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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I Dec 29. 2016

Thank you, NAVER

어짜피 또 하다가 말게 될 블로그를 또 시작한다 

얼마 전에 우연히 NAVER메일 들어갔다가 '내게쓴메일함' 에서 과거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옛 사랑의 추억,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고뇌들.. 이런 건 아니고 수많은 과제파일들. 그러니까 학교 컴퓨터실에서 작성하고 네이버 메일로 보내놓고 집에 가서 완성하곤 했던 흔적들이 잔뜩 있었다. 


주로 이런 메일들은 asdf, ㅁㄴㅇㄹ, (제목없음) 이라는 제목들을 갖고 있지


당시 나는 객관식 시험보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어서 주로 중간과제가 많고 주관식 서술형으로 시험보는 수업들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러다보니 과제로 써놓은 글들이 꽤나 있었나보다. 네이버가 잘 간직해준 덕분에 그 기록들을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발견하고 추억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 

  

10년 전, 그러니까 지금보다 10년치 더 멍청했을 시절의 글들이니 보나마나 뻔하고 유치한 글들이겠지,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파일들을 열었는데 이게 웬걸. 꽤 괜찮았다. 절대적으로 잘썼다는 건 아니고 지금의 나보다는 나았다는 말. 다양한 주제에 관해 글을 쓰고 있었고, 하나의 주제를 길게 풀어내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몇 개의 글들을 읽다 문득 어처구니가 없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멍청해졌을까, 겨우 A4 한 장 정도의 글도 멋지게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 10page나 되는 서평을 썼던 영화는(지금 누가 10page쓰라고 하면 절대 못 쓸듯) 이제는 본 기억조차 나질 않고, 지금 그 영화를 다시 본대도 이 정도의 분량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을 거라는 슬픈 확신이 들었다. 


역시 10년 전 즈음에 나에게는 박학다식의 대명사와도 같던 친구에게 '너는 왜 글을 이렇게 잘 쓰니 비결이 뭐야' 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친구는 '네가 잘썼다고 생각하는 글을 찾고 그 글을 여러 번 베껴 써보라'고 했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휘사용력과 문장구사력이 많이 늘게 된다고. 그 말을 듣고 몇 번 해봤었는데 내가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필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베껴쓰는 과업' 을 완수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걸 깨닫고는 금새 그만두었었다. 두 번째로 친구가 말해준 게 있었는데, 일단 많이 쓰라는 거였다. 얕은 글, 멍청한 글이라도 일단 쓰기 시작하면 쓸수록 늘 거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그 두번째 가르침을 실천해보려고 한다. 


사실 이건 나의 두번째 블로그다. 첫 블로그는 2014년 5월 이음을 그만두는 시기와 맞물려 워드프레스로 야심차게 시작했었다가, 호스팅비가 밀리고 뒤늦게 내서 다시 살아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더 이상 나를 신뢰할 수 없었던 호스팅업체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호스팅업체는 절대로 크게 되기 어려울 거다. 나같이 귀차니즘 심하고 무지한 개인에게 '너 잘 걸렸다, 돈을 뜯어가주지' 하는 식으로 서비스 UX 와 가격정책이 설계되어 있었거든. 한 번에 돈을 왕창 뜯어갈 수는 있어도, 신뢰하며 꾸준히 사용할 마음이 들게 하는 서비스는 아니었다. 그에 비해 네이버는 10년 동안 한 번도 열어본 적도 없고 어쩌면 평생 그렇게 묻혀있었을 자료들도 다 보관해주고 있었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겠다 마음먹은 건, 그러니까 NAVER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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