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집은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라 느껴지는 '숨은' 김치찌개, 제육볶음, 계란말이 노포 맛집이다. 이곳을 가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숨은'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아마 십중팔구 빙그레 미소를 지으실 건데, 서울특별시의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광화문이라는 그 화려한 거리 뒷골목에 이런 45년이나 된 노포 맛집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
이 집을 방문하게 된 건 거의 우연에 가까웠다. 북촌한옥마을 구경을 거쳐 청와대를 한 바퀴 돌아본 뒤, 청와대 정문과 맞닿아있는 신무문을 통해 경복궁까지 관통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게 그 발단이었다. 두세 시간 동안 거의 2만보 가까이를 걸은 끝에 지칠대로 지친 아내는 "배고팟, 우리 맛있는 것 좀 먹잣!" 하며 뭘 좀 먹자고 호소했고, 이때 문득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식당이 바로 서울 광화문집이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단골집은커녕 언젠가 광화문 근처를 돌아다니던 중 밥 먹을 곳을 찾다가 세종문화회관 뒷쪽 골목길에서 단 한 번 마주쳤을 뿐이고, 그나마 가는 날이 장날이라 마침 휴일이라서 밥도 못 먹은 채 돌아나왔더랬는데, 아내가 뭔가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말하는 순간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집이 딱 떠올랐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 순간 우리가 서있던 장소가 하필 세종문화회관 앞이었다곤 해도 말이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상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나는 다소 미심쩍어하는 아내를 이끌고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서울 광화문집을 찾아갔다. 세종문화회관 뒷쪽 골목에 있었다는 사실과, 상호는 물론 어떤 음식을 하는 집인지조차 모르되 한 눈에 '나 오래된 노포 맛집이얏!' 하는 느낌을 줬던 그 집 밥을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좀처럼 음식점 칭찬을 잘 하지 않는 편인 아내 입에서 "이 집 너무 맛있닷!" 하는 칭찬이 계속 뿜어져 나왔으니 말이다. 이날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제육볶음 2인분과 계란말이였는데, 맛있고 배부르게 잘 먹었으면서도 계속 옆자리에서 풍겨오는 이 집의 또 다른 시그니처메뉴 김치찌개 냄새 유혹에 마음이 흔들렸을 정도다.
원래 처음엔 김치찌개 하나에 제육볶음 하나, 계란말이를 주문할 계획이었으나 제육볶음이 기본 2인분이라는 설명에 어쩔 수 없이 김치찌개를 포기했던 건데, 배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김치찌개를 추가로 시켰어야 하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됐다는 얘기다. 평소 아내가 "주부들은 집에서 맨날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외식할 때 김치찌개 싫어해"라고 강조해 왔던 터이고, 특히 서울 광화문집을 방문한 그날은 너무 많이 걸어서 몸과 마음이 다 지친 상태였던 지라 '꼬기'와 단백질로 체력 보충을 하자는 생각이었건만, 그 선택이 잘못된 거 아닐까 하는 후회조차 살짝 들었을 정도다.
가보지 못한 길처럼 먹어보지 못한 김치찌개에 더더욱 미련이가 남았던 건 이 집 제육볶음과 계란말이 맛이 기대를 크게 뛰어넘었을 정도로 아주 매우 많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제육볶음과 계란말이를 통해 서울 광화문집 사장님 혹은 주방장님의 뛰어난 손맛을 제대로 감지하고 나니 옆자리에서 계속 솔솔 풍겨오는 절로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김치찌개의 오묘한 냄새가 아내와 나를 더더더더더더더 강력하게 유혹했던 거다.
하지만 사실 양심적으로 고백하건대 처음 냄비에 제육과 볶음용 채소들, 양념장을 담아 내올 때까지만 해도 아내와 나는 비주얼상 '이게 과연 맛있을까?' 하는 의문이 없잖아 있었더랬다. 워낙 비주얼부터 화려한 맛집들을 섭렵하고 다니다 보니 비주얼에 대한 기대치가 좀 높아져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막상 냄비가 끓어 제육볶음이 완성된 뒤 한 젓가락 떠먹자마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랏, 이 단순한 조합에서 이런 맛이 나오넷!' 하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한 마디로 말해 코끝을 찡하게 할 정도로 매콤한 맛이 훅 치고 들어오면서도 달콤한 제육 육향이 혀끝으로 살살 녹아 들었고, 자작하게 쫄아든 국물에서는 찌개류와는 또 다른 칼칼한 맛이 입 안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매운 걸 싫어하는 사람이나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평소 매운 거 얼큰한 거 칼칼한 거 좋아하는 우리 취향에는 정말 딱 좋은 '대존맛'이었다.
간장을 곁들여 나온 계란말이 요리도 아주 매우 많이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계란말이라는 요리는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더랬는데, 서울 광화문집의 경우 아주 톡특하게도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있었다. 계란말이 자체는 슴슴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약하게 간을 한 뒤, 짭짤하게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간장으로 간을 맞춰 먹으라는 의도인 듯했는데, 소금 섭취량에 대해 민감한 요즘 시대 트랜드에 잘 어울리는 요리다 싶었다.
모처럼 서울특별시로 놀러간 전주 촌놈인 내가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우연히 발견한 45년 노포 맛집 광화문집은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업을 한다. 인터넷 정보상으로는 5호선 광화문역 8번 출구에서 60미터 거리라고 나오는데, 내 경우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세종문화회관 옆길로 빠져나간 뒤 오른쪽 몇십 미터 거리 아주 오래된 동성각이라는 중국집이 있는 좁은 골목길을 거쳐 찾아갔었더랬다. 방문 계획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