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균열의 문장 ㅣ에필로그. 출간(은미)

균열의 문장

by 한서

소설이 출간된 건 겨울이었다.


『균열의 문장』


은미 장편소설.


서점 신간 코너에 꽂혔다.


나는 서점에 갔다.


혼자.


책을 봤다.


내 이름.


내 소설.


5년 걸렸다.


서평이 나왔다.


“열린 결말이 아쉽다.”


“끝까지 읽었지만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답답하다.”


“왜 헤어지지 않는가.”


나는 서평들을 읽었다.


이해한다.


독자들은 결말을 원한다.


변화를.


성장을.


하지만.


없다.


내 소설에는.


좋은 서평도 있었다.


“현실적이다.”


“패턴에 대한 통찰.”


“사랑이 끝나도 관계는 계속된다는 것.”


“관찰자 시점이 탁월하다.”


나는 그 서평을 읽으며 울었다.


이해해줘서.


고마웠다.


북토크가 있었다.


서점에서.


독자 30명쯤 왔다.


사회자가 물었다.


“작가님. 왜 열린 결말인가요?”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소설이요?”


“제 삶이요.”


사회자는 당황했다.


“작가님 이야기인가요? 이 소설이?”


“…네. 일부는요.”


독자가 손을 들었다.


“은서는 왜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나요?”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왜요?”


“패턴이니까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그럼 희망이 없는 건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희망.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다른 독자가 물었다.


“아라는 왜 이혼하지 않나요?”


“무서우니까요.”


“뭐가요?”


“혼자가요.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


“그래도 계속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불행한 줄 알면서도 익숙한 게 편할 때가 있어요.”


독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듯.


또 다른 독자.


“수연은 37년을 어떻게 견뎠나요?”


“익숙해졌으니까요.”


“사랑 없이요?”


“네. 사랑 없이도 살 수 있어요. 사람들은.”


“그게 행복한가요?”


“…행복하진 않죠. 하지만 견딜 만해요.”


마지막 질문.


젊은 여자 독자였다.


“작가님. 은미는 왜 이 소설을 쓴 건가요?”


나는 멈췄다.


왜 썼을까.


나는.


이 소설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뭘요?”


“왜 우리가 이렇게 사는지. 왜 패턴을 반복하는지. 왜 끝내지 못하는지.”


“이해했나요?”


나는 웃었다.


쓴웃음.


“아니요. 여전히 모르겠어요.”


북토크가 끝나고.


혼자 집에 돌아왔다.


민준은 없었다.


언제나처럼.


거실에 앉았다.


책을 펼쳤다.


『균열의 문장』


내 소설.


프롤로그를 읽었다.


“은서는 또 사랑에 빠졌다.”


시작.


마지막 장을 넘겼다.


“37년. 그리고 앞으로도.”


끝.


아니.


끝이 아니다.


문이 열렸다.


민준이 들어왔다.


“왔어.”


“응.”


“북토크 어땠어?”


“…그냥.”


“힘들었어?”


“좀.”


민준은 방으로 갔다.


관심 없다.


내 소설에.


나에게.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책을 봤다.


『균열의 문장』


핸드폰이 울렸다.


은서였다.


“언니. 책 읽었어.”


“…응.”


“언니 이야기야? 일부는?”


“응. 그리고 너.”


“나?”


“은서. 너야.”


전화기 너머로 침묵.


“…알았어. 나 같았어. 읽으면서.”


“응.”


“언니. 우리 왜 이렇게 살까?”


“모르겠어.”


“나도.”


우리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 나 또 만났어. 남자.”


가슴이 내려앉았다.


“은서야…”


“알아. 또 반복하는 거. 근데 멈출 수가 없어.”


“…”


“외로워. 언니.”


“나도 알아.”


“언니도?”


“응. 나도 외로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창밖을 봤다.


아라네 집.


불이 켜져 있었다.


아라가 보였다.


거실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아마 SNS겠지.


“행복한 하루” 올리는 중.


나는 노트북을 켰다.


아라 인스타그램을 찾았다.


최근 게시물.


가족 사진.


아라, 준서, 아이.


웃고 있는.


“우리 가족의 소중한 시간�”


댓글들.


“행복해 보여요.”


“부러워요.”


나는 댓글을 읽었다.


거짓말.


다 거짓말.


하지만 아라는 계속 올릴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나는 생각했다.


소설을 썼다.


5년 걸렸다.


은서.


아라.


수연.


그리고 나.


네 명의 여자.


패턴 속에 갇힌.


사랑은 끝났지만.


관계는 계속되는.


바뀌지 않는.


하지만.


소설을 쓴다고.


이해한 건 아니다.


여전히 모른다.


왜 우리가 이렇게 사는지.


왜 패턴을 반복하는지.


왜 끝내지 못하는지.


그리고.


나도.


여전히.


민준과 산다.


12년째.


바뀌지 않았다.


아무것도.


책을 덮었다.


『균열의 문장』


서가에 꽂았다.


끝났다.


소설은.


하지만.


내 삶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계속된다.


침대로 갔다.


민준은 자고 있었다.


나는 옆에 누웠다.


멀찍이.


12년.


그리고 앞으로도.


눈을 감았다.


소설 속의 은서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날 것이다.


소설 속의 아라는.


SNS에 행복한 사진을 올릴 것이다.


소설 속의 수연은.


37년째 도현과 존댓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민준과 계속 살 것이다.


대화 없이.


사랑 없이.


하지만 함께.


왜냐하면.


패턴은 끝나지 않으니까.


사람은 바뀌지 않으니까.


우리는.


계속.


반복한다.


같은 선택을.


같은 실수를.


같은 외로움을.


그리고.


계속 산다.


균열 속에서.


끝나지 않는.


나는 잠들었다.


내일도.


똑같을 것이다.


민준은 회사 갈 것이다.


나는 책상에 앉을 것이다.


저녁을 먹을 것이다.


조용히.


잘 것이다.


같은 침대.


하지만 멀리.


은서는 또 사랑에 빠질 것이다.


아라는 SNS에 거짓말을 올릴 것이다.


수연은 도현과 존댓말을 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


반복한다.


균열의 문장.


끝나지 않는.


『균열의 문장』 끝.


2025.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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