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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Oct 31. 2024

허영만 덕에 찾은 인생 곰탕 찐맛집, 부여 왕곰탕





부여 중앙시장 안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는 왕곰탕은 '왕'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왕 맛있는 국물맛을 자랑하는 곰탕 맛집이다. 허영만 백반기행에도 나왔었다는 소개를 참조해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만화 식객을 그린 허영만 화백은 믿지만 방송국 놈들은 별로 안 믿는 편이다) 찾아갔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인생 맛집이라 해도 좋을 만한 곰탕 '찐맛집'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사실 처음 음식이 나왔을 땐 '이 집 이거 곰탕 맛집 맞낫?' 하는 의문이 살짝 들기도 했더랬다. 언젠가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에 대해 들었던 어설픈 기억이 있어서다. 그 기억에 따르면 곰탕은 비싼 소고기 중에서도 고급진 부위만을 사용해 푹 고아냄으로써 맑은 국물이 나오는 게 특징이라 했고, 설렁탕은 뼈와 잡고기를 주로 사용해 국물이 뽀얗다고 들었었는데, 부여 왕곰탕에서 차려내 온 건 국물이 뽀얀 빛을 띠고 있었기 때문.


그래서 소고기가 지금보다 몇 십 몇 백 배는 더 귀했던 그 옛날엔 소고기 중에서도 고급진 부위를 사용하는 곰탕은 주로 임금님 수라상이나 지체 높은 양반님들 밥상에 올랐고, 소뼈와 내장 등 상대적으로 값싼 재료들이 들어가는 설렁탕은 농민이나 상인들 몫이었단다. 그런 만큼 곰탕을 시켰는데 설렁탕 느낌의 음식이 나왔다면 그 차이를 아는 나 같은 손님 입장에선 아무래도 살짝 의심이가 들 수밖에.


버뜨(but),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나처럼 어디서 귀동냥으로 전해들은 어설픈 지식으로 공연히 아는 척 잘못하다가는 별로 크지도 않은 코 다치는 수가 있다는 얘기되시겠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곰탕과 설렁탕은 그런 국물색 차이가 있지만, 소고기가 옛날보다는 훨씬 덜 귀해진 요즘 들어서는 곰탕에 쓰이는 고기와 설렁탕에 쓰이는 고기 부위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 이름이 뭐시가 됐건 맛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생각으로 곰탕 같은 설렁탕, 설렁탕 같은 곰탕 류의 퓨전 스타일 음식들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건데, 비록 그 기본틀이 곰탕이라 하더라도 설렁탕적인 요소를 집어넣어 더 맛있게 끓여낼 수만 있다면 그깟 경계쯤은 백번 천번이라도 허물고도 남을 음식점 사장님들이 넘쳐나는 시대라는 얘기다.


부여 왕곰탕 역시 그같은 부류의 음식점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40년 넘는 오랜 세월동안 시장 골목에서 '왕'자가 붙는 곰탕 전문점을 운영해 온 양반들이 나 같은 맛집 초짜도 아는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를 모를 리는 당연히 없을테고, 따라서 설렁탕을 곰탕이라고 파는 일 따위는 절대, 네버, 앱솔루트리 없을 거란 얘기되시겠다. 고전적인 의미의 곰탕과 국물 색깔은 다르지만, 거기 들어간 재료와 정성은 곰탕, 그것도 왕곰탕이라는 이름에 부끄러울 일 없는 진짜배기였다는 의미다.


이 집 곰탕이 특히 좋았던 건 경상도 사투리로는 정구지, 전라도 사투리로는 솔이라 불리는 부추 무침과의 기가 막힌 꿀조합 때문이었다. 소금과 후추 간만으로는 어딘가 좀 아쉽다 싶어 다른 단골 손님들 먹는 걸 곁눈질해 부추 무침을 곰탕에 한번 집어넣어 봤는데, 그 조합이 더해지는 순간 세상에나 마상에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다른 어느 곰탕집에서도 맛본 적이 없는 '대존맛' 입에 착착 감기는 국물맛이 탄생했던 거다.


오죽했으면 SNS 맛집탐방 기록에 재미가 들린 얼마 전부터는 아무리 맛있더라도 가능한 갔던 집은 다시 가지 말자는 원칙을 실천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다음에 또 옵시닷!" 하는 말을 내뱉었을 정도. 내가 사는 전주에서 부여 왕곰탕까지 가려면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거의 한 시간은 걸린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름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한 가지 재밌었던 건 이곳 식당이름 왕곰탕에서 '왕'이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했지만 끝내 확인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 사장님이나 직원에게 물어보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라 인터넷을 통해 여러 경로로 알아봤지만 어디에도 그 이름 유래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추론을 한 게 부여가 옛 백제의 왕도이고, 곰탕 역시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던 음식이라 '왕'자를 붙인 것 아닐까 하는 게 그 하나요, 주인 성씨가 왕 씨(이 씨인 거로 밝혀졌다)라 그런거 아닌가 하는 게 다른 하나였다.


그 중 주인 성씨가 왕 씨 아닐까 하는 썰을 꺼내들었다가 나는 자칫 아내에게 등짝스매싱을 맞을 뻔 하기도 했다. 언젠가 라디오방송 컬투쇼에서 들었던 손 씨 성 가진 사장이 기계로 뽑은 면을 사용하면서도 당당히 손짜장이란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는 에피소드를 들은 이후 부여 왕곰탕처럼 그 비슷한 사례가 있을 때마다 내가 패러디를 일삼아 댄 전과가 있어서다. 아재 개그를 아주 매우 많이 싫어하는 아내인지라 그런 류의 개그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모양이다.


부여 왕곰탕은 매일 오전 10시30분부터 저녁 8시30분까지 문을 연다. 오후 2시30분부터 5시까지는 브레이크타임이며, 매주 일요일은 정기휴무다. 좁은 시장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바로 앞에 공영주차장이 위치하고 있어 주차 사정은 좋은 편이며, 식사 후 주차할인권을 받으면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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