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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an 02. 2024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말은 틀렸다

세뱃돈 주듯 "옛다!" 하고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인터넷 유머 중에 초등학교 급식실을 배경으로 한 게 하나 있다. 배식을 맡은 한 식당 아주머니가 밥과 반찬을 담아주며 "많이 먹어~어" 하고 말했는데, 그걸 들은 한 학생이 입술을 삐죽이며 "췟, 많이 줘야 많이 먹지" 하고 투덜댔다는 거다. ​


맞는 말이다. 많이 줘야 많이 먹을 수 있다. 많이 주지도 않으면서 많이 먹으라는 어른식 입에 발린 인사말은 초등학생 입장에선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었던 셈이다. 자기가 복 줄 것도 아니면서 무책임하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 인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이 맘 때면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네곤 한다. 친한 사람에게건, 일 때문에 그냥저냥 가벼운 인사 정도 나누며 지내는 사람에게건 상관없이 틈만 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들이민다.​


그런데 이 인사말이 난 좀 이상하다. "안녕하세요"나 "식사는 하셨어요?"는 티오피(Time, Occasion, Place)만 맞으면 아주 매우 많이 자연스런 인사말이 되는 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어떤 경우이건 이상한 인사말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복을 많이 받으려면 그걸 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설날 세뱃돈처럼 옛다 하고 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복이라는 건 무형의 재화이고, 돈으로 사거나 창고에 쟁여놨다가 필요할 때 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복이라는 걸 받을 수 있을까? 복주머니를 한복 같은 전통의상에다가 달고 다니는 풍습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 복이라는 녀석도 한국식 문화유산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그 해답 역시 우리 전통문화에서 찾아야 하지 싶다.


​그에 비춰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저 유명한 <흥부전>이다. 착하게 산 흥부는 복을 받아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큰 부자가 되고, 심술 맞고 못된 심뽀로 일관된 삶을 산 놀부는 벌을 받아 그나마 갖고 있던 재산마저 홀랑 날려먹은 채 거지꼴을 못 면한단 얘기가 바로 그 힌트다.​


결국 복을 받으려면 흥부처럼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혹은 심청이처럼 효성스럽게 살거나 춘향이처럼 올곧게 잘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만 하늘이 감동을 해서 없던 복도 끌어다가 듬뿍듬뿍 안겨준단 얘기 되시겠다.


그렇다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은 "착하게 잘 사세요"라는 말쯤 될 거다. 좀 더 확대 해석하면 "하늘이 지켜보고 있으니 못된 짓 하지 말고 착하고 효성스럽고 올곧게 잘 사세요. 그러면 하늘이 복을 내려줄 겁니다"라는 말쯤 될 거다.


뜻은 알겠지만 여전히 말투가 많이 이상하다. 내가 줄 것도 아니면서 마치 세뱃돈처럼 옛다 하고 줄 것처럼 말하는 게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마치 공수표를 날리는 거 같은 느낌마저 들어 양심에 거리껴지기까지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비문(非文)내지 어불성설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성격이 지랄맞은 탓에 나만 그런 건지는 몰라도 지난 수십 년간 이 인사말을 건넬 때마다 나는 그런 감정을 느껴왔다.


그러던 중 몇년 전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접한 적이 있다. 이걸 듣는 순간 '그래, 바로 이거닷!!!'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이란 건 아무 한 일도 없이 누가 던져줘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마다 꾸준히 지어야만 하는 거라는 깨달음이 든 거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내가 공짜로 줄 것도 아니면서 무책임하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 함부로 말하지 말자. 대신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고 인사말을 건네도록 하자. 깨끗이 쌀을 씻어 정성껏 밥을 지어야 맛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열심히 복을 지어야 복도 받을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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