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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Dec 12. 2023

서울의봄 OST '전선을 간다'는 누굴 위한 노랠까?

이미지출처 : MBC뉴스 화면캡처



141분, 무려 2시간하고도 21분이 더해진 긴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평소와는 달리 내 몸은 좌석에 붙박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같이 영화를 본 다른 많은 관객들도 그러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순간 서로 먼저 나가기 경쟁이라도 하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관객들이었건만, '서울의 봄'을 보고 난 관객들은 좀 달랐다.


영화가 남긴 여운도 컸지만, 아마도 발목을 꽉 움켜잡는 듯한 서글픈 군가 한 자락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수도 없이 많이 들어봤고 불러봤을 '전선을 간다'가 그것이었다. 마치 울음처럼 들려오는 그 군가 한 자락이 묘한 끌림으로 나를 비롯한 '서울의 봄' 많은 관객들 발목을 붙잡았던 거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 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참 동안을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 군가의 어떤 대목이 나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 발목을 붙잡는 힘을 발휘했을까? 그러다가 문득 영화 속에서 반란군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분) 장군의 절규와도 같은 한 마디를 떠올렸다.


"내 눈 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계엄령 치하에서 계엄사령관인 육군 참모총장이 반란군에 의해 납치당하고, 부사령관 격인 참모차장은 뭣이 중한지도 모른채 우왕좌왕하고 있으며, 국방부 장관은 저 한몸 살자고 한미연합사령부다 어디다 도망다니기 바쁜 와중에 혼자 동분서주하던 이태신 장군이 죽음을 각오하고 반란군과의 일전을 치루기 위해 나서는 길에 던진 한 마디였다.


반란군에 가담한 예하 연대장들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펜대나 놀리던 행정병까지 다 끌어모아봐야 100명 남짓 밖엔 남지 않은 수도경비사령부(이하 수경사) 부대원들을 이끌고 막강한 적들과 맞서 싸우겠다고 나서는 길이었기에 이같은 그의 한 마디는 더 묵직하게 관객들에게 다가왔다. 비록 실제 역사에선 수경사와 반란군 간 무력충돌은 없었다고 하지만, 대세가 기울대로 기울었던 그때 그 순간 반란군과 맞서겠다 나선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죽을 각오를 한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내 눈 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며 분개해 나선 이태신 장군의 '한 맺힌 눈동자'가 내 머리 속 어딘가에서 '전선을 간다'라는 노래와 오버랩돼 가슴을 크게 울렸던 모양이었다. 이기기 힘든 싸움을 끝내고 나면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에 묻혀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이나 기억해줄까 말까 한 신세가 되고 말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전등화 위기에 처한 내 조국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나선 그의 '한 맺힌 눈동자'를 위로하기 위한, 나아가 12.12 군사반란 과정에서 억울하게 쓰러져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위한 진혼곡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 '한 맺힌 눈동자'와 숱한 희생자들은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서울의 봄'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한다. 이태신 장군 같은 숱한 죄없는 사람들의 죽음 혹은 고통을 밟고 올라서서 대통령 등 국가 최고권력을 누린 뒤 죽을 때까지 큰소리 탕탕 쳐가며 잘 먹고 잘 살다간 전두광 장군과 반란군 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라고 속삭인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또 언젠가는 전두광 같은 반란군들에 의해 이태신 장군 같은 죄없는 이들이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에 묻히는 아픈 역사를 다시 되풀이 할 수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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