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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I Feb 22. 2017

뉴욕에 갔다왔더니 문득.

그리고 여행의 민족 대한민국.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가 뉴욕이더라. 총 다섯 번.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왔었는데, 그땐 여름방학 통째로 뉴욕에서 머물렀다. 아직도 기억나는 East 26번가, Lexington ave 부근의 숙소에서 고등학교 친구인 재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도 없고 이것저것 비좁고 불편했던 숙소이지만, 뉴욕 한복판에서 살아본다는 경험에 그저 행복하기만 했었다.


    대학생 때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해외에 나갔다. 한 도시만 정해서 오래 머물며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을 하자, 이게 목표였다.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을 오롯이 느끼고 싶은데, 겨우 3-4일 머물며 관광지만 돌다가 또 다른 나라로 떠나는 여행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도쿄와 파리를 거쳐서 3학년 때는 뉴욕을 선택했다. 1) 큰 대도시라서 여자 혼자 다녀도 안전할 것 2)충분히 볼 거리가 있을 것 3)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내가 현지어를 할 수 있는 나라'일 것 이 세 가지가 도시선택의 조건이었다. 마지막 항목은 1학년 때 도쿄를 간 뒤에 깨달은 바가 있어 새롭게 추가한 조건이다.


    1학년 때, 당시로서는 도쿄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 전까지 해외여행을 해본적이 없던 터라 첫 해외여행은 안전하고 친숙한 도시로 가고 싶었고 더 멀리 갈만큼 넉넉한 자금 사정도 아니었기에 '역시 도쿄지' 하고 쉽게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매우 즐거웠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크게 남았던 여행이었다. 언어에서 오는 불편함이 생각보다 컸다. 작은 문제가 발생해도 언어가 되지 않으니 해결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 애를 먹었다. 일본어로만 설명되어 있는 전시들도 상당수였고, 그림 없이 일본어로만 되어있는 메뉴판을 보며 난감했던 적도 여러번이었다.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절이라 여행책자에 딸려있는 지도 한 장을 한 손에 들고, 글씨인지 그림인지도 모르겠는 히라가나를 잔뜩 종이에 적어 다른 한 손에 들고는 '같은 그림 찾기' 하듯 이정표와 간판을 찾아 헤맸다. '고생한 기억이 나중에 더 큰 추억이 되는 법' 이라는 말도 맞기는 하지만, 고생여부를 떠나 어디를 가고 무언가를 보고 먹어도 context가 이해되지 않으니 재미도 덜하고 경험한 것을 제대로 소화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 뒤로는 꼭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나라 언어를 배워서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는 되는 상태에서 여행을 하자 생각했고 도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내년엔 파리에 가겠어' 하고 결심하며 곧장 프랑스어 학원을 등록했다.


    그러고 나니 너무 신나는 거다. 학교에서 프랑스어 회화수업을 듣고, 따로 프랑스어 학원을 다니고, 프랑스 영화는 모조리 챙겨 보면서 공부했고 1년 내내 파리 갈 날만을 기다렸다. (이 땐 심각하게 불문과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2007년 여름, 파리로 갔다.

(파리여행사진을 찾으러 몇 년 만에 미니홈피에 들어가봤다. 많은 사진들이 잘 남아있더라. thank you, Cyworld!)


2008년 뉴욕여행 때는, 지난 2년 간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현지인놀이' 에 익숙해진 터라 더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붐비지 않는 시간을 골라 빨래더미 잔뜩 들고 코인세탁방을 가고, 생소한 식재료들로 국적불명 요리도 곧잘 시도했다. 공연시간 임박해서 저렴하게 나온 표를 구해 뮤지컬,발레,클래식공연을 매주 즐기는 호사도 누렸다.


    뉴욕, 그러니까 맨해튼은 나에게 '절대 살고싶지는 않지만 언제 어느 때 가도 재미가 보장되는 도시' 였다. 겨우 강남구,서초구를 합한 정도의 작은 면적에 온갖 인종과 국가가 섞여 각자의 개성대로 살아가는 곳이라 골목골목마다 서로 다른 색깔이 있고, 24시간 사방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들로 원없이 놀 수 있는 곳이지만 편안함, 안정감은 기대하면 안되는 곳. 다양한 색을 가졌다 보니 모든 연령층이 각자 취향에 맞게 즐길 것들이 있고, 그래서 내가 각 나이마다 경험하는 뉴욕의 모습들도 참 달랐던 것 같다.  


    2017년 2월, 그렇게 또 뉴욕에 왔다. 졸업하고 나서 도쿄는 세 번, 파리는 한 번, 뉴욕은 네 번 더 갈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자주 가게될 줄 알았다면 절대 평생 갈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도시들을 여행하는 게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듯 하다.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동안 세상이 달라졌기도 했다. 마트에 들러 생소한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해먹곤 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식재료들이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마트에서는 구하기 힘든 맥주, 치즈 정도만 산다.

이게 다 내 것이었으면 해

    여행책자에 나온 맛집을 가서 긴 줄을 하염없이 기다리기 보다는, Yelp를 켜서 맛집을 미리 예약해두거나 또 뉴욕에 사는 친구들에게 추천을 부탁한다. 이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아가고 있기에 이곳저곳 발품파는 쇼핑보다는 내 취향인 '빈티지샵' 만 검색해 돌아다니며 짧고 굵은 쇼핑을 한다. 주요 관광지를 도는 단체 가이드상품보다는 내가 원하는 관광코스만 골라 개별적으로 가이드받을 수 있는 마이리얼트립을 활용한다.

 

    여행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숙박도 까다롭게 고른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가지 않고, Airbnb에서 마음에 드는 지역, 인테리어를 골라 예약한다. 이건 정말 최근의 변화인데, 이른 아침부터 관광을 즐겨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고 반나절 그냥 숙소에서 뒹굴며 즐기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취향이 어느 정도 확고해진 까닭도 있겠지만 결국 큰 틀에서는 '시간을 사용하고 불편함을 감수해 돈을 절약하자' 에서 '돈을 사용해서 안락함과 시간을 사자' 로 바뀐 거다. 이제 한 달 이상의 장기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큰 결단이 필요한 나이,상황이 되었고, 넉넉한 시간의 반대급부로 '월급'과 약간의 '여유자금'이 생겼기에 시간을 쪼개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적다보니 또 여행가고 싶어지네.

두 이미지의 출처는 아래 링크에.

    참고로 전세계에서 운항횟수가 가장 많은 노선이 김포공항-제주공항 이다. 온라인 여행산업 성장세가 가장 빠른 나라 1위.인도, 3위.브라질, 4위.중국, 5위.러시아. 인구깡패라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이 나라들 사이에 당당히 2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이쯤 되면 배달의 민족 아니고 여행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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