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도현과 산 지 37년이 됐다.
나는 예순이 됐다.
도현은 예순일곱.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아침.
도현은 일찍 일어났다.
예순일곱인데도.
회사에 간다.
아직.
“다녀오겠습니다.”
“네.”
도현은 나갔다.
존댓말.
언제부터였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혼자 집에 있었다.
청소했다.
빨래했다.
점심 준비했다.
TV를 켰다.
드라마.
젊은 부부가 싸우고 있었다.
“당신 요즘 왜 이래!”
“미안해. 바빠서.”
“맨날 바빠!”
젊다.
아직 싸울 힘도 있다.
오후.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 단지.
벤치에 앉았다.
노인들이 보였다.
부부.
손을 잡고 걷는.
나는 그들을 봤다.
우리는.
손도 잡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준비했다.
도현이 좋아하는.
생선구이.
된장찌개.
37년.
도현이 뭘 좋아하는지 안다.
하지만.
도현이 날 사랑하는지는 모른다.
도현이 들어왔다.
여덟 시.
“왔습니다.”
“네. 저녁 드세요.”
“네.”
식탁에 앉았다.
둘이.
밥을 먹었다.
조용히.
포크 소리만.
도현이 말했다.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게 전부였다.
설거지를 했다.
도현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신문을 읽는.
나는 주방에서 도현을 봤다.
예순일곱.
늙었다.
나도.
하지만 함께 늙지는 않았다.
따로.
거실로 갔다.
도현 옆에 앉았다.
소파에.
멀찍이.
TV를 켰다.
뉴스.
우리는 함께 봤다.
대화 없이.
뉴스가 끝났다.
드라마가 시작됐다.
도현이 말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네.”
도현은 방으로 갔다.
나는 혼자 남았다.
드라마를 봤다.
젊은 부부.
사랑하는.
키스하는.
나는 TV를 껐다.
방으로 갔다.
도현은 자고 있었다.
나는 옆에 누웠다.
멀찍이.
37년.
같은 침대.
하지만 닿지 않는다.
나는 천장을 봤다.
처음부터.
사랑이었나.
잘 모르겠다.
결혼 초.
서른 년 전쯤.
도현이 말했다.
“사랑합니다.”
“저도요.”
진심이었나.
모르겠다.
사랑이 뭔지.
잘 몰랐으니까.
지현을 입양했다.
32년 전.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울었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입양하면 됩니다.”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도현에게.
나도 알았다.
지현.
예쁜 아이였다.
우리는 키웠다.
잘.
사랑했다.
하지만.
도현은 늘 아쉬워했다.
말하지 않았지만.
알았다.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
15년 전쯤.
도현이 늦게 들어왔다.
자주.
“회식입니다.”
“네.”
물어보지 않았다.
거짓말인 거.
알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 여자.
이름도 몰랐다.
얼굴도.
알고 싶지 않았다.
도현은 계속 만났다.
몇 년.
나는 모르는 척했다.
왜냐하면.
무너지기 싫었으니까.
37년.
쌓아온 것들.
어느 날.
도현이 말했다.
“정리했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말했다.
괜찮다고.
그 후.
우리는 계속 살았다.
함께.
하지만 따로.
대화는 줄었다.
스킨십도.
존댓말만 남았다.
“밥 드셨습니까?”
“네. 드셨습니까?”
“네.”
37년.
다음 날.
도현은 회사에 갔다.
“다녀오겠습니다.”
“네.”
나는 청소했다.
혼자.
점심을 먹었다.
혼자.
TV를 봤다.
혼자.
도현은 없다.
언제나.
지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응. 잘 지내?”
“응. 엄마는?”
“그냥 그래.”
지현은 서른네 살.
결혼했다.
아이 둘.
“아빠는?”
“회사 가셨어.”
“아직도 다녀? 예순일곱인데.”
“그러게.”
“은퇴 안 해?”
“안 하시네.”
지현은 한숨을 쉬었다.
“엄마. 나이 들수록 서로 의지해야 돼.”
“알아.”
“아빠 잘 챙겨드려.”
“그래.”
전화를 끊었다.
의지.
저녁.
도현이 들어왔다.
“왔습니다.”
“네.”
저녁을 먹었다.
조용히.
도현이 물었다.
“지현은 잘 지냅니까?”
“네. 아이들도 잘 크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게 전부였다.
거실.
TV를 봤다.
같이.
하지만 따로.
도현이 말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네.”
도현은 방으로 갔다.
나는 혼자 남았다.
방으로 갔다.
도현은 자고 있었다.
나는 옆에 누웠다.
37년.
같은 침대.
생각했다.
왜 계속 살까.
도현과.
사랑도 없는데.
대화도 없는데.
왜.
익숙해서.
37년.
너무 길다.
이제 와서 헤어진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도현 없는 삶.
나 혼자.
무섭다.
그리고.
체면.
예순.
이혼.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37년 살았는데 왜?”
“나이 들어서 이혼?”
그런 말들.
듣기 싫다.
그래서 계속 산다.
도현과.
사랑 없이.
대화 없이.
하지만 함께.
다음 날.
도현은 회사에 갔다.
나는 청소했다.
점심 먹었다.
혼자.
산책 나갔다.
같은 길.
벤치에 앉았다.
같은 자리.
매일.
똑같다.
저녁.
도현과 밥 먹었다.
조용히.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TV 봤다.
같이.
하지만 따로.
잤다.
같은 침대.
하지만 멀리.
매일.
똑같다.
일주일 후.
똑같았다.
한 달 후.
똑같았다.
1년 후.
똑같을 것이다.
10년 후.
똑같을 것이다.
나는 알았다.
우리는 바뀌지 않는다.
37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존댓말.
대화 없이.
사랑 없이.
하지만 함께.
왜냐하면.
익숙하니까.
무섭지 않으니까.
혼자가.
밤.
도현은 잤다.
나는 천장을 봤다.
37년.
언제부터.
손 잡았던 게.
안았던 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산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똑같이.
나는 눈을 감았다.
37년.
그리고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