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아버지가 1순위였던 TV 채널선택권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35
요즘은 테니스다 골프다 해서 풍요로운 여가생활을 즐기는 아버지들이 많아졌지만
처자식들과 함께 먹고 사는 게 지상과제였던 예전엔 사정이 많이 달랐다.
라디오 듣기나 TV 시청 같은 돈 안 드는 것들 위주로 여가생활을 즐기는 경우가 많았고,
최대로 사치를 부린대봐야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싸구려 대폿집에서 술 한 잔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만큼 TV 채널 선택권은 대개 집안 가장인 아버지 몫으로 당연스레 귀결되곤 했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시는만큼 집에 계신 동안은 최대한 편안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비록 아버지들 취향이 뉴스나 스포츠 중계 같은 재미없는(?) 것들이라서 불만은 많았지만 말이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안 계시거나 "너 보고 싶은 것 봐라" 할 때쯤에야 채널권이 겨우 우리에게 돌아오곤 했다.
그나마 어머니가 중간에 끼어들어 즐겨보던 드라마라도 보겠다고 나서시는 날엔 그마저 공염불이었다.
지금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TV를 볼 수 있게 돼 가족 간에 채널권을 다툴 일이 거의 없어지긴 했지만
TV에서 만화영화라도 나오는 날이면 문득문득 그 옛날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어린이프로를 보고 싶어 목을 매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TV 근처를 얼쩡대며 내가 밑도 끝도 없이 심통이라도 부릴작시면
네 맘 다 안다는듯 빙그레 웃으시며 "너 보고 싶은 것 봐라" 하시던 아버지 음성도,
급한 마음에 수동식 채널을 다다다닥 돌릴 때면 "이 녀석아, 비싼 TV 고장난다" 하시던 걱정도
모두모두 가슴 사무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