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탄종 Rdㅣ2장. 번개

by 한서

“일어났어?”


문자가 왔다. 아침 아홉 시.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어젯밤이 꿈인가 싶어서 입술을 만져봤다. 부어 있다. 꿈이 아니다.


“응”


“보고 싶은데”


세 글자가 화면에 떴다 사라졌다 다시 떴다.


보고 싶은데.


미쳤나. 어제 만났잖아. 어제 키스했잖아.


“나도”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센토사 갈래? 픽업 갈게”


안 돼. 정리해야 돼. 이거 아니야.


“좋아”


차 안.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마치 백 번도 더 잡아본 손처럼.


“어젯밤에 잠 잤어?”


“못 잤어. 너는?”


“나도.”


“뭐 때문에?”


“너.”


심장이 쿵 했다.


“나도 너 때문에.”


거짓말이 아니다. 새벽 다섯 시까지 뒤척였다. 이게 맞나, 이러면 안 되는데, 연우한테 미안해, 근데 가슴이 뛰

어, 이게 뭐지, 무한 반복.


“근데 왜 한국 떠났어? 진짜로.”


직구다.


“도망쳤다고 했잖아.”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창밖을 봤다. 싱가포르의 빌딩들이 스쳐 지나간다.


“남편이 거짓말쟁이야. 결혼할 때 재산 있다고 했어. 사업한다고 했어. 다 거짓말이었어. 빚쟁이였어. 신용불

량자.”


“헐.”


“그것보단…”


말이 막혔다.


“폭력?”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이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많이 맞았어?”


“많이는… 아니야. 근데 한 번이면 충분하잖아.”


“그래.”


침묵.


“그런데 왜 이혼 안 하고 버텼어?”


“연우.”


“딸?”


“응. 그리고…”


“그리고?”


“말기암이래. 남편이.”


차가 멈췄다. 신호등.


“미친.”


“그치?”


“그래서 죄책감 느끼는 거야?”


“응.”


“왜? 네가 암 걸린 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래도 뭐? 그 새끼가 너한테 뭐 해줬는데?”


목소리에 화가 섞여 있다.


“아무것도.”


“그럼 됐잖아.”


“근데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래서 네가 희생해야 돼? 연우는?”


연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연우 생각하면 미쳐. 지금 시댁에 있거든. 어제 변호사한테 전화 왔어. 양육권 뺏긴다고.”


“뭐?”


“내가 애 버리고 도망갔다고. 그렇게 주장한대.”


“개소리.”


“맞아. 개소리야. 근데 나 진짜 도망왔잖아.”


눈물이 났다. 참았다.


그가 나를 안았다. 택시 안에서.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어떻게 알아.”


“몰라. 근데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


센토사 비치.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들어온다. 파도가 밀려온다.


“저기 앉을까?”


그가 파라솔 아래를 가리켰다.


앉았다. 나란히.


“나도 이혼했다고 했잖아.”


“응.”


“애는 없었어. 그게 이유 중 하나였어. 와이프가 애를 안 낳으려고 했거든.”


“왜?”


“커리어. 일이 더 중요했대.”


“이해돼.”


“나도 이해해. 근데 서운했어. 둘이 가족을 만드는 거잖아. 근데 혼자 결정하더라고.”


파도 소리.


“그래서 헤어졌어?”


“그것도 있고… 사랑이 식었어. 어느 순간.”


“언제?”


“매일 싸울 때. 이혼하기 1년 전부터.”


나도 그랬다. 남편이랑. 매일 싸웠다.


“뭐 때문에 싸웠는데?”


“돈. 집안일. 시간. 뭐든지.”


똑같다.


“한 번은 접시를 던졌어. 내가.”


“진짜?”


“응. 깨졌어. 그때 알았어. 아, 이거 아니다.”


나는 던진 적 없다. 맞기만 했다.


“너는?”


“나는 던져본 적 없어.”


“왜?”


“무서웠어. 맞을까 봐.”


그의 얼굴이 굳었다.


“많이 맞았어?”


“세 번. 첫 번째는 임신 중이었어.”


“미친 새끼.”


“응. 미친 새끼야.”


“그래서 연우는?”


“괜찮았어. 다행히.”


그가 내 어깨를 안았다.


“이제 안 맞아도 돼.”


“응.”


“약속해.”


“뭘?”


“다신 그런 새끼 안 만난다고.”


웃음이 났다.


“너 나 걱정해주는 거야?”


“응. 이상해?”


“어제 만났잖아.”


“상관없어. 널 지키고 싶어.”


심장이 또 쿵 했다.


“근데 우리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왜?”


“나 아직 기혼이야. 법적으로.”


“상관없어.”


“연우도 있고.”


“알아.”


“그래도 돼?”


“너는? 너는 괜찮아?”


괜찮냐고?


모르겠다.


슬픈데 달콤하다. 죄책감 드는데 가슴이 뛴다. 도망치고 싶은데 안기고 싶다.


“모르겠어.”


“그럼 천천히 생각해. 나 안 도망가.”


그가 웃었다.


처음으로 안심이 됐다.


파도가 우리 발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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