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탄종 Rdㅣ3장. 리틀 아랍

by 한서

“여기 처음이야?”


그가 물었다. 술탄 모스크 앞.


“응.”


황금빛 돔이 햇살에 반짝인다. 아랍 문자들이 벽을 타고 흐른다. 여기가 싱가포르 맞나 싶다.


“이쪽은 리틀 아랍이야. 중동 느낌 나지?”


“완전.”


골목으로 들어갔다. 향수 가게, 카펫 가게, 터키 레스토랑. 아랍어가 들린다. 영어가 들린다. 중국어도 들린다.


“저 가게 좋아. 페르시안 러그 파는 곳인데…”


그가 유창한 영어로 가게 주인과 인사를 나눈다. 주인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자주 와?”


“가끔. 여기 분위기 좋아서.”


중국어도 섞어 쓴다. 옆 가게 아줌마한테.


“중국어도 해?”


“응. 일 때문에 배웠어.”


멋있다.


순간 생각했다. 남편은 영어 한마디 못했지. 중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싱가포르 오면 내 뒤에 숨어서 나한테

통역 시키고.


“뭐 생각해?”


“아니, 그냥… 멋있다고.”


“뭐가?”


“영어도 잘하고 중국어도 하고.”


“이 정도는 기본이야 여기선.”


겸손하게 웃는다.


보호받는 느김이 든다. 이 낯선 동네에서. 이 남자 옆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느낌.


남편은 그런 거 없었다. 오히려 내가 보호해야 했다. 돈도, 결정도, 다 내가 했다.


“배고파?”


“응.”


“터키 음식 먹어봤어?”


“아니.”


“그럼 가자.”


레스토랑 안.


양고기 케밥이 나왔다. 후무스, 피타 빵, 샐러드.


“입맛에 맞아?”


“응. 맛있어.”


“다행이다.”


포크를 들다가 그가 말했다.


“너 종교 있어?”


“응. 기독교. 너는?”


“나도.”


“진짜?”


“응. 신기하지?”


신기하다.


“교회 다녀?”


“가끔. 여기선 잘 안 가. 한국에선 다녔어.”


“나도 한국에선 다녔는데…”


말이 끊겼다.


“요즘은?”


“요즘은 신한테 화났어.”


그가 포크를 내려놨다.


“왜?”


“왜긴. 내 인생 이 꼴인데.”


“그래도 신은 널 사랑해.”


“사랑하면서 이렇게 만들어?”


“시험인가 보지.”


“너무 어려운 시험이야.”


“그래도 통과할 거야.”


“어떻게 알아?”


“널 보니까 알아. 강해 보여.”


강하다고?


“나 약해. 진짜.”


“도망칠 용기가 있잖아.”


“그게 용기야? 비겁한 거지.”


“아니야. 살기 위한 선택이야.”


눈물이 핑 돌았다. 참았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그가 내 손을 잡았다. 테이블 위에서.


식사를 마치고 골목을 걸었다.


“가려워.”


그가 팔을 긁는다.


“왜?”


“모르겠어. 알러지 같은데.”


“뭐 알러지 있어?”


“강아지, 고양이. 털 있는 거.”


“나도!”


“진짜?”


“응. 나도 개 고양이 못 키워. 피부 엄청 예민해.”


“나도. 아토피 있어.”


“나도 있어!”


웃음이 났다.


“우리 닮았네.”


“그러게.”


신기하다. 남편은 이런 거 하나도 없었다. 나만 예민했다. 나만 알러지 있었다. 나만 까다로웠다.


“종교도 같고, 알러지도 같고.”


“피부도 예민하고.”


“우린 센시티브한 사람들이야.”



그가 웃었다.


“그래서 서로 끌린 건가.”


“그런가?”


“응. 나도 네가 센시티브하다는 거 느꼈어. 첫날부터.”


“어떻게?”


“눈빛. 말투. 다 조심스러웠어.”


들켰다.


“난 항상 그래. 다치지 않으려고.”


“나도.”


그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걸었다.


“사진 찍을까?”


그가 갑자기 말했다.


“사진?”


“응. 여기 예쁜데.”


술탄 모스크가 뒤에 보이는 골목. 알록달록한 벽화들.


“좋아.”


핸드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돌렸다.


“이리 와.”


그가 나를 당겼다. 어깨에 팔을 두르고.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을 확인했다.


나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도 웃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웃었나. 기억이 안 난다.


남편이랑 찍은 사진들은 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억지 미소. 불편한 눈빛.


근데 이 사진은 다르다.


진짜로 웃고 있다.


“이쁘게 나왔다.”


그가 말했다.


“응. 우리 잘 나왔어.”


“보내줄까?”


“응.”


사진이 날아왔다.


저장했다.


우리의 첫 사진.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가슴이 아려왔다.


공통점이 많다. 너무 많다. 이런 사람 처음이다.


근데.


“나 곧 한국 가야 돼.”


발이 멈췄다. 그의 발도 멈췄다.


“언제?”


“모르겠어.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2주?”


“그렇게 빨리?”


“소송 때문에. 연우 때문에.”


침묵.


“그럼 우린?”


“…”


“먼 거리 연애?”


“7시간 비행이야. 한국이랑 싱가포르.”


“멀다.”


“응. 멀어.”


“근데 불가능하진 않잖아.”


“현실적으론 힘들지 않아?”


그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너 나 좋아해?”


“…응.”


“나도 너 좋아해.”


“근데 깊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왜?”


“헤어질 게 뻔한데. 왜 깊어져.”


“헤어질 거라고 정해진 거 아니잖아.”


“거의 정해진 거지. 넌 여기 살고 난 한국에 살고.”


“그래도…”


“그래도 뭐?”


“지금이라도 좋아. 너랑 있는 거.”


가슴이 뛴다.


근데 머리는 차갑다.


“나도 좋아. 근데 무서워.”


“뭐가?”


“또 상처받을까 봐. 또 후회할까 봐.”


그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상처 안 줄게.”


“그걸 어떻게 약속해.”


“모르겠어. 근데 최선을 다할게.”


최선.


남편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믿기 힘들어.”


“알아. 근데 시간 줘. 보여줄게.”


시간.


시간이 없는데.


“일주일밖에 없어.”


“그럼 일주일 동안 최선을 다할게.”


“그 다음엔?”


“그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현실 도피다. 알고 있다.


근데 지금은 이게 좋다.


“…그래.”


그가 웃으며 내 이마에 키스했다.


술탄 모스크의 황금빛 돔이 저녁 햇살에 물들고 있다.


이방인들의 동네에서 우리도 이방인이다.


닮은 두 사람.


근데 갈 곳이 다른 두 사람.


7시간의 거리.


깊어지고 싶은데 깊어지면 안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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