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34
멸치털이 같은 극한작업 하는 곳에 가서 카메라를 들고 얼쩡거리다 보면
시비가 붙거나 심하게는 싸움 직전의 험한 상황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신 자신은 힘든 꼴 험한 꼴 개의치 않고 열심히 일을 하시되
그 모습을 가족 혹은 자식들에게만은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아버지들의 여린 마음 때문이다.
연세 지긋하신 한 어부님께 들어보니 "멸치털이 작업하다 보면 찢겨진 멸치 몸뚱이며
내장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엄청나게 튀는데, 그걸 뒤집어 쓴채 일하는 모습을
특히 가족들에겐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하셨다.
힘든 모습,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보이고 싶지 않은 심리다.
지금은 대학원 나온 박사님까지 지원할 정도로 그 위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우리 어린 시절, 흔히 '청소부 아저씨'라 불리우던 환경미화원 같은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들은 배우고 가진 게 없어 '청소부' 밖에 못하는 당신 모습을 자식들에게 미안해 했고
적지않은 자식들이 그런 아버지의 직업을 타인 앞에 내놓기 부끄러워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다 풍요로운 식탁을 선물하기 위해 그 더운 날 비닐우의까지 덧입은채 힘들게 일하고,
세상이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지 않도록 이른 새벽부터 불철주야 일하는 우리 아버지들이
무엇이, 왜 미안하고, 자식들은 또 왜 부끄러워야 한단 말인가?
내 아는 사람 중 20년 넘게 쇠를 녹이는 용해로 작업을 해온 아버지가 있다.
그는 자식들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섭씨 1500도가 넘는 용해로에서 일한다"며
일반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자랑 삼아 말해왔다.
그와 함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써야만 하되
그걸 쓴채 일하노라면 숨이 턱턱 막히는 방독면이라든가,
작업 중 튀긴 불똥에 '담배빵' 맞은듯 점점이 생긴 상처,
숭숭 구멍 뚫린 내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며
극한직업이라 말해도 좋을만큼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위해 또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를 역설하곤 했다.
멸치털이도, 환경미화원도 따지고 보면 결국 같은 범주에 속하는 일이댜.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 꼭 해야만 할 필요가 있는 일이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에게 보이기 싫어하거나 미안해 할 일도, 자식들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도 결코 아니다.
정작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은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위해 결코 해선 안 될 일들을 양심을 팔아가며 하는 것이다.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앞으론 좀 더 당당해지고
좀 더 당신 스스로와 당신들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됐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