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키스
“이래도 돼?”
내가 물었다. 그가 대답 대신 내 입술을 다시 당겼다.
탄종 비치 바. 새벽 두 시. 파도 소리가 우리를 삼킨다. 3일 전만 해도 이 남자의 존재조차 몰랐다. 지금은 그의 혀가 내 입안을 헤집고 있다.
“안 돼.”
이번엔 내가 밀어냈다.
“왜?”
“연우.”
“누구?”
“내 딸.”
그가 멈췄다. 손을 놓지는 않았다. 여전히 내 허리를 감싸고 있다.
“딸이 있어?”
“응. 네 살.”
“어디 있는데?”
“한국”
“남편은?”
“말기암.”
침묵. 파도. 그의 숨소리.
“미친.”
그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우리는 미쳤다.
열 시간 전.
탄종의 아침은 평화롭다. 거짓말처럼. 한국 아줌마들이 브런치를 먹는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신다. 남편 잘 만나 싱가포르까지 와서 일하는 아줌마 부리며 사는 인생들.
나는 혼자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다.
핸드폰이 울린다. 변호사.
“부인, 상대측에서 양육권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뭐라고요?”
“남편 측 가족들이 부인이 자녀를 방치하고 해외로 도피했다고…”
손이 떨린다. 커피잔이 흔들린다.
“제가 방치를 했다고요? 제가요?”
목소리가 커진다. 옆 테이블 아줌마들이 쳐다본다. 신경 안 쓴다.
“일단 귀국 일정을…”
“아직 안 돼요. 못 가요.”
끊었다.
숨이 안 쉬어진다. 가슴이 조인다.
눈을 떠 보니 태평양 한가운데 있다. 아무 보호 장치도 없이 그저 보드 하나에 몸을 기댄 채.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이게 슬픔인지 무서움인지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괜찮아요?”
누군가 물었다.
고개를 들었다. 남자다. 젊다. 잘생겼다.
“네.”
거짓말.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요.”
“신경 쓰지 마세요.”
“같이 술 한잔 할래요? 저녁에.”
뭐라고?
“저… 결혼했어요.”
“반지 안 끼셨던데요.”
손을 내려다봤다. 맨손이다. 언제 뺐더라.
“이혼 중이에요.”
“그럼 괜찮네요.”
“애가 있어요.”
“상관없어요.”
이 남자 미쳤나.
“저 지금 정신없어요. 한국에서 도망쳐 왔어요. 남편은 말기암이고 이혼 소송 중이고 애는 시댁에 맡겨놨고…”
쏟아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가 웃었다.
“완벽하네요. 저도 이혼했거든요. 딱 맞는 것 같은데요?”
“뭐가요?”
“우리.”
저녁 여덟 시. 비치 바.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갔다.
열 시. 술이 들어갔다.
열두 시. 그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한 시. 우리는 키스했다.
두 시. 밀어냈다.
“이래도 돼?”
“안 돼.”
근데 하고 있다.
연우를 낳고, 이혼 소송을 시작하고, 여자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연우를 낳기 전엔 부푼 꿈이 있었다. 어느새 남자에게 기대는 삶이 됐다.
또 반복인가.
남자 보는 눈 없는데. 또 악순환인가. 왜 떨쳐내지 못할까. 이렇게 당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왜 정신을 못
차릴까. 바보인가.
싱글이었으면 즐겼겠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 집중했겠지.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다르다.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겁다. 아니, 버겁다. 자신도 없다.
“생각 많이 하네.”
그가 말했다.
“당연하죠.”
“근데 키스는 했잖아.”
“…”
“후회해?”
“모르겠어요.”
“나도.”
그가 다시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슬픈데 달콤하다.
폭풍 같은 상황에, 폭풍우 같은 마음에 들어온 폭풍 같은 사람.
정리할까 말까.
너무 폭풍같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