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10년 차 스즈키씨와 2년 차 김씨에 대하여

한국과 일본, 두 개의 다른 커리어시간표

by BAKI

몇 개월 전 일본인 인턴 채용 공고를 낸 적이 있다. ‘월급도 나쁘지 않고, 체류비도 지원하니까.. 한국도 경험할 겸 관심있는 일본인 대학생들이 많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지원자가 거의 없었고 있어도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뿐. 처음엔 ‘아, 우리 회사가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채용공고를 낸 후에 돌아온 피드백들이 "네가 잘 모르나 본데.. 일본은…" 이었다.


들어보니 한국과 일본의 인턴십개념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일본의 인턴십은 1-2주 정도의 짧은 프로그램이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기업 탐방’, ‘현장 체험 학습’에 가까운 가벼운 과정이 많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는 '아니 그게 무슨 인턴십이야.. 겨우 1-2주 탐방으로 어떻게 일을 배워!' 하는 생각을 했다.


다 내가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십 수년 전부터 '일자리는 있는데 일할 사람은 없는' 상태에 들어간 일본은 이미 '아이구 인턴십이라뇨 구직자 여러분, 바로 입사하세요. 경험은 무슨, 와서 배우면 됩니다' 모드라 그런 상황에서 4~6개월짜리 인턴 채용을 떠올린 것 자체가, 일본의 현실을 모르는 오만한 상상이었다.


구인배율 이라는 지표가 있다. 구직자 1명당 몇 개의 일자리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2024년 말 기준 일본 대졸 신입의 구인배율은 1.75다. 거칠게 말하면 ‘눈 감고 이력서를 뿌려도 두 곳 정도는 붙는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은 0.6 수준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노력해도 대졸자 10명 중 3~4명은 신입사원이 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일본은 이미 2013년 전후로 대졸 신입 구인배수 1을 넘기며 ‘일자리는 있는데 사람은 없는’ 상태에 진입했다. 그 결과 더 좋은 인재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가속화되었다. 일본 대기업들은 통상 동시에 공채를 시작하던(슈카츠) 암묵적 룰을 깨고, 좋은 인력에게 대학생 3학년 말부터 ‘비공식 입사 확정(나이네이테이)’을 주기 시작했고, 지금은 공채가 시작되기도 전에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이 비공식 입사확정을 받은 상태라고. (아..이런 상황에서 '일본인인턴채용공고'가 얼마나 호기로운 것이었는가..)


12월 한 달 동안 도쿄에 살다 왔다. 원래 목적은 사람을 덜 만나고 조용히 밀린 일을 정리하는 것이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한국과는 다른 지점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고 그때마다 어떻게 다르지? 왜 다르지? 계속 다를까? 를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차이 속에서 한국에도 어떤 기회가 있을까’가 궁금해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한 몇 가지 데이터가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고, 그 지점이 결국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다.


일본의 대졸자 취업률은 매년 역대 최고 수준을 새롭게 경신하며, 2024년 대졸자 98%가 취업에 성공했다. (한국은 69.5%)

2025년 기준 일본의 평균 취업연령은 남녀 22.5-23세, 한국은 여성 29.5세, 남성 31.9세..군복무기간을 빼더라도 사회생활시작이 무려 7년이나!!!! 차이가 난다.

(각 국가의 통계내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순 있겠으나 실제 내 체감도 일본과 한국의 취업연령이 최소 5-7년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같은 33살에 일본의 스즈키씨는 10년 경력을 가지고 있고 한국의 김씨는 사회에 진입한 지 얼마 안된 신입인 것이다. 국가적인 낭비이기도 하지만, 특히 김씨 개인에게 무지막지한 손해이다. 이는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다. 같은 나이, 같은 능력일지라도 2000년 생의 스즈키씨와 김씨는 어디에서 태어났는 지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단순히 경력 연차의 문제가 아니다. 10년의 차이는 직무 숙련도, 연봉 곡선, 선택 가능한 커리어 옵션의 폭,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시간의 차이로 누적된다. 일본의 스즈키 씨는 서른이 넘는 시점에 이미 여러 번의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고, 이직과 전환을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 반면 한국의 김 씨는 이제 막 사회의 규칙을 배우기 시작하며, 여전히 ‘처음 선택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놓인다. 가장 빠르게 배우고, 가장 많이 시도할 수 있는 시기의 에너지가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대기 상태로 머문다.


이 글은 비판이 아니라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도 2030년 전후로 접어들면, 대학 졸업생 수가 기업의 전체 구인 수요보다 적어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취업난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이 변화가 곧바로 모두에게 체감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가장 먼저 사람이 부족해진 곳은 3D 업종과 중소기업이었고, 대기업과 인기 직무의 경쟁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다.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소득격차가 일본보다 크기 때문에, 이 ‘대기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들의 취업 대기’ 상태는 더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4-5년이 아니라 10년쯤 뒤나 되어야 대부분의 회사들이 사람을 ‘구애하는’ 상황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문제는 그때까지 당신은 기다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10년 안에는 취업시장에 나가야 할 사람들, 곧 대학생이 될, 막 대학생이 된, 그리고 지금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분들은 다른 선택지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일본 이야기. 일본 중견기업의 상당수와 대기업 대부분은 이미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 실제로 도쿄에서 만난 직장인들 중에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적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대부분이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0대 혹은 성인이 된 이후 일본으로 건너왔고, 그럼에도 번듯한 회사에서 잘 일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한국인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많이 했다. “원래 일본어 잘하셨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는데,

“처음엔 하나도 못했어요.”
“1~2년은 진짜 죽을 것 같았죠.”

그리고는 "어찌저찌 살아남아서 지금은 이렇게 일하고 있네요. 하하.” 로 이어지는 대답. 물론 말이 쉽지 타지에 가서 언어를 '일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려놓는 그 시간은 분명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다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는 것.


도쿄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는 고등학생 때까지 서울에 살았는데 수능에 실패했단다. 연세대를 목표로 재수를 하다가 ‘이렇게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 다음은?’ 하는 생각에 갑자기 현타가 와서 무작정 일본유학으로 목표변경. 일본어 한 글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울면서 일본어독학으로 1년의 시간을 거쳐 일본 대학 합격. 아주 유수의 대학은 아니었음에도 한국보다는 어렵지 않게 취업할 수 있었고, 일본어로 실제 일을 한다는 게 정말로 힘들었지만 열심히 일해 인정받고 이직했고, 좋은 금융회사에서 경력을 쌓았고 이제는 더 큰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나이 만 30살, 1년 대학입학이 늦었음에도 이미 8년 차다. 일본어도 일본인들이 ‘한국어 할 줄 아는지 몰랐어!’ 라고 할 정도의 유창한 실력이다.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을지를 생각하면 괜히 내가 다 울컥한다)


일본은 10년 넘는 구인난 속에서 초보자나 비숙련자를 뽑아 교육해서 쓰는 방향으로 조직을 바꿔왔다. 물론 일본 역시 직급이 올라갈수록 외국인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겠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문은 한국보다 크게 열려 있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을 통해 배우고, 버티고,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되어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반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 일본에서 살면서 일하라는 얘기야?”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나는 일본에서 경력을 쌓는 경험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직장을 찾는 데에도 충분히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몇 년을 ‘취업 활동’에 쓰며 대기하는 것보다, 그 시간 동안 실제로 일하며 경험을 축적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나.


그때를 상상하며 굳이 비교해보자. 같은 30살, 한국에서 갓 직장생활을 시작한 경력 1- 2년 차의 김 씨와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쓰며 일본에서 경력 6-7년을 쌓은 30살의 김 씨 중, 누가 더 경쟁력이 있을까. 나는 후자라고 믿는다.

이 글을 쓰면서 '음..왜 나 이 글을 이렇게 열심히 쓰고 있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 지금의 20대가 한국에서 가장 멋있는 세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 선명한 취향을 가지고, 학연·지연·혈연이 아닌 자신의 취향과 지향을 기준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세대. ‘공정함’을 중요한 화두로 끌어올렸고, 국가 콤플렉스보다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 속에서 자라온 세대. 내가 가장 기대하고,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세대다.


이 글은 조언도 정답도 아니다. 다만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과도기 속에서, 가장 멋있는 세대가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적어본 오지랖이다. 지금의 시간이 당신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고, 좀 억울하지만 현재의 구조가 당신을 잠시 멈춰 세우고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사이에 꼭! 이 글에 적은 것 말고도 꼭! 다른 선택지도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멋있는 세대의 안녕을 기원하며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끝.


참고 : 이미 소프트뱅크, 미쓰비시, 라쿠텐, 유니클로 등 일본의 주요한 대기업들도 한국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하고, 대기업들을 모아 취업설명회 및 채용연계컨설팅 회사들도 있으며 본격 구인난이 심각해진 2013년부터 Career In Japan 이라는 일본기업들의 한국인 대상 채용박람회가 매년 진행되고 있다. KOTRA도 적극적으로 일본취업의 기회를 소개하고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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