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화심순두부 본점은 30여 년 전 내가 직장 관계로 처음 전주에 내려왔을 무렵 돌아다녔던 여러 전라도 맛집들 가운데서도 단연 몇 손가락 안에 꼽았던 맛집이다. 오죽했으면 그 무렵 전주를 방문하는 지인들이 있을 때면 열에 여덟아홉은 가깝지 않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집으로 데려가 밥을 사먹였을 정도.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맛본 순두부 요리라는 건 대부분 백탕 느낌의 허연 순두부에다가 양념간장 정도를 취향껏 얹어 먹는게 다였는데, 화심순두부는 이 같은 내 경험과 통념을 송두리째 깨버렸다. 순두부 하면 그 요리 이름마따나 '순한 맛'이라고만 생각해 온 내 통념과는 달리 매콤칼칼한 국물맛을 곁들인 '매운 맛'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무렵 한동안은 화심순두부 한 그릇 먹겠다고 무시로 시 경계를 넘나들곤 했더랬다. 요즘이야 맛집 찾아다니는 걸 취미로 삼는 이들이 많아졌고, 1가구 1차를 넘어 식구수대로 1가구 2차, 3차를 보유한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그 무렵만 해도 밥 한 그릇 먹자고 걸핏하면 시외까지 차 끌고 왔다갔다 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으니 나름 그 독특한 맛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셈이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당시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던 1대 사장님이 매우 깐깐한 성격을 가진 분이었다는 거다. 한 번은 지갑이 아닌 주머니에 대충 넣어뒀던 현금으로 밥값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본 사장님은 대뜸 "돈 구겨 갖고 다니면 복 달아낫!" 하며 가볍게 꾸지람을 하셨다. 그러면서 잔돈을 내줄 때 앞면만 보이게, 지폐 그림 방향까지 맞춰 비록 헌돈일망정 은행 창구에서 새돈 내주듯 반듯하게 내주셨는데, '손님한테 이게 뭐하는 짓이짓?' 하는 반감도 아주 잠시였을 정도로 그런 모습이 아주 매우 많이 인상 깊었더랬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이 '이 집 이거 오래 가겠구낫!' 하는 거였다. 종이 지폐 한 장에도 이렇게 원칙을 갖고 까다롭게 구는 분이라면 음식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개업 초창기엔 제법 잘 나가다가 몇 년 못가 손님들로부터 "돈 좀 벌더니 이 집 맛이 변했넷!" 하는 소리를 들으며 문 닫는 맛집들이 많은데, 화심순두부는 그렇지 않겠구나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 느낌 그대로 화심순두부는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성업을 누리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30년 전보다 테이블 수라든가 주차장 면수가 크게 늘어나 더더더더 크게 성업을 누리고 있다. 그 사이 2~3대 사장님들이 바톤을 이어받으면서 각 식탁마다 주문용 태블릿을 설치하고, 일부 있던 좌식 테이블을 모두 입식으로 교체하는 등 작은 변화를 겪기도 했지만, 레시피와 맛은 여전히 기본에 충실하고 있어서일 거다.
이곳 화심순두부 음식의 특징이자 장점은 직접 만든 식감 좋고 맛있는 순두부를 베이스로 매콤칼칼한 국물맛을 곁들여 며칠 전 먹은 술까지 해장시켜버릴 것 같은 시원한 맛을 선사한다는 것. 한뚝배기가 꽉 차는 느낌이 들만큼 아낌없이 재료를 때려넣어 각 재료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이 순두부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배어든 '존맛'을 선사하는데, 특히 직접 갈아서 만든 고추양념을 사용해 시판용 제품과는 차별화된 한 차원 깊은 맛을 내는 게 맛의 비결이다.
화심순두부 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얘기가 하나 있다. 현재 왕복 4차선 도로를 마주한 채 거의 마주보다시피하고 있는 화심순두부와 원조화심두부 두 곳 중 과연 어느 쪽이 진짜 원조맛집이냐 하는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나 역시 그 점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화심순두부에서 오래 일하신 분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즐겨찾는 화심순두부는 후발주자이고, 맞은편에 있는 원조화심두부가 원조라고 했다. 1960년 경부터 방앗간을 운영하던 원조화심두부 사장님이 인근 운장산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어찌어찌 생두부와 찌개를 끓여 팔게 됐는데,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제법 장사가 잘 됐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인 1983년 화심순두부 1대 사장님이 현재 자리에 두부공장을 세웠는데, 인터넷이 없던 시대라 귀동냥으로만 대충 맛집 정보를 전해들은 사람들이 이곳을 원조화심두부로 잘못 알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냥 보내기가 미안해서 어찌어찌 순두부찌개를 끓여 내줬더니 이 집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결국은 정식으로 음식점 등록을 한 뒤 본격적으로 순두부찌개 백반을 팔기 시작했다는 것.
비록 원조 타이틀은 갖고 있지 못하지만, 50년 넘게 꾸준히 영업하며 변함없는 맛을 제공해오고 있는 덕분에 화심순두부 본점은 전북 완주군을 대표하고 소양면을 상징하는 맛집으로 많은 단골들로부터 사랑받아오고 있다. 그 많은 테이블 수와 주차장 면적에도 불구하고 주말 점심이나 저녁식사 시간 무렵이면 순두부찌개 한 그릇 먹으러 밀려드는 손님들로 빈 자리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원조화심두부와 아직까지도 원조가 어쩌니 이 집이 더 맛있니 저쩌니 논쟁은 여전하지만, 백인백색 백인백맛이라 그건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입맛 취향 문제일 뿐이니 어느 집이 더 맛있다 말할 순 없는 문제이고 각자 자기 입맛 따라 가는 수밖에 달리 정답은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화심순두부 본점은 매일 오전 8시40분부터 저녁 8시까지 문을 연다. 워낙에 소문난 맛집이라 주말이면 이 근처 여행차 관광버스를 대절해 놀러온 단체손님들까지 줄지어 찾아오는 바람에 웨이팅까지 걸리고 있는 만큼 방문 계획시 참고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