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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I Dec 30. 2016

2016년의 못한 '일'

이거 참 너무 많아서 딱 하나 짚기가 어렵더라고 

잘한 일을 굳이 끄집어 내서 스스로 칭찬하고 만족해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잘하는 건 원래 잘 하는거니깐 계속 유지하면 된다. 찾아내야 할 건 못해서 결과도 엉망인 일, 못했는데 운좋게 결과는 괜찮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일. 


상반기에 비해 일적으로 아쉬움이 많은 하반기였다. 예상치 못한 개인사로 온전히 일에 집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그 개인사를 통해서 여러가지로 깨달은 바가 많은데 그건 나중에 귀찮지 않으면 정리해보는 걸로.) 아무튼 그래서 생각해봤다. 올해의 못한 '일'. 투자한 회사의 재무상황을 챙기고 후속투자유치를 적극적으로 돕는 일. 


    내가 주도적으로 나선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회사가 비즈니스를 잘 해왔다면 재무건전성, 후속투자성사 등은 알아서 따라오는 결과들이며 나는 필요한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라고 건방 혹은 겸양을 떨며, 그러나 사실은 게으른 선택을 했다.  


    창업팀은 내가 만든 회사와 서비스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아주 드물게 한다.주변 회사들의 폐업이나 청산소식 접할 때면 "우리도 조심해야 해" 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조심해야지, 그러나 저건 운이 나쁜 혹은 자격 미달의 어떤 회사의 이야기이지 우리 회사는 그럴리가 없어" 하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안될리가 없어' 라는 조금은 미친 것 같이 보이는 그 확신을 원동력으로 360도에서 터지는 물줄기들 막아가며 버티고, 불가능해보였던 일들을 해내게 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강한 확신을 통한 과감한 배팅에 따른 성공'과 '근거없는 맹신을 통한 무분별한 배팅에 따른 실패'는 사실은 같은 데서 출발한 서로 다른 결과에 대한 사후적 평가이고, 즉 강한 확신을 바탕으로 배수진 치고 달리면 회사를 빠른 속도로 치명적으로 망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강한 확신'을 마냥 긍정할 수 없는 이유다. (회사와 서비스가 치명적으로 어려울 때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정말로 알기 어렵다.) 그렇기에 내부자이면서도 외부자인, 그래서 '그나마' 객관적으로 회사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인 기존 투자자의 역할이 (가끔은) 중요해진다. 회사가 챙겨야하는 중요한 일들을 창업팀만큼 잘 이해하고 챙길수는 없으나 단 하나, 재무projection 과 후속투자유치 등은 회사와 발맞춰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그 사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창업팀과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한데 나는 그 지점에서 올 한 해 여러 번 실패했다. 


    창업팀의 자금이 6개월 남은 시점에서 '투자하고 싶다고 하는 투자사들은 있는데 그들이 제시하는 회사가치(밸류에이션)이 제 예상보다 낮은 거 같아요, 3개월 뒤면 지표가 많이 달라지는데 그 때 다시 IR하려고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금계획은 더 보수적으로 보는 게 맞아요. 3개월 뒤에도 회사가 생각하는 지표를 만들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지표가 올라갈 수록 비용지출도 커지기 때문에 3개월도 버티기 어려운 자금일 수 있어요. 밸류에이션이 아쉽더라도 지금 투자 받는게 좋겠어요' 라고 주장했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투자유치의 어려움을 과소평가 했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회사가, 그리고 이렇게 좋은 숫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회사가 후속투자가 안될리가 없지' 생각해버린 거다. 바보같이. 창업팀이 회사를, 본인들의 비즈니스를 사랑하다보니 조금은 무리한 계획, 강한 확신이 있을 수 있고 그 부분을 파트너이자 조금은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내가 알아채고 조율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시장과 회사의 온도차를 파악하고 조절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 기존투자자인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올 해의 가장 아쉬운 부분. 

   

    배수진치고 방향 딱 하나로 찍고 전속력으로 달도 될까말까한 정글에 신규 입성한 초기 창업팀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하여 항상 사방을 살피며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하겠다' 라고 마음 먹는다면 뭘 판단하고 말고 할 기회조차 없이 게임종료되버릴거다. 그런 면에서 '보수적으로 판단한다' 는 창업팀이 가져야 할 성향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며 '창업'은 강한 확신의 영역이기에 어느 정도의 확증편향은 그들의 기본성향 혹은 생존무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회사와 시장의 온도차를 파악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어쩌면 그 역할은 회사 내부 사정을 약간이나마 알고 있는 동시에 항상 시장에 레이더망을 펼쳐놓고 있는 기존투자자인 내가 했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하지 못했지. (어짜피 투자하고 나서는 결국 창업팀이 알아서 할 일이고 투자자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과욕이고 오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 것도 일견 맞는 말이긴 하다)


    결국 내년에 잘 해야 하는 '일'은 결국 현재 이 시점에서 직업인으로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더 잘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이미 차고 넘치는데 해가 갈수록 더 많아지기만 한다. 그렇다면 우선순위 잘 정해서 할 수 있는 것과 (아직 잘 못하지만 노력해서)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하루 빨리 더 잘 하는 분을 모셔서 더 단단한 팀을 만드는게 중요하겠다. 


쓰다보니 생각이 많아졌는데, 그 생각들을 하다보니 '역시 투자는 어려운 일이고 정답은 평생 가도 없겠군'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여기까지로 올해의 반성을 정리하기로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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