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오선모옛날김밥 재오픈 3일차이자 첫 주말인 지난 토요일 새벽, 다른 여행일정을 곁들여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던 나는 그 앞에서 적잖은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나름 오픈런을 한답시고 5시40분쯤 일찌감치 도착을 했음에도 이미 대기줄이 까마득하게 밀려있었기 때문이다.
2년여의 휴식기를 가진 끝에 지난 3월20일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 SNS 이웃이자 프로급 맛집 탐방러 한 분이 재오픈날 오픈런을 해서 두 번째 손님이 됐었노라는 경험담 등을 종합해 '문 닫기 직전까지만 해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손님들로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뤘다더니 아직 소문이가 덜 난 모양'이라 판단해 아주 쪼금 여유를 부렸더니 그게 그만 낭패를 불러일으킨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30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 줄 서면 되겠짓!' 하고 나는 또 한 번 여유를 부리는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김밥 몇 줄 마는데 그까잇거 시간이 걸리면 얼마나 걸리겠어 하는 생각이었는데, 만일 그때라도 상황을 제대로 판단했더라면 5시간 가까운 웨이팅 지옥을 겪는 일은 절대 없었을 테니까.
불길한 예감이가 슬슬 들기 시작한 건 웨이팅을 시작한지 30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줄이 절반쯤은 줄어들었어야 하는데 도통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TV 생활의 달인 같은데 나오는 사람들처럼 오선모옛날김밥 정도 짬밥이면 김밥 한 줄 정도는 몇 초만에 휘리릭 말아버릴 거라 예상했건만 생각보다 진도가 너무 느리게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 무렵,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웨이팅을 견디다 못한 내 앞줄 남자 한 명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자리를 떠났고, 그가 떠난 뒤로도 도통 줄지 않는 웨이팅 행렬을 바라보며 나는 '설마설마했는데 이건 한 번 줄을 서면 기본 3시간은 걸린다는 전설의 그 줄인갓?' 하는 생각에 홍두깨로 뒷통수를 쌔려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나왔던 "이러다가 다 죽엇!" 하는 대사가 가슴을 엄습해왔다.
하지만 이미 파리지옥 같은 끈끈이가 발목을 단단히 옭아매는 웨이팅지옥에 한 발을 걸치고 만 상태였다. 뭐 하나쯤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한다면 못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으나 승부욕이랄까 오기 같은 게 내 등을 떠밀었고, '황금같은 토요일 이미 2시간 가까운 시간을 투자했는데 이건 못 먹어도 고(Go)짓!!!' 하는 생각이 자칫 사그라들 뻔했던 내 전의를 다시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김밥 몇 줄에 목숨을 거는 그런 미친 짓거리를 일삼는 베이비는 등짝을 후려패서라도 반드시 말려야만 했더랬다. 만일 내 옆에 평생의 여행 파트너이자 휴일이면 거의 항상 같이 돌아다니는 아내만 붙어있었더라도 결단코 그런 미련하고 멍청한 짓은 귓때기를 잡아당겨서라도 기어코, 반드시, 앱솔루트리 뜯어말렸을 거였다. 친구 딸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며 아내가 따로 움직이지만 않았더라면.
그러나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었다. 웨이팅지옥에 발목을 잡힌 걸 깨닫고 후회가 드는 순간, 이미 나는 3시간이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오선모옛날김밥 문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거기서 누군가 "드디어 천국의 계단에 올랐닷!" 하고 감격의 외침을 날린 유리문 앞 계단까지 오르는데 다시 30여분이 소요됐고, 웨이팅 중간중간 인터넷 관련정보 검색 중 보게 된 '매장 안에 들어가서만 1시간을 기다렸다'는 후기마따나 다시 1시간10분여를 더 기다린 끝에야 비로소 그 전설의 오선모김밥을 알현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밥 한 줄쯤이야 단 몇 초면 휘리릭 말아버리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한 내 판단부터가 큰 오산이었다. 매장 안에 들어가 직접 김밥 만드는 모습을 보니 일반 음식점들과는 달리 채 썬 당근을 수북하게 쌓아올린 뒤 계란 등 속재료를 추가해 한 줄을 마는 과정이 보통 손이 많이 가는게 아니었던 데다가, 힘들여 오랫동안 줄을 선 끝에 어렵게 전설의 김밥을 득템할 기회 얻은 걸 톡톡히 누리고 싶은 심산인지 다들 기본 10줄씩 맥시멈으로 주문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니 밖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줄이 안 줄어들 수밖에.
한 가지 재밌었던 건 그렇게 오랫동안 줄을 서서 함께 기다리다 보니 기묘한 동지애내지 전우애 같은 게 은연중 형성된 느낌이더라는 거다. 한 예로 5시간 가까운 오랜 기다림의 시간 동안 앞뒤에 나란히 서있었던 두 사람 사이에 서로 어떤 교감이 형성됐던지 마침내 김밥 10줄을 득템하는데 성공한 앞손님 하나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뒷손님을 향해 "화이팅입니닷!" 하고 뜬금없이 외치자 뒷손님 역시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전우를 바라보는 듯한 따끈한 눈빛으로 마주 "화이팅!"을 외쳤고, 그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마치 승리의 기쁨을 모두 함께 나누듯 흐뭇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내가 전국 각지 수많은 맛집들을 돌아다니며 적잖은 웨이팅을 경험해 봤지만, 웨이팅 하다가 친구 사귀는 건 여기서 처음 봤다.
새벽 5시에 문을 연 뒤 4시간여 동안 쉴 새없이 김밥을 말아대던 오선모옛날김밥 엄마사장님이 도저히 못 참겠었던 듯 갑자기 주방 밖으로 뛰어나와서는 다짜고짜 젊은 남자손님 하나를 지목하면서 "나 허리 좀 두들겨줘!" 하고 등을 척 내미는 돌발상황도 벌어졌는데, 순해빠지게 생긴 그가 살살살살 허리를 두들겨 드리자 "그렇게 말구 쎄겟!!!" 하고 버럭 사자후를 내질러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또 한 번은 너무 힘이 드셨던지 빈속에 에너지음료를 한 잔 타드신 엄마사장님이 속이 쓰려 힘들어하자 곁에서 바쁘게 일하던 딸사장님이 "엄마, 그럼 찐계란이라도 좀 드시고 잠시 쉬어욧!" 하고 권했는데, 이에 엄마사장님은 기나긴 웨이팅 행렬이 눈에 밟혀 잠시 비닐장갑 벗고 다시 끼는 시간도 부담스러우셨던 듯 "장갑 벗을 틈도 없는디..."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그러자 줄지어 서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번쩍 손을 들며 "제가 까드릴게욧!" 하고 나섰고, 그 기묘한 동지애가 흐르는 매장 분위기 덕분에 엄마사장님은 손 안 대고 코 풀듯이 위기상황을 잘 넘길 수 있었다.
무려 다섯 시간 가까이 웨이팅을 하다 보니 본 것도, 들은 것도 많아 사설이 너무 길어졌는데, 맛집 소개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인 맛은 한 마디로 아주 매우 많이 좋았다. 전설의 당근김밥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될 만큼 독보적인 맛이었고, 이곳 오선모옛날김밥이 문을 닫은 기간 동안 인근의 다른 음식점에서 같은 메뉴를 선보였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노라는 얘기가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김밥천국 등 김밥을 앞세워 장사하는 전국의 그 수많은 음식점 사장님들쯤 되면 당근 채 썬 거라든가 다른 속재료 들어가는 것들을 눈대중으로, 혹은 이 집 김밥을 직접 사다가 각 재료별로 그램수를 측정해서라도 비슷한 맛 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중국산 짝퉁 제품이 아무리 겉모양을 똑같이 흉내내 만들어도 그 내밀한 속이나 품질까지는 따라잡지 못하는 것처럼 오선모옛날김밥표 김밥 또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앞으로 오선모옛날김밥표 김밥 한 줄 맛보기는 더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 그렇지않아도 전설의 맛이니 어쩌니 하는 별명이 붙어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 들었었는데, 상장 소문만 무성하던 우량주 후보가 어느날 문득 기습적으로 주식시장에 발을 내디디는 것처럼 소문도 요란하게 재오픈발을 앞세워 등장한 데다가, 발빠르게 오픈런을 하러 왔던 손님들이 그 오랜 웨이팅에 지쳐 노느니 염불한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사진들을 찍어서는 실시간 웨이팅 후기다 뭐다 SNS고 어디고 마구마구 올려대는 통이라 호기심 때문에라도 더더더더더더더더더 많은 맛객들이 몰려들 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이 집 전설의 김밥 맛을 보고 싶다면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기 전에 하루라도 서둘러 방문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방문할 결심이 선다면 가급적 주말이나 휴일보다는 평일, 오픈 시간인 5시보다 20~30분 일찍 가는 게 4~5시간씩이나 걸리는 기나긴 웨이팅 피하는 방법이라는 사실도 반드시, 꼭 숙지하고 가실 것을 권고한다.
오전 10시쯤 되니 웨이팅 줄이 확 주는 걸 보니 아예 느즈막히 가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는데, 문제는 이 집 영업시간이 낮 12시까지인 데다가 재료 소진시 조기에 영업을 종료하기 때문에 자칫 어렵게 시간 내 찾아갔다가 허탕을 치는 수도 생길 수 있으니 어느 편이 더 좋을지 잘 판단해야 한다.
오선모옛날김밥 영업시간은 오전 5시부터 낮 12시까지다. 재료 소진시 조기에 영업이 종료되는 경우도 있다니까 이용시 참고하시기 바란다. 차를 갖고 찾아가는 경우 가게 규모가 크지 않아 전용 주차장은 따로 없으므로 인근 골목길을 이용하거나, '주차장 체질이라서 나는 주차장이 아닌 곳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차를 세우지 않는다' 하는 분들은 100여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거마공원공영주차장이 있으니 이곳을 이용하면 된다.
사족이거나 오지랖일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오선모옛날김밥이 '지속가능한 경영'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거다. 내가 지켜본 4~5시간 동안 나이 드신 엄마사장님을 비롯해 일하는 사람 모두가 거의 화장실 갈 시간도 아낄 정도로 컨베이어벨트 돌아가듯 쉴새없이 일을 하고 계셨는데, 영업시간이 낮 12시까지로 비교적 짧은 편이라고는 하나 건강이나 체력을 고려해 적절한 브레이크타임을 운영하는 게 좋지 않을까 판단된다. 또 다시 5시간 줄 설 자신은 없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이 집 김밥을 맛보고 싶은 팬심으로 하는 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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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같은 골목과 계단을 지나, 전설의 김밥을 훈장처럼 받으셨네요.
저는 저번주 익산 고려당을 웨이팅 하다가 실패하고 돌아왔습니다.
여기도 대신 가주세요...ㅎ
블로그도 정독 했습니다.
익산 고려당은 이미 다녀왔지요. 오픈 전에 미리 가서 기다리다가 그야말로 오픈런 ㅎㅎ
@글짓는 사진장이 존경합니다.
언제나 전설의 집을....^^
두번은 못갈듯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