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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Dec 26. 2023

정년퇴직 아버지들을 울린 딸의 편지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아빠, 취업을 해서 직장이란 델 한 3년 다녀보니까 이제서야 비로소 알겠어요. 이놈의 직장 때려쳐야지 싶은 마음 굴뚝 같다가도 자식놈 얼굴, 가족들 행복 떠올리면 그게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그런 마음으로 30년 넘는 긴 세월동안 이를 악물고 버텨왔을 우리 아빠 마음을 이제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형 스크린 위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눌러쓴 손편지가 띄워진 가운데, 정년퇴직자들 중 누군가의 딸이 얼마간 촉촉한 음성으로 이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자 참석자 테이블 여기저기서 코 훌쩍이는 소리들과 눈가를 몰래 문지르는 장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동석한 부인이 남편 등을 쓰담쓰담하며 함께 눈시울을 붉히는 부부도 있었다.


행사 진행요원으로 참가한 나조차도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었으니 당사자들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누구 딸인지도 모르는 목소리가 들려주는 애틋한 사연에 내 자식놈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찌르르해지는 데다가, 이제 며칠 뒤면 몇십 년 정든 직장을 떠나 제2의 인생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이별의 비감까지 더해지니 참 복잡다단한 심경이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정년퇴직자들을 대표해 작별사 겸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한 선배직원은 "신입사원으로 갓 출근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날 눈떠 보니 삼십 몇 년이란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가 있네요"라고 감회를 토로하다 말고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목이 메이더니만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60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맞이했던 참 많았던 만남들 못지않게 많은 이별도 겪어왔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 이별인 듯 싶었다.


아마도 그 짧은 순간, 정년퇴직 선배들 머릿 속으로는 회사와 함께 한 30~40년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으리라. 신입사원으로 갓 입사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버리 헤매이던 시절, 신입이답게 뭔가 큰 실수를 저질러 혼이 났거나 뜻하지 못했던 선배 직원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던 기억, 정말 내가 이러고도 회사를 다녀야 하나 싶어 윗대가리를 확 들이받아 버리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만 했던 순간 등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테니까.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들을 돌아보며 회한 같기도 하고 안도 같기도 한 복잡다단한 심경이 담긴 모습들을 지켜보며 나는 문득 가수 양희은이 불렀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떠올렸다. 6.25 참전용사였던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 힘에 겨웠던 삶이 생각날 때면 한번씩 마음 속으로 되뇌어 불러보던 노래인데, 거기 나오는 '늙은 군인'이라는 가사 대신 '늙은 직장인'을 붙여도 느낌이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어서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정년퇴직 시즌이다. 누군가에겐 이 맘 때가 새해를 맞이할 생각에 가슴이 들뜨는 시간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평생 몸 담았던 정든 직장과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삶의 기로가 되는 시간들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문구도 있듯이 정년퇴직을 맞는 모든 이들이 멋진 제2의 인생을 맞이해 가족들과 더불어 노년의 안락을 한껏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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