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로 도시를 다시 짓다, Mirazur 마우로 셰프

맛의 혁명가들 #1.

by BAKI

3개월 동안 중앙선데이에 ‘세계 1등 식당의 비결’이라는 주제로 세 곳의 해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소개했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뛰어난 식당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미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오늘날의 미식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역할을 해온 세 곳이다. 나의 미식 스승님 덕분에 프랑스 망통, 스페인 바르셀로나, 덴마크 코펜하겐을 누비며 최고의 미식을 경험하고 셰프들과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꿈같은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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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가 끝났기에 지면의 제약으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보태 블로그에 정리해 보려 한다. 길고 다소 장황한 글이 될지도 모르지만, 자신만의 미학을 탐구하는 셰프들, 그리고 호기심 많은 미식가들에게 작은 참고라도 되기를 바라며 기록을 남긴다.


첫 시작은 프랑스 망통의 Mirazu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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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와 칸, 프랑스의 반짝이는 이름난 휴양지들 사이에 망통은 어쩐지 소박하다. 한껏 밀려드는 인파로 들썩이다가도 레몬 축제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파도 소리만 남는 바닷가 마을. 이 심심한 해안 마을이 세계 미식의 순례지가 된 이유는 단 하나, 미라주르(Mirazur). 2019년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 미슐랭 3스타, 그야말로 ‘Best of the Best’. 그러나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세계 최고의 맛’이라는 명성보다도, ‘어떻게 한 셰프가 도시 전체를 다시 재생시켰는가’에 있다.


아르헨티나 이민자 출신의 이탈리아계 셰프, 마우로 콜라그레코(Mauro Colagreco). 알랭 파사르와 알랭 뒤카스의 주방을 거친 전도유망한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 때 파리나 런던같은 대도시를 선택하지 않았다. 꿈은 컸지만 예산은 현실이었고, 무엇보다 자유가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히 망통의 한 식당을 매각하려는 주인을 우연히 만나면서 운명이 열렸다. 망통은 국경 지대라는 특수성 덕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풍부한 식재료를 아울러 쓸 수 있었고, 저평가된 풍광이 오히려 그에게 기회로 여겨졌다. 그렇게 1930년대 빌라를 개조해 문을 연 미라주르는, 이제 세계 미식가들이 ‘순례하듯’ 찾아오는 성지가 되었다.

KakaoTalk_Photo_2026-03-07-14-52-15.jpeg 마우로셰프, 나, 미식스승 정윤님, 셰프의 아내이자 Mirazur 의 COO인 Julia


식사는 정원에서 시작된다. 오로지 미라주르를 찾아 먼 길을 온 손님들은 테이블로 바로 안내받지 않는다. 농 부이자 팀원의 안내를 따라 5분 남짓 언덕길을 오르면, 햇살 아래 작은 농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텃밭에서 시작해서 매 년 가지치기 하듯 옆으로 확장한 ‘농장’은 현재 약 1만5000평에서 70여종의 토마토, 15종의 감귤 등 1,500종의 작물이 자라나는 생태연구소다. 농부가 막 딴 잎을 손에 올려준다. 같은 녹색의 잎에서도 각기 다른 향이 터진다. 레몬의 상큼함, 후추의 매운 향, 꿀의 달콤함. 셰프가 말한 “자연의 목소리를 듣는 훈련” 이자 오늘 코스의 시작이다. 작은 잎사귀 하나하나가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배가 은근히 꼬르륵 신호를 보낼 즈음 드디어 식당으로 향한다.


Mirazur농장전경.jpg 사진제공 : Mirazur


새하얀 문이 열리고 좁고 긴 복도가 펼쳐졌다. 복도의 양옆은 유리창 너머로 활짝 열린 키친이고, 수십 명의 셰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동시에 환하게 웃어준다. “환영합니다!” 짧은 인사를 받는 순간, 나는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무대의 관객이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따뜻한 맞이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눈앞에는 ‘압도적인’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시야 가득 담긴다. 이제 곧 방금 정원에서 맛본 잎사귀와 뿌리들이 셰프들의 손끝을 떠나 이 복도를 지나 내가 앉은 테이블에 도착할 것이다.

Mirazur_식당풍경2.jpg 사진제공 : Mirazur


마우로 셰프는 농장에서 작물이 자라나고 저무는 순환 과정을 요리에 그대로 접목했다. 미라주르의 메뉴는 자연의 리듬에 따라 Root(뿌리) → Leaf(잎) → Flower(꽃)→ Fruit(열매) 네 가지 테마가 차례로 순환한다. 주기가 일정한 것도 아니어서 어느 주에는 세 개의 테마가 연달아 이어지기도 한다. 손님들은 매일, 그날의 주제에 맞는 9코스로 구성된 단 하나의 메뉴만 맛볼 수 있은데 같은 테마라도 ‘자연의 순환’에 따라 절기마다 재료가 전혀 달라진다. ‘Flower’의 날에는 수백 송이의 타임꽃이, ‘’Fruit’의 날에는 흰 토마토와 여름 복숭아가, ‘Root’의 날에는 막 뽑은 마늘과 감자가 등장한다. 마우로 셰프는 “우린 매일 365개의 계절 속에 산다”고 말한다. 그의 주방에는 사계절이 아니라 365개의 미세한 시간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음식만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조명과 인테리어, 심지어 직원들의 유니폼까지 이 리듬에 맞춰 변한다. 그래서 같은 공간을 여러 번 찾아도 전혀 같은 경험이 반복되지 않는다.


내가 방문한 날의 테마는 Leaf, 잎이었다. 물론 비둘기, 대구, 가리비 같은 식재료가 코스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단연 ‘잎사귀들’이었다. 테이블 위는 온통 초록이었다. 짙은 올리브색, 연둣빛, 투명한 청록색까지. 어떤 잎은 해초처럼 짭조름했고, 어떤 잎은 민트처럼 쌉쌀했으며, 또 어떤 잎은 씹을수록 꿀처럼 단맛이 돌았다. 그 미세한 차이를 혀끝으로 구분하며 즐기는 일은 내게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잎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서로의 향을 살리고, 또 다른 접시에선 서로의 결을 죽이며 밸런스를 맞춘다. 이날만큼은 고기와 생선이 조연이었고, 잎사귀들이 주연이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잎사귀의 리듬’으로 구성된 한 끼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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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코스 시작 즈음에, 서버가 작은 바구니를 내려놓는다. 그 안에는 매일 같은 모양으로 구워지는, 미라주르의 시그니처 빵이 들어 있다. 이 식당에서 유일하게 ‘날짜와 상관없이’ 언제나 등장하는 단 하나의 메뉴. 밀가루는 망통 인근 농부에게서 공급받은 유기농 통밀, 반죽엔 정원에서 채취한 올리브 오일이 들어간다. 발효는 오랜 시간 천천히. 표면은 진한 황토색을 띠고, 칼집이 터진 자리는 자연스레 벌어진 꽃잎처럼 갈라져 있었다. 한입을 베어 물면, 고소한 향이 퍼지면서 미세한 단맛이 남는다. 셰프는 이 빵을 두고 말한다. “이건 우리 정원의 풍경을 구운 거예요.”. 한 조각의 빵 안에는 망통의 흙과 농부의 손, 미라주르의 철학, 이 도시의 생태계 전체가 응축되어 있었다.

image.png 사진출처 : CNN

그러나 미라주르의 혁신은 주방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식당이 성장하자 지역 농부, 어부, 장인들이 공급망에 합류했다. 지금은 식재료의 70% 이상을 망통 인근에서 조달하고, 정원사·요리사·인류학자·연구원까지 60여 명이 이 생태계를 이룬다. 마우로셰프가 만든 직간접 일자리는 망통 인구 대비 결코 작지 않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가 이끄는 변화는 미라주르 너머로 이어진다. Mitron Bakery, Casa Fuego(아르헨티나식 그릴), Pecora Negra(피자), Ceto(해산물) 까지 미라주르의 팀은 망통 일대에 네 곳의 식음 공간을 열어 추가로 수십 명의 지역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자연스레 망통의 숙소와 상점으로 발길을 옮기고, 농부와 생산자들은 미라주르와 긴밀히 연결되어 안정적인 판로를 얻는다. 제빵사와 농부,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한 네트워크 안에서 협업하며, 도시는 점점 ‘살아 있는 실험실’로 변했다. 마우로셰프는 이 생태계를 ‘미라주르 유니버스’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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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라주르는 ‘Best of the Best’로 불리며 더 이상 순위 경쟁에는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세계 1위의 경험을 선사한다. 미라주르는 그저 유명 관광지에 들렀다 가는 식당이 아니다. 망통이라는 소박한 도시에 자리한 덕분에,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곧 미라주르 자체를 목적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손님들은 어렵게 예약을 하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머무는 동안 미라주르의 제빵소, 피제리아, 그릴 등 ‘미라주르 유니버스’의 또 다른 공간들을 경험한다. 매번 달라지는 메뉴를 맛보기 위해 다시 돌아오고, 그렇게 자연스레 그 유니버스의 일부가 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연과 사람, 그리고 도시를 하나의 공동체로 엮어내는 셰프, 마우로 콜라그레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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