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KI Dec 26. 2018

2018년의 마지막 글

반성할 것이 없는 해가 있기는 한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어느 날 이제는 아무도 안 놀아주고 엄청 심심한 상태라고 생각해보자. 시간은 남아 도는데 넷플릭스도 이제 보다보다 지쳤고, 새로운 모든 것에 시큰둥해진 그런 때를 생각해보자. 그러면 나는 가만히 앉아 과거의 것들을 꺼내보기 시작할 거다. 서랍 속에 들어있는 편지와 사진들을 꺼내고 싸이월드, 페이스북, 드랍박스, 구글드라이브, 그리고 창고에 박혀있던 모토로라 레이저, 아이폰3GS 등 곳곳에 흩어져 '언젠가는 꺼내보겠지' 하고 기다리리던 기록들을 열어보며 아주 천천히 천천히 기억을 하나씩 더듬어나갈 거다. 맨 처음엔 10대, 20대, 30대.. 이렇게 구분해서 과거를 회상하다가, 그래도 시간이 남아 돌아 결국 나는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최초의 순간부터 매 해를 하나씩 곱씹으며 '까맣게 잊고 지냈던 새로운 기억' 을 찾으려고 노력할 거다. 


그러다 어떤 특정한 해는 잘 기억나지 않아 애를 먹을 것이다. 이것 저것 기록들을 모아보니 분명 한 일들은 많은데 그렇다고 딱히 인상적이진 않은, '나는 대체 그 때 무슨 생각으로 살았던 걸까?' 하고 스스로가 궁금해지는 그런 해가 있을 거다. 


...그리고 나에게 2018년은 아마 그랬던 가장 첫 해로 기억될 거다. 올해 참 바빴는데 그렇다고 딱히 뭔가를 했나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게 없다. 


겉보기엔 가장 많은 성취가 있었던 한 해였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예전보다 훨씬 큰 규모의 펀드를 만들었고, 예년보다 더 큰 규모로 더 많은 투자를 집행했으며, 투자한 회사들이 전반적으로 견조한 성장을 보여줬던 한 해 이기도 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공간으로 사무실 이사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몇 가지


첫 번째, 일하는 박희은은 있었으나 그 이외의 박희은은 별로 없었던, 더 나아가서 홀로 생각하고 반성하고 나를 돌아볼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던 한 해였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누군가와 있는 와중에도 핸드폰은 항상 울려댔으며 무엇 하나에 온전히 집중한 적이 거의 없이 1년이 지나갔다. 신경써야 할 일들은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어느 하나 제대로 잡지도 놓지도 못하고서 손가락 사이로 하염없이 빠져나가는 모래들만 어쩔줄 모르고 지켜봤다. 그러다 순간순간 지쳐서 많은 이들의 연락과 요청에 의도/비의도적으로 답하지 않았/못했다.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라 그렇지 못함에서 오는 고통이 꽤 있었다. 


두 번째, 그러다보니 결국 올해 내가 개인적으로 어떤 발전을 하긴 했는가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업의 특성상 일적인 성취는 과거, 그러니까 몇 년 전에 '잘했던' 일로 인해 따라오는 경우가 크고 따라서 올해 어떤 일적인 성취가 있었다고 해도 그건 '올해의 나' 로 인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라기보다는 이마저도 '우리'에 가깝겠지만) 로 인함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몇 년 간은 빠르게 성장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야말로 네트 넘어오는 공을 받아쳐 상대편으로 넘기기에 바쁘기만 했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끊임없이 했으나 그냥 그게 다였던 한 해. 이제 나도 새로운 직업으로 넘어온지 5년 차인데, 거기에 걸맞는 단단한 역량을 지녔는가 하고 질문을 던져보면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과거에 잘한 것은 빠르게 잊고 잘 못한 것은 꼭 기억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꼭 2019년은 올 해의 아쉬움들을 기억하여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올해의 가장 큰 실패, 가장 큰 부끄러움은 '운전면허 취득실패' 다. 윽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