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짜피 또 하다가 말게 될 블로그를 또 시작한다
얼마 전에 우연히 NAVER메일 들어갔다가 '내게쓴메일함' 에서 과거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옛 사랑의 추억,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고뇌들.. 이런 건 아니고 수많은 과제파일들. 그러니까 학교 컴퓨터실에서 작성하고 네이버 메일로 보내놓고 집에 가서 완성하곤 했던 흔적들이 잔뜩 있었다.
당시 나는 객관식 시험보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어서 주로 중간과제가 많고 주관식 서술형으로 시험보는 수업들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러다보니 과제로 써놓은 글들이 꽤나 있었나보다. 네이버가 잘 간직해준 덕분에 그 기록들을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발견하고 추억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
10년 전, 그러니까 지금보다 10년치 더 멍청했을 시절의 글들이니 보나마나 뻔하고 유치한 글들이겠지,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파일들을 열었는데 이게 웬걸. 꽤 괜찮았다. 절대적으로 잘썼다는 건 아니고 지금의 나보다는 나았다는 말. 다양한 주제에 관해 글을 쓰고 있었고, 하나의 주제를 길게 풀어내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몇 개의 글들을 읽다 문득 어처구니가 없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멍청해졌을까, 겨우 A4 한 장 정도의 글도 멋지게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고. 10page나 되는 서평을 썼던 영화는(지금 누가 10page쓰라고 하면 절대 못 쓸듯) 이제는 본 기억조차 나질 않고, 지금 그 영화를 다시 본대도 이 정도의 분량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을 거라는 슬픈 확신이 들었다.
역시 10년 전 즈음에 나에게는 박학다식의 대명사와도 같던 친구에게 '너는 왜 글을 이렇게 잘 쓰니 비결이 뭐야' 하고 물었던 적이 있다. 친구는 '네가 잘썼다고 생각하는 글을 찾고 그 글을 여러 번 베껴 써보라'고 했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휘사용력과 문장구사력이 많이 늘게 된다고. 그 말을 듣고 몇 번 해봤었는데 내가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필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베껴쓰는 과업' 을 완수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걸 깨닫고는 금새 그만두었었다. 두 번째로 친구가 말해준 게 있었는데, 일단 많이 쓰라는 거였다. 얕은 글, 멍청한 글이라도 일단 쓰기 시작하면 쓸수록 늘 거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그 두번째 가르침을 실천해보려고 한다.
사실 이건 나의 두번째 블로그다. 첫 블로그는 2014년 5월 이음을 그만두는 시기와 맞물려 워드프레스로 야심차게 시작했었다가, 호스팅비가 밀리고 뒤늦게 내서 다시 살아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더 이상 나를 신뢰할 수 없었던 호스팅업체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호스팅업체는 절대로 크게 되기 어려울 거다. 나같이 귀차니즘 심하고 무지한 개인에게 '너 잘 걸렸다, 돈을 뜯어가주지' 하는 식으로 서비스 UX 와 가격정책이 설계되어 있었거든. 한 번에 돈을 왕창 뜯어갈 수는 있어도, 신뢰하며 꾸준히 사용할 마음이 들게 하는 서비스는 아니었다. 그에 비해 네이버는 10년 동안 한 번도 열어본 적도 없고 어쩌면 평생 그렇게 묻혀있었을 자료들도 다 보관해주고 있었다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겠다 마음먹은 건, 그러니까 NAVER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