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의 역할, 그리고 작가-소장자의 관계
처음 작품을 사게 된 건 몇 년 전의 일인데, 사실은 계획에 없던 구매였다. 초대받은 아트페어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게 되었고 마침 같이 전시를 보던 지인들이 아는 작가분이기도 해서 작가님과 함께 작품들을 살펴보며 설명을 들었다. 이왕 설명도 들었는데 그냥 '네 잘 들었습니다' 하고 돌아서기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계속 눈에 들어오던 작품 하나가 있어 고민하다가, '차도 없고(사실 면허도 없고) 명품백도 없으니깐 뭐 이 정도쯤은 사도 되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덥석 큰 돈을 냈다. 그렇게 소장하게 된 첫 작품이 인동욱 작가의 아래 작품이다.
처음 미술품을 구입하는 거라 이것저것 다 신기했던 것 같다. 부가세 면제에 카드결제도 되고, 심지어 할부도 된다. 작품보증서라는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 가장 신기했던 건 미술시장의 가장 중요한 Player 인 '갤러리'의 존재.
갤러리는 일단 작품의 유통채널로서 기능한다. 내 경우 작가에게 먼저 컨택해서 구매를 문의했더라도 갤러리를 통해 구매하도록 안내받았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일단 거래과정에서 오는 크고 작은 번거로운 일들을 갤러리에서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갤러리는 작품과 관련한 다양한 고객의 문의응대, 결제, 작품보증, 배송, 이후 A/S까지 모두 책임을 진다. 이 대가로 갤러리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일반적으로 거래가격의 50% 수준. 꽤 높다. 통상적인 리테일에서 유통채널과 판매자의 수익배분비율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고, 높은 수수료율로 악명높은 백화점(35-40%) 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미술시장에서 힘의 균형이 갤러리에 쏠려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갤러리가 권력을 휘둘러 작가들을 착취한다, 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급(작가,작품)은 많은데 아직까지 수요가 충분치 않은 시장이고, 그렇기에 그 약간의 수요를 지속적으로 찾고 거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수의 유통채널(갤러리)이 힘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시장인 것. (절대적으로 수요가 부족한 시장이라 실제로 만성적인 적자를 보면서도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는 갤러리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어떤 유통채널은, 그 곳에 입점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상품의 가치를 올려주기도 한다. 그런 채널들은 그 후광효과까지 포함되어 다른 채널보다 높은 수수료율을 받는다. 손해를 볼 것을 알면서도 무리해서 높은 수수료를 내가며 백화점에 입점하는 이유는 '우리 상품이 현대백화점에 입점되었다' 라는 것이 좋은 마케팅수단이 되고 또 다른 판매기회들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갤러리도 동일하게 기능한다. 내 작품이 어떤 갤러리에서 전시, 판매되었다는 사실은 작가에게 또 하나의 '이력' 이 되고, 작가의 가치를 올려준다. 얼마 전 원범식작가의 작품을 구입한 표갤러리가 그런 역할을 하는 갤러리 중 하나였는데 그래서 이왕이면 그 곳을 통해서 구입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그런 거였다.
두번째 신기했던 것은 작가와 소장자의 관계. 단순한 판매자와 구매자와는 굉장히 다른 관계다. 작가에게, 특히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혹은 알려지기를 꺼리는) 작가에게 소장자는 단순한 '구매자' 가 아니라 내 작업을 먼저 알아봐 준 지지자이며 나의 작품활동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잠재적인 조력자이다. 실제로 작가들은 작품소장자들에게 메일,문자,대면만남 등 다양한 형태로 최근의 작품활동들을 공유하고 새로운 전시소식을 전하며 관계를 이어나간다.
소장자들 중에는 정신적인 지지 뿐 아니라 작가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물질적 후원 및 도움(작품을 구입할 만한 지인을 소개한다든지 하는)을 주는 경우가 꽤나 있다. 그리고 명성을 가진 어떤 소장자들은, 그들이 소장했다는 이유 만으로도 작가와 작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동반상승효과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가 그런 슈퍼파워 소장자가 아니라서 그리 도움을 드리진 못하지만 나 역시 작품을 소장한 작가님들과는 연락 주고받고 식사도 하며 작품 소식을 듣는 작가-소장자 관계가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몇 번의 작품을 구입하면 굳이 미술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져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많이 찾아봤다. 이것도 참 직업병이다. 그러다가 서울옥션 주식도 사서 약 1년 정도 들고 있었는데, 지칠줄 모르는 우하향곡선을 그리며 슬프게 정리되었다.
얕게 알면 모르느니만 못하다. 주식시장은 특히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