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민준과 산 지 12년이 됐다.
나는 마흔일곱이 됐다.
여전히 작가였다.
여전히 민준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은미다.
작가.
민준의 아내.
아니.
민준과 같은 집에 사는 사람.
아침.
민준은 먼저 일어났다.
씻고.
정장 입고.
“다녀올게.”
“응.”
나는 대답했다.
민준은 나갔다.
문 닫는 소리.
똑같다.
12년째.
나는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원고를 열었다.
『균열의 문장』
5년 전에 시작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집자가 재촉한다.
“은미 작가님. 언제 끝나요?”
“조금만 더요.”
“벌써 5년이에요.”
“알아요.”
“독자들이 기다려요.”
“…알아요.”
하지만 끝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내 삶이.
원고를 읽었다.
세 명의 여자.
은서.
아라.
수연.
그리고 나.
관찰자.
하지만 알았다.
관찰자는 언제나 자기 그림자를 함께 기록한다.
나도 그들과 같다.
패턴 속에 갇혀 있다.
은서 챕터.
도현.
재훈.
그 후의 남자들.
반복되는 패턴.
사랑은 끝나도 패턴은 남는다.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나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똑같다.”
맞다.
은서는 바뀌지 않았다.
나도.
아라 챕터.
준서.
끝난 관계.
하지만 계속되는.
SNS 속의 거짓말.
“행복한 가족.”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우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끝낼 수 없으니까.”
맞다.
아라는 끝낼 수 없다.
나도.
수연 챕터.
아직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수연을 잘 모르니까.
관찰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상상했다.
도현 옆에.
32년.
편안함.
하지만 사랑은 아닌.
그런 삶.
나와 비슷할까.
민준과의 12년.
내 챕터.
쓰기 시작했다.
“은미는 외롭다.”
12년 전에 쓴 문장.
“민준과 끝났다. 오래전에.”
여전히 맞는 말.
그 후를 썼다.
12년.
대화 없음.
스킨십 없음.
같은 집에 살지만 남남.*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손이 멈췄다.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아프니까.
민준이 저녁에 들어왔다.
여섯 시.
“왔어.”
“응.”
민준은 방으로 갔다.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거실에 앉았다.
TV를 켰다.
나는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했다.
우리는 대화하지 않는다.
12년째.
저녁.
식탁에 앉았다.
둘이.
밥을 먹었다.
조용히.
대화 없이.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만.
민준이 먼저 끝냈다.
“잘 먹었어.”
“응.”
민준은 서재로 갔다.
문을 닫았다.
나는 혼자 남았다.
언제나처럼.
설거지를 했다.
물소리.
그것만 들렸다.
창밖을 봤다.
옆집.
불이 켜져 있었다.
아라네 집.
거실에 사람들이 보였다.
아라.
준서.
아이.
TV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공간에.
하지만 따로.
나와 민준처럼.
나는 생각했다.
12년 전.
아라를 관찰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지만.
똑같았다.
아라와.
은서와.
모두.
패턴 속에 갇혀 있다.
서재 문을 두드렸다.
“민준아.”
대답 없음.
다시 두드렸다.
“민준아.”
“왜?”
“우리 얘기 좀 하자.”
“뭐?”
“문 좀 열어줘.”
한참 후.
문이 열렸다.
민준이 나를 봤다.
“뭔데?”
“우리… 언제까지 이럴 거야?”
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또 시작이네.”
“또가 아니야. 우리 12년째…”
“은미야. 나 피곤해.”
“나도 피곤해. 이렇게 사는 게.”
“그럼 어쩌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자고.
이혼?
헤어짐?
말할 수 없었다.
무서워서.
민준이 말했다.
“아무것도 바뀔 게 없잖아. 계속 이렇게 살자.”
“왜?”
“편하니까.”
민준은 문을 닫았다.
나는 혼자 남았다.
또.
거실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켰다.
원고를 열었다.
내 챕터.
계속 썼다.
“은미는 민준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 민준은 대답했다. ‘계속 이렇게 살자. 편하니까.’”
편하다.
그 말이 아팠다.
사랑이 아니라.
편함.
익숙함.
그것 때문에 계속 산다.
계속 썼다.
“은미는 알았다. 이게 끝이라는 것을. 하지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침대.
민준은 이미 자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나는 옆에 누웠다.
멀찍이.
닿지 않게.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잔다.
12년째.
하지만 닿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마지막으로 손을 잡은 게.
마지막으로 키스한 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 날.
민준은 먼저 나갔다.
“다녀올게.”
“응.”
나는 책상에 앉았다.
원고를 열었다.
수연 챕터.
쓰기 시작했다.
“수연은 도현과 32년을 살았다. 처음부터 사랑은 아니었다. 필요였다.”
상상으로 쓴다.
하지만 맞을 것 같다.
“도현은 수연을 떠날 수 없었다. 편했으니까. 수연도 도현을 떠날 수 없었다. 익숙했으니까.”
민준과 나처럼.
“32년. 대화는 줄었다. 스킨십도. 하지만 헤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손이 멈췄다.
왜냐하면?
왜 헤어지지 않았을까.
수연은.
나는.
아라는.
왜.
**편집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미 작가님.”
“네.”
“원고 언제쯤…?”
“조금만 더요.”
“작가님. 독자들이 정말 기다려요. 5년째예요.”
“알아요.”
“못 끝내는 이유가 있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못 끝내는 이유.
있다.
이 소설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내 삶이.
“작가님?”
“…죄송해요. 조금만 더 시간 주세요.”
“언제까지요?”
“모르겠어요.”
편집자는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기다릴게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생각했다.
5년 전.
이 소설을 시작했을 때.
“관찰자”라는 제목이었다.
은서를 관찰하고.
아라를 관찰하고.
수연을 상상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내 이야기였다.
관찰자는 언제나 자기 그림자를 함께 기록한다.
나도 그들과 같다.
패턴 속에 갇혀 있다.
끝나지 않은 관계.
형식만 남은.
하지만 계속되는.
그래서 제목을 바꿨다.
“관찰자”에서.
“균열의 문장”으로.
균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관계의.
삶의.
하지만 우리는 그 균열을 외면한다.
덮는다.
계속 산다.
왜냐하면.
무서우니까.
끝내는 것이.
저녁.
민준이 들어왔다.
“왔어.”
“응.”
저녁을 먹었다.
조용히.
**대화 없이.**
민준이 물었다.
“소설은 어때?”
“…못 끝내겠어.”
“왜?”
“끝나지 않았어.”
“뭐가?”
“내 이야기가.”
민준은 나를 봤다.
“네 이야기?”
“응. 이 소설은 결국 내 이야기야.”
“…”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밥을 계속 먹었다.
관심 없다.
나한테.
내 소설한테.
12년째.
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민준은 자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봤다.
12년.
민준과.
끝났다.
오래전에.
하지만 계속 산다.
왜.
편해서.
익숙해서.
무서워서.
혼자가.
아라처럼.
수연처럼.
은서는 다르다.
은서는 혼자다.
이혼했고.
아이 키우고.
힘들지만.
적어도.
거짓말 속에 살지는 않는다.
나는.
거짓말 속에 산다.
“우리는 괜찮다.”
“우리는 부부다.”
거짓말.
나는 알았다.
이 소설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내 삶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민준과의 관계.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계속되는.
그래서.
쓸 수 없다.
결말을.
왜냐하면.
결말이 없으니까.
다음 날.
노트북을 켰다.
원고를 열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왜냐하면.”
그 뒤를.
쓸 수 없었다.
5년째.
커서를 깜빡였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뭐라고 써야 할까.
왜 우리는 끝내지 못할까.
왜 계속 살까.
편해서?
익숙해서?
무서워서?
다?
모르겠다.
창밖을 봤다.
아라네 집.
불이 켜져 있었다.
아라가 보였다.
혼자.
거실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아마 SNS겠지.
“행복한 하루” 올리는 중.
거짓말.
나도 혼자 앉아 있다.
노트북 앞에.
끝낼 수 없는 소설 앞에.
우리는 비슷하다.
아라와 나.
끝나지 않은 것들 속에 산다.
민준이 들어왔다.
“왔어.”
“응.”
민준은 방으로 갔다.
나는 계속 앉아 있었다.
노트북 앞에.
왜냐하면.
그 뒤를 썼다.
“왜냐하면 우리는 끝낼 용기가 없으니까.”
지웠다.
다시 썼다.
“왜냐하면 익숙함이 사랑보다 강하니까.”
지웠다.
다시 썼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뀌지 않았으니까.”
맞다.
이게 답이다.
우리는 바뀌지 않았다.
은서도.
아라도.
수연도.
나도.
패턴은 계속된다.
사랑은 끝나도.
패턴은 남는다.
저장했다.
원고를.
끝났다.
아니.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쓸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삶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편집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답장이 왔다.
“작가님. 이게 결말인가요?”
“네.”
“…열린 결말이네요.”
“네.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독자들이 실망할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게 진실입니다.”
나는 노트북을 닫았다.
끝났다.
5년.
『균열의 문장』.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내 삶은.
민준과.
12년째.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끝나지 않은 채.
왜냐하면.
나는 바뀌지 않았으니까.
패턴은 계속되니까.
사랑은 끝나도.
패턴은 남으니까.
나는 창밖을 봤다.
아라네 집.
불이 꺼졌다.
잠들었겠지.
준서와.
같은 침대에.
하지만 멀리.
나처럼.
민준과.
끝나지 않은 것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