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 욕보할매집은 순천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 이 동네에 가야만 맛볼 수 있다는 별미 짱뚱어탕을 먹기 위해 관련 맛집을 찾다가 운좋게 얻어걸린 맛집이다. 사장님 얘기론 이곳이 짱뚱어탕이란 음식메뉴를 처음으로 선보인 원조라 하시는데, 여하튼 영업신고증 기준 47년, 실제론 56년 된 유서 깊은 노포 맛집이기도 하다.
순천 욕보할매집을 찾아가면서 내심 기대했던 건 맛난 짱뚱어탕도 탕이지만 식당 이름에 걸맞는 욕쟁이 할매의 찰진 욕도 한번 견식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최근 전현무계획이란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렇다면 사람들이 엄청 몰릴 게 뻔해 대화는커녕 욕쟁이 할매 얼굴이나 한 번 볼 수 있음 다행이라 생각하며 찾아갔더랬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운 좋게도 식당 입구에서 잠시 휴식 중인 욕쟁이 할매를 만날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식당 입구 쪽에 인터넷 검색 중 언뜻 봤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강빨강한 패션으로 중무장한 욕쟁이 할매가 서 계셨던 것. 토요일 오후 두시 반쯤 느즈막히 방문을 했더랬는데, 그 사이 밀려드는 손님들과 한바탕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신 뒤 잠시 숨이나 돌릴 요량으로 밖에 나와 계신 거라고 했다.
덕분에 "할머니 스타일이 참 멋지신데 사진 좀 한 장 찍어도 될까요?" 하고 사진장이답게 수작질을 부리면서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는데, 몇 마디 끝에 욕쟁이 할매는 대뜸 "전현무 그 오살할 놈의 ××가 사전 연락도 없이 갑자기 쳐들어와 가지고는 방송을 찍는 바람에 손님들이 너무 많이 와가지구 내가 힘들어 죽겄엇!" 하고 시원하게 욕부터 한 번 날려주셨다. 내 입장에선 오 마이 굿뉴스, 땡큐 베리베리 머치였다.
참고로 여기서 오살(五殺)이란 욕 좀 한다는 전라도 할머니들이 입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말로, 한 번 죽이는 걸로는 성이 안 차 다섯 번을 죽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옛날 역적질 같은 큰죄를 지었을 때 사용하던 사형방법 중 하나인데, 그런 의미까지 알고 사용하시진 않겠지만 욕쟁이 소리 좀 듣는 할머니들 입에선 거의 빠지지 않는 단골 레파토리 가운데 하나.
그렇게 '전현무 그 오살할 놈' 때문에 갑작스레 손님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30분 넘게 식당 밖에서 웨이팅을 한 끝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어렵게 어렵게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는데, '전현무 그 오살할 놈'의 여파는 결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간신히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긴 했지만, 그 안엔 우리보다 앞서 입장한 뒤 사장님 처분만 기다리며 숟가락만 빨고 앉아있는 이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전현무 그 오살할 놈'이라는 욕쟁이 할매의 욕이 더더욱 실감이 났던 건 56년 식당 역사상 처음이지 싶은 미친 듯한 손님들 러시로 인해 식당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주방이고 홀서빙 직원이고 거의 반은 넋이 나간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는 거다. 오전 11시30분에 문을 연다는 영업시간과 우리가 식당에 입장한 시간이 3시 좀 넘었음을 감안했을 때 벌써 네 시간 가까이 풀케파로 돌아가고 있었을 테니 사람 몸이 무쇠가 아닌 이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우리가 식당 밖 웨이팅을 하는 과정에서 미리 주문해 둔 짱뚱어전골은 그로부터 다시 40여 분을 기다린 뒤에야 영접할 수 있었다. 기나 긴 기다림에 한 번, 과부하가 걸리다 못해 다소 신경질적으로 변한 직원 태도에 또 한 번 화가 나있던 우리는 "이놈의 짱뚱어전골 맛만 없어봐랏!" 하며 잔뜩 벼르고 있던 중이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맛있었다. 조금만 꼬투리가 잡히면 맛이가 없다며, 이까짓게 무슨 맛집이냐며 툴툴거릴 준비가 완벽히 돼 있었건만 맛이가 있어부렀다.
'전현무 그 오살할 놈' 때문에 적잖이 고생 아닌 고생을 한 끝이라 전투적인 마인드로 먹을 태세를 갖추고 있던 아내와 나 둘 다 그래서 그만 마주보며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을 정도. 이심전심 우리 둘 다 복수심(?)에 불타 웬만하면 맛이 없다고 우겨볼 결심까지 하고 있던 터였는데, 그런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저히 부정하기 힘든 맛이 훅 치고 들어와 버리니 무심결에 절로 웃음이 나왔던 듯하다.
특히 너무 많다 싶을 만큼 넉넉한 자연산 보양식 짱뚱어들과 함께 깻잎, 호박, 우거지 등을 듬뿍 넣어 푹 끓여낸 조합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무슨 양념을 어떻게 넣었는지는 모르겠으되 며칠 전에 먹어 이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던 술조차 해장되는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얼큰칼칼하면서도 깊은 맛 국물과 함께 떠먹으니 특히 그 맛이 가히 예술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을 지경.
맛 측면에서는 56년 전통의 원조 맛집이라는 이름이 결코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고였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전현무 그 오살할 놈' 때문에 이제 막 대박이 터진 탓도 있겠지만, 웨이팅 등 전반적인 운영시스템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는 게 그것이다. 현재는 식당 안에 빈 자리가 생기면 바로바로 입장을 시키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주방이라든가 홀서빙 직원이 몸은 물론 마음까지 바빠져 너무 힘들어한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요식업계의 마이다스 손 백종원이 언젠가 방송에 나와 한 얘기만 참고해봐도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웨이팅이 길게 걸려있는 상황에서 식탁 빈 자리가 생겼다고 해서 무작정 손님들을 입장시키는 건 일하는 직원들과 손님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였다. 일단 식당 안에 들어선 손님들은 내 음식 언제 나오나 싶어 직원들 일거수일투족만 바라보며 사소한 일에도 불만이 쌓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직원들은 필요 이상으로 몸과 마음이 바빠져 금방 지쳐버린다는 것.
브레이크타임 도입도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소문난 맛집들의 경우 일단 문을 열고 나면 줄까지 설 정도로 계속 손님들이 몰려들게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식당 주방이나 홀서빙 직원들은 보이지 않는 손님들의 압박에 등떠밀려 화장실 갈 시간도 내기 힘들 만큼 쉴새 없이 일할 수밖에 없어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듯이 일단은 직원들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맛과 음식 퀄리티, 친절한 서비스도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거다.
순천 욕보할매집은 인터넷에 소개된 정보상으로는 매일 오전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현무 그 오살할 놈'이 다녀가기 전 얘기인 듯싶고, 실제로는 11시30분에 문을 연 뒤 재료가 소진되면 일찍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단다.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가급적 전화로 사전 문의한 뒤 가는 게 좋을 거란 얘기되시겠다.
식당 바로 앞에 별량면주민자치센터가 있어 수십 대 분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는 데다가, 바로 옆엔 별량시장 공용주차장으로 보이는 넓은 주차장도 있어서 주차 사정은 아주 매우 많이 널널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