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도 전략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by 박양

생긴 지 꽤 오래되어 이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일반 단어처럼 쓰이는 유행어 중에 "존버"라는 표현이 있다. 본래는 과거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한 온라인 게임에서 쓰이던 "존X ("엄청"의 거친 그 표현) 버로우"라는 표현에서 파생된 유행어라고 하는데 지금은 워낙 여기저기 일상어처럼 쓰여서 게임 용어인 "버로우"보다는 "버틴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나는 "존버"에 약하다. 참을성이 부족하기도 하고 성격상 새롭게 발견한 분야에 흥미를 쉽게 느끼는 반면 또 금방 쉽게 질려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만둬 버리기 일쑤다. 만약 진득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뭐라도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있었을 텐데 죄다 흐지부지 되어 버려서 한 때의 반짝 취미로 끝난 활동들이 허다하다.


1. 블로그라는 개념이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하던 당시 친구가 운영하던 블로그를 보고 일기처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싸이월드 인기가 대단했는데 사진과 같은 시각적 자료 위주인 싸이월드와 달리 게시글 형식의 빈 공간에 내가 자유롭게 글과 사진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 끌려서 시작하게 되었다. 2005년부터 잡다한 일상 기록문 위주로 쓰기 시작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활동이 점점 뜸해지고 결국 버려지게 되었는데 내가 미래로 가서 블로그가 돈벌이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정보 공유 위주로 부지런하게 운영하다가 스타 인플루언서가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2. "웹툰"이라는 개념이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 웹툰의 성격을 띤 일상툰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라떼’는 마린블루스와 스노우캣이 있었고 그 외 어떤 작품들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시장이 정말 정말 협소했었다. 그때 내 일상을 웹툰화시켜보겠다며 싸이월드와 블로그에 일상툰을 간간이 올렸었는데 나름 반응은 좋았지만 ‘독자’들은 내 친구들 뿐이었으므로 조회수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흥미도 시들해졌고 연재 주기도 점점 길어지다가 결국에는 알아서 자체 종료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연재되던 낢스토리라던가, 더 최근에 와서는 대학일기 같은 일상툰들이 큰 성공을 거둔 걸 보면 반응이 어떻건 간에 조용하고 꾸준하게 연재했더라면 스타 작가는 못 되더라도 그걸 활용해서 뭐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3. 한국에서 빵이랑 과자는 무조건 제과점에서 사 먹는 것이고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매우 생소하던 시절에 제과제빵 책을 보고 집에서 열심히 따라 해 보던 때가 있었다. 해외생활을 오래 하면서 서양인 가정들의 홈베이킹을 자주 봤었기에 아예 생소한 분야는 아니었다. 그리고 대부분 실패했던 것 같지만 학교에서 구해 온 레시피로 집에서 간단한 쿠키 정도는 만들어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딱히 만들어볼 생각을 안 하다가 대학생 때 심심해서 제과제빵책을 사서 이것저것 만들어봤었는데 (몇 안 되던) 친구들이 정말 신기해하던 기억이 난다. 말이 나왔으니 부끄럽지만 당시 제가 만들었던 소박한 제품들 감상 들어가시지요.

이 사진들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내가 저런 것도 만들었나 싶어서 감회가 새롭다. 특히 왼쪽에 저 생크림 케이크는 어학연수 떠나는 친구를 위해서 정말 큰 마음먹고 만들었었는데 보면 알겠지만 엉망진창이었다. 친구야 미안.


어쨌거나 저것도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흥미도 점점 떨어지게 되었고 설거지도, 먹어 치우는 것도 힘들어서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은 갑자기 어느 날 의욕이 생겼을 때 가뭄에 콩 나 듯이 간단한 것 위주로 만들긴 하지만 웬만하면 그냥 돈 주고 사 먹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홈베이킹 같은 베이킹 업계 인기가 너무 많아서 시장이 포화상태인 데다가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 특수를 제대로 누려서 인기가 한 층 더 오른 느낌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제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지요. 만약 제가 베이킹 활동을 꾸준하게 이어왔더라면 아마 지금쯤 재미를 쏠쏠하게 보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최근에 만난 대학교 친구들이 네가 그렇게 일상툰이랑 블로그를 일찍 시작했었는데 지금까지 버텨왔더라면 스타 작가나 인플루엔서가 되었을지 모르는 일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웃어넘겼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정말 존버했더라면 뭐라도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도 든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글 중에 누가 봐도 자격 미달인데 어떻게 저 높은 위치에 올라 있을까 의아해 보이는 자들은 다 과거에 어떻게든 버텨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이라며 그대들도 웬만하면 일단 버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존버도 전략이라는 거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다가 누구나 작가가 되어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시시콜콜한 생각들을 글로 표현해서 올리기 시작했다. 읽어주는 이가 없을 수도, 반응이 뜨뜻미지근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올려보기로 한다. 과연 이번에 저는 존버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