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등 식당의 비결 #2
1편 '요리로 도시를 다시 짓다, 망통 미라주르 마우로 셰프 보러가기
세계 미식의 기준을 가르는 두 축이 있다. 하나는 미슐랭, 또 하나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World’s 50 Best Restaurants). 미슐랭이 한 레스토랑의 기술력과 완성도를 정교하게 평가하는 품평회라면, 50 베스트는 지금 이 순간 세계 미식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에 가깝다. 매년 한 도시를 정해 열리는 50베스트 시상식은 단순한 순위 발표가 아니라, 현재의 미식씬을 대표하는 전세계의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단했던 한 해를 다독이고, 축하와 응원을 전하고, 함께 발전할 것을 다짐하는 축제의 현장이다.
그리고 3년 전 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했던 런던을 더 뜨겁게 달군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이 열렸다. 내 옆자리에는 뉴욕 미식씬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레스토랑 아토믹스(Atomix)의 박정현·박정은 부부가 긴장한 표정으로 순위발표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세계 기라성 같은 레스토랑들 사이, 100위권 진입도 어렵다는 그 무대에서, 뉴욕 내 최고 순위이자 한식의 정체성을 가진 식당으로서 역대 최고 순위인 33위로 그들의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의 전율은 지금도 생생하다.
벅찬 환희를 함께 나누던 그 밤의 온기를 품은 채, 나는 바르셀로나와 산세바스티안을 잇는 미식 기행을 위해 그들과 함께 스페인으로 향했다. 그 여정의 첫 식탁이었던 Disfrutar(디스푸르타르)가, 이후 지금까지 내 인생의 식당이자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게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디스프루타르를 이끄는 세 명의 셰프, 오리올 카스트로, 에두아르트 샤트루크, 마테우 카사냐스는 현대 미식의 성서라 불리는 ‘엘 불리(elBulli)’의 핵심멤버였다. 요리를 과학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분자 요리의 발상지이자 전설적인 레스토랑, 그러나 그 시대를 스스로 닫아버린 엘 불리. 2011년 엘 불리가 문을 닫은 뒤, 세 명의 셰프는 명성에 기대어 화려한 식당을 오픈하기 보다는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를 고민했고, 그 고민에 대한 답으로2014년, 바르셀로나에 디스푸르타르를 연다. 스페인으로 ‘즐기다’ 라는 의미를 가진 식당 이름처럼, ‘우리의 요리가 손님들에게 정말로 즐거운가?’ 를 끊임없이 묻고 실험하기 위해 시작한 여정의 시작.
“손님을 가르치려 들고 싶지 않다”, “테크닉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셰프들이 레스토랑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실제 디스푸르타르의 요리들은 정교한 기술, 수천 번의 실험과 과학적 데이터가 응축된 요리이지만,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결국 손님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하다. “맛있다”, 그리고 “재미있다”.
이들의 시그니처 요리 중 하나인 ‘액체 올리브’는 마티니 칵테일 잔에 단 한 알의 올리브만 담겨 나온다.
손님은 핀셋으로 그 올리브를 집어 먹으라는 안내를 받는데, 겨우 한 알뿐인 구성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러나 입에 넣는 순간, 아주 얇은 막이 터지며 안에 숨겨진 내용물이 퍼진다. 그제야 깨닫는다. 이것은 올리브가 아니다. 동시에 올리브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생각이 곧바로 바뀐다. 이것은 올리브보다 더 올리브 같은 경험이다.
이 올리브에는 껍질도 과육도 없다. 대신 쌉쌉한 맛과 기름진 지방감, 끝에 남는 여운만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이 한 알을 위해 실제 올리브 수십 개가 사용된다. 디스푸르타르는 껍질과 섬유질 같은 질감을 모두 걷어내고, 맛의 핵심만을 응축했다. 올리브라는 재료를 끝까지 밀어붙여 정체성은 오히려 선명해진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접시는 평범해 보이는 튀긴 도넛. 작고 둥근 빵 하나가 달랑, 포크 나이프도 없이 나온다. 손으로 집어 한 입 베어 무니, 캐비아의 짠맛과 사워크림의 산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자개스푼으로 조심스럽게 떠먹는 고급 식재료였던 캐비아가 이 요리에서 만큼은 단독 히어로가 아니라 부드러운 빵과 사워크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맛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존재감이 줄어든 것은 아니되, 캐비아를 둘러싼 불필요한 격식과 긴장은 사라졌고, 고급스럽지만 친근한 한 입 거리 음식이 되었다. 미식이 반드시 엄숙할 필요는 없다는 디스푸르타르의 신념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접시다.
디스푸르타르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바로 ‘R&D’다. 내가 방문했던 2022년 여름, 세 셰프가 가장 몰두하고 있던 R&D테마는 '와인의 해체와 재구성'이었다. COVID19를 기점으로 점차 사람들이 건강이나 개인적 기호로 술을 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음식과 매칭할 음료로 단순히 주스를 내놓는 것은 디스푸르타르의 방식이 아니었다. 세 셰프는 극도로 낮은 온도에서 진공 상태로 와인을 증류해, 알코올 성분만을 정교하게 분리해내는 장치를 직접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와인이 지닌 섬세한 향과 풍미는 그대로 남겼다. 그날 우리는 알코올의 취기를 걷어내고, 포도가 가진 대지의 향과 오크통에서 쌓인 시간만을 추출한 결과물을 맛보았다. 그 한 잔을 마시며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미식이 향하고 있는 한 가지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디스푸르타르의 R&D를 가장 밀도 높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식당 지하에 비밀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2024년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1위에 오른 이후 예약이 거의 불가능해진 이곳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자리가 바로 프라이빗 테이블 ‘라 메사 비바(La Mesa Viva, 살아 있는 테이블)’다. 2021년에 문을 연 원 테이블 공간으로, 셰프들은 이곳을 코로나19 기간 동안 이를 갈듯 준비해 완성한, 자신들이 가장 집약적으로 구현하고 싶었던 경험의 형태라고 설명한다.
라 메사 비바는 디스푸르타르의 실험이 가장 먼저 펼쳐지는 자리지만, 그 실험을 이해하거나 해석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할 일은 잘 설계된 무대의 유일한 관객이 되어 이 시간을 즐기는 것 뿐.
라 메사 비바, 즉 살아 있는 테이블이라는 이름은 과장이 아니다. 스페인 건축 디자이너와 협업해 오직 디스푸르타르를 위해 설계된 이 테이블은 코스의 흐름에 맞춰 열리고, 표면의 질감이 바뀌며, 숨겨져 있던 공간을 드러낸다. 테이블은 고정된 가구가 아니라, 식사의 전개에 반응하는 장치다. 테이블 뿐 아니라 접시가 놓이는 타이밍, 설명이 멈추는 순간, 공간의 동선과 음악, 스태프의 움직임이 하나의 리듬으로 맞물리며 식사는 점차 연극에 가까운 형식으로 변해간다.
20여 개의 코스가 끝나고 디저트가 나올 즈음, 조명은 낮아지고 음악은 잦아들며 식사의 끝이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그러나 그 순간, 분위기는 한 번 더 전환된다. 테이블보가 걷히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작은 상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디저트와 식사 전반에 사용된 재료와 사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채, 그 순간을 기다리며 테이블 아래에 숨어 있었다.
셰프의 설명을 따라 상자를 하나씩 열어가며, 우리는 이 식사가 단순히 요리를 맛보는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디스푸르타르 가 쌓아온 실험과 철학을 맛과 각종 감각으로 느낀 시간이라는 걸. 부담스럽지 않게, 설명적이지 않게, 즐겁게, 그러나 모든 축제가 끝난 후에 더 진한 감동이 남도록.
이 경험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한식의 최전선에서 씬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 NANRO 한식재단의 최정윤 이사장, 그리고 뉴욕에서 한식의 새로운 언어를 쓰고 있는 아토믹스의 박정현 셰프와 박정은 대표. 우리는 그날, 손님을 향해 진화해온 스페인 미식의 한 지점을 함께 목격하고 있었다.
엘 불리가 스페인 미식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면, 디스푸르타르는 그 유산을 이어받아 ‘손님을 향하는 미식’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렇다면 한식은, 한국의 미식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은 지켜야 하고, 무엇을 새로이 설계해야 하는가. 그날의 기억은 우리 네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남겼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디스푸르타르의 식탁은 더 근본적인 사실을 상기시킨다. 음식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야 하고, 미식의 순간은 테이블에 함께한 이들로 완성된다는 것. 그 당연하지만 가장 어려운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미식의 실험은 이어지고, 그 지형은 끊임없이 다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한식 역시 조용히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엘 불리가 남긴 질문을 디스푸르타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듯, 한국의 셰프들도 각자의 식탁 위에서 자신만의 답을 준비하고 있다.
업로드 중인 내용이 있습니다. 완료된 후 다시 시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