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KI Mar 02. 2017

[책] 슬픈 불멸주의자

인류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상대방이 말한 세 가지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그가 말했던 세 가지는 첫째 오래 사는 것, 둘째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것, 셋째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것.


오래 알아왔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인데도 이렇게나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것이 신기했고 흥미로웠다. 당시 나와 그의 대답이 어째서 그렇게나 달랐을까 하고 이야기나누다가 이게 어쩌면 죽음을 대하는 방식과 관련있지는 않을까 하고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고 나도 그러하겠구나' 를 어느 순간 깨닫고 두려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내내 밤이 되면 문득 그 공포가 찾아왔고, 너무나 무서웠다. 나보다 더 빨리 죽게 될 엄마아빠는 무섭지 않을까, 나도 이렇게나 두려운데 당신들은 대체 어떤 생각일까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하고 생각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았었다. 밤이 되어 온 가족이 잠이 들어 고요한 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에의 공포가 너무나 무서워서 항상 엄마아빠보다 빨리 잠들려고 했다.(그래서 내가 지금까지도 남들보다 일찍 자는지도..) 죽으면 더 이상의 기회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린다는 게 무서웠다.


얼마 전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 이런 기억들이 떠올라 바로 집어들었다.


책은 모든 사람은 죽음에의 공포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불멸'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인류문명의 진보는 불멸성을 추구하는 노력을 통해 달성되었으며 사실 인간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죽음에 집착하지만, 지속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하기에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들(세 명의 연구자가 공동저술)의 주장이다.


다시 맨 처음 언급한 에피소드로 돌아가자면, 그에게 중요했던 세 가지 가치는 결국 '불멸' 과 매우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오래 살거나(실제적 불멸) 혹은 상징적인 불멸(세상에 영향을 끼쳐 이름이 남는 것, 자식을 통해 내 유전자가 세상에 남는 것)을 추구하거나. 참고로 나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 가치로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그리고 일과 사랑이라고 대답했는데 이 것이 죽음공포, 불멸성추구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열심히 생각해보아도 나 자신에 대한 것이라 객관화가 어려워서인지 잘 해석이 안되는 중이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흥미로운 책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도 궁금해서 기회가 된다면 사람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나눠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보면 내가 불멸을 추구하는 방식도 해석해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세 가지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것이 결국 죽음을 대하는 당신의 방식과 관련되어있다.


아래는 발췌문이다. 좀 많다.


"성인들은 보통 죽음에 관한 생각을 멈추고 일상적인 걱정거리로 주의를 돌린다. 연구에 따르면, 죽음을 떠올린 뒤에는 성인들 역시 '걱정은 그만하고 행복하자'는 생각에 집중하려고 한다"


"결국 자기 세계관의 중심을 이루는 믿음에 의혹이 제기됐을 때 죽음은 의식 가까이로 다가간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본인이 속한 문화적 세계관을 더는 신뢰할 수 없을 때 자존감은 무너진다. 두 번째 이유는 타고난 사회적 지위나 자신의 결점, 비현실적인 문화적 기대에 따른 자격 미달에서 비롯된다."


"자존감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개인이 다양한 자기 개념을 갖도록 장려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미국인이면서 기독교인, 변호사, 공화당 지지자, 아버지, 골퍼, 인디애나 주민 후원자, 자원봉사 소방대원이기도 한 것이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점점 자기를 더 잘 인식할 수 있게 됐다. 니체는 '상징을 발명하는 인간은 동시에 자기 자신을 한층 더 예민하게 의식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더 알게 될수록 언어 개발 또한 탄력을 받았다..(중략)..그뿐만이 아니다. 이제 인간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상상하면서 대담하게 꿈을 현실로 바꿔놓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전략을 짜고 결정을 내리고 언어와 상징으로 나타난 상상 속 미래를 바탕으로 설계하고 계획하는 능력은 지구상 그 어떤 다른 생명체들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상징,자의식,미래를 고려하는 능력은 우리 선조들에게 대단히 유용했다. 그러나 이처럼 뛰어난 인지능력 때문에 죽음의 공포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 조상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를 믿었지만 이를 확증해줄 결정적인 표상을 필요로 했다. 의례, 예술, 신화, 종교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문화 요소 덕분에 우리는 초자연적 현실 개념을 구성하고 유지하고 구체화할 수 있었다"


"죽음 의례는 특히 중요하다..(중략)..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이러한 의례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견디고 누구든 맞이할 죽음에 깃든 공포를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억눌렀다."


"종교적 신념 체계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존재 공포를 평정하기 때문이었다..(중략)..모든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불멸을 향한 분투는 공포와 절망을 미연에 방지한다. 따라서 인류는 의례,예술,신화,종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농경,기술,과학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례,예술,신화,종교가 있었기 때문에 농경,기술,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정신분석학자 수잔 아이작스는 이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고도로 정제된 환상 사고와 현실 사고는 확연히 다르지만, 환상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현실 사고는 작동할 수 없다'. 인간은 인지능력탓에 죽음의 인식에도 눈을 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멸망으로 가는 무력감을 낳기 마련이지만 인류는 다행히 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의례,예술,신화,종교가 주는 보호 및 불멸의 감각으로 마음을 무장한 우리 조상들은 수준 높은 정신 능력을 한껏 활용할 수 잇었다. 그 결과 그들은 현대 세계를 이끈 신념 체계, 기술, 과학을 발달시켰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불멸의 존재가 되고자 했다. 첫 번째 방법은 '실제 불멸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결코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다거나 자아의 어떤 핵심적인 부분은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다고 믿는 것이다. 불멸에 이르는 두 번째 방법은 자신의 정체성 중 일부 또는 자기 존재를 상징하는 유물이 자기가 죽은 후에도 계속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상징적 불멸성'은 숨을 거둔 후에도 자신이 여전히 어떤 영원한 존재의 일부로 남을 것이며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적 자취가 영구히 지속되는 것을 보장해준다"


"종교적 신념은 확실히 죽음에 대한 걱정을 누그러뜨린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의심할 수 없는 유일한 사실이 자기가 의심하는 상태임을 깨달았다. 의심하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했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존재해야 했다. 이렇게 사고야말로 실재의 근원이므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분명히 무엇인가가 생각을 한다. 육체와 분리된 정신, 즉 영혼이 생각을 한다. 이에 따라 데카르트는 '육체의 부패가 정신의 파괴를 암시하지는 않는다'라고 결론지었다. 고로 영혼은 존재한다. 적어도 데카르트는 이 문제를 이렇게 이해했다."


"금은 화학적 변화를 겪지 않아 부식되지 않는 금속인 까닭에 불멸성과 연관됐다. 따라서 불멸의 영약에는 금 조각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금을 넉넉히 확보하는 일은 중요해졌고 고대 중국과 이집트 연금술사들은 비금속을 금으로 바꾸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인간은 실제 불멸성을 헌신적을 추구해왔으며 이러한 노력은 인간의 진보, 기술 발전, 과학적 발견에 대단히 크게 기여해왔다. 고등수학은 피타고라스가 사후에 영혼이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이동한다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고자 삶에서 불변하는 측면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괴베클리 테페의 거대한 돌기둥과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데 필요한 공학 기술은 죽음을 둘러싼 종교적 목적을 위해 개발 됐다. 젊음의 분수를 찾으려는 의지는 장대한 여행과 먼 바다를 건너는 항해를 부추겼고 덕분에 지구의 지리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됐다. 화학과물리학은 연금술사들이 금속 반응을 세밀히 관찰하고 측정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누구나 어렸을 때는 초월적인 명성을 열망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어느 순간 그렇게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상징적 불멸성에 다가가기 위해 좀 더 단순하고 미묘하고 심지어 위장된 방식을 이용한다..(중략)..인간은 자기 핏줄을 남기고 후손을 통해 계속 살아간다고 믿음으로써 자기 존재의 덧없음을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많은 연구 결과 죽음을 생각하면 상징적으로나마 죽음을 초월하려는 목적에서 아이를 원하는 욕망이 커진다고 보고한다."


"심리학자들은 저명한 공무원 혹은 유명인을 공격하거나 위협했던 83명에 대한 사건 심리를 연구했다. 그 결과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제1의 동기는 다름 아닌 '악명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돈과 물질은 불멸로 가는 또 다른 길을 열어준다. 부는 우리에게 특별하다는 느낌과 함께 삶의 한계가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남다른 감각을 선사한다..(중략)..이는 테네시 윌리엄스가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말한 인간의 본질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죽어 버리는 짐승이야. 그런데도 돈이 있으면 뭔가를 사고, 사고, 또 산단 말이지. 나는 인간이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사들이는 까닭이 마음 한 구석에 자기가 산 물건 중에 영원한 삶이 있으리라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


"막스베버는 카리스마 리더, 즉 '평범한 사람들과 확실히 구별되면서 초자연적이거나 초인간적인, 적어도 특출난 힘이나 자질을 타고 났다고 간주'되거나 추종자들이 그렇다고 추앙하는 지도자들은 대개 격변의 시기에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베커는 인간은 어릴 때는 부모에게, 어른이 된 이후로는 문화라는 높은 권력자에게 가치있는 존재라고 인정받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난세가 오래 가거나 갑작스러운 위기가 발생하거나하는 등 문화적 사물 체계가 더는 의미와 안정감의 토대가 되지 못할 정도로 경제 침체와 불안에 시달릴 경우 사람들은 기존의 잣대(부모나 문화)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의 충성심은 특정 개인으로 향하기 마련이다..(중략)..베커는 역사는 불멸 이데올로기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불안한 시대를 사는 지금의 우리 또한 특정 종족이나 국가에 헌신하고 카리스마 리더를 신뢰함으로써 속한 집단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자부심과 지배 감각을 얻고 그 결과 실존적 공포를 완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문화는 항상 다른 문화에 위협이 될 소지를 갖고 있다. 이는 자신의 문화와 전적으로 다른 가치 체계에서도 삶이 장렬하게 계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근본적인 믿음에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할 때 우리는 대단히 큰 불안감을 느낀다. 문화적 현실 개념은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공포를 억누르므로 우리 신념에 반하는 신념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공포가 폭발한다."


"우리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들이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상투적인 문화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봄으로써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를테면 운동선수 같은 몸매에 랩을 하는 흑인, 다정하고 가족 중심적인 멕시코인, 똑똑하고 학구적인 아시아인, 총과 성경을 고수하는 시골 노동자 남부인 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죽음을 가까이 느낄 때 사람들은 단순한 고정관념에 들어맞는 외부집단의 일원을 선호한다.우리는 타인을 고정관념에 끼워 맞춤으로써 우리가 가진 문화적 사물 체계를 공고히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상당 부분은 악의 세계를 제거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이를 가리켜 어니스트 베커는 '죽을 운명을 부정하고 용감무쌍한 자아상을 획득하려는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충동은 인류 악의 근본 원인이다' 라고 신랄하게 표현했다"


"우리는 동물들이 교미하는 광경을 볼 때 무서워서 흠칫 놀라거나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웃지만 우리 인간의 정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진지하게 수행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육체와 우리의 동물성은 우리가 언젠가 죽을 육체적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위협적인 요소이다. 이런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려면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섹스에 관해 매우 양면적인 태도를 취한다. 어니스트 베커에 따르면 '섹스는 곧 육체이고 육체는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즉 섹스는 우리가 생물이고 육체적이며 덧없는 존재임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섹스는 우리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어떤 것보다도 확연하게 상기시킨다. 소변과 대변 다음으로 섹스는 인간이 동물에 가장 가까워지는 행위이다."


"모든 문화권은 여성의 신체와 성적 행위를 특히 심하게 통제해왔다. 이는 동물성 및 죽음과 관계가 있다..(중략)..우리 저자들은 여성을 상대로 하는 광범위한 폭력 형태가 어느 정도는 성에 대한 남성의 모순된 감정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성욕과 동물성을 부정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에 성적으로 흥분할 때 불편함을 느낀다. 남성은 여성이 가진 성적 매혹이 욕정을 불러왔다고 탓하며 자신의 육체적 본능을 상기시켰다는 이유로 여성을 폄하하고 학대한다."


"이 책은 어니스트 베커에서 시작했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초월하는 일에 집착한다는 생각은 종교와 철학 사상 양쪽 분야에서 고대부터 있었지만 1973년 베커는 이 개념을 <죽음의 부정>에서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독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베커의 분석이 특정 학문의 진보로까지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금방 사라졌다. 우리 저자들은 죽음의 공포가 인간 행동의 상당 부분을 좌우한다는 베커의 주장에 끌렸다."


 책에서 사람들이 '죽음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상징적 불멸을 추구하기 위한 행위로 언급된 것들이 모두 남성의 특성들과 많이 연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여성이 어떤 계기 혹은 특성 때문에 남성보다 죽음공포가 덜한 것인지(즉 불멸을 덜 추구하는 것인지), 혹은 그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멸을 추구하게 된 것인건가 하는 궁금증.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들을 정리해보고 있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라 조금 조심스럽다. 이것 또한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주제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