보기 귀한 장면을 하나 녹화라도 해놔야 하나 잠시 고민되기도 했지만, 아내의 곤한 잠을 방해할까봐 그만두기로 했다. 절대로, 결단코 한 대 맞을까봐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그 코 고는 소리가 아름다웠다. 나태주 시인의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가 순간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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