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균열의 문장ㅣ19장. 5년 후(아라)

아직도

by 한서

아이가 일곱 살이 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서른여덟이 됐다.


여전히 준서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아라다.


번역가.


건축가의 아내.


아니.


건축가였던 남자의 아내.


아침.


준서는 먼저 일어났다.


씻고.


옷 입고.


“나 갔다 올게.”


“응.”


나는 대답했다.


준서는 나갔다.


어디로.


모른다.


물어보지 않는다.


이미.


아이를 깨웠다.


“OO아. 일어나.”


“응…”


“학교 가야지.”


아이는 일어났다.


세수하고.


옷 입고.


우리는 아침을 먹었다.


둘이.


준서는 없다.


언제나.


“엄마. 아빠는?”


“일 나가셨어.”


“맨날 일해.”


아이가 말했다.


“친구들 아빠는 같이 밥 먹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맞는 말이니까.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줬다.


교문 앞.


다른 엄마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OO 엄마.”


“남편분은 안 오셨어요? 다들 부부 동반인데.”


“바빠서요.”


“아. 건축가시니까 바쁘시겠네요.”


건축가.


나는 웃었다.


“네. 바빠요.”


거짓말이었다.


준서는 바쁘지 않다.


일이 없다.


5년째.


집으로 돌아왔다.


빈 집.


준서는 없었다.


어디 갔는지 모른다.


물어보지 않는다.


거실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번역 일.


마감은 내일.


하지만 집중이 안 됐다.


핸드폰을 봤다.


인스타그램.


오랜만에 열었다.


최근 올린 사진.


한 달 전.


아이 운동회.


가족 사진.


나, 준서, 아이.


웃고 있는.


“행복한 하루�”


좋아요 156개.


댓글 23개.


“행복해 보여요.”


“가족이 화목하네요.”


“부러워요.”


나는 댓글들을 읽었다.


거짓말.


다 거짓말.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화목하지 않다.


사진만 찍었다.


운동회 끝나고.


준서는 바로 나갔다.


“친구 만나고 올게.”


나는 혼자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새 사진을 올릴까 생각했다.


갤러리를 봤다.


최근 사진들.


아이 혼자 찍은 것들.


집에서 찍은.


준서는 없는.


올릴 수 있는 사진이 없다.


가족 사진이.


준서가 없으니까.


인스타그램을 껐다.


*은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아라야. 잘 지내?”


“응. 언니는?”


“그냥 그래.”


은서의 목소리가 피곤했다.


“힘들어 보여.”


“좀. 아이 키우느라.”


“나도.”


나는 말했다.


“OO이 학교 갔어. 초등학생 됐어.”


“벌써? 시간 빠르다.”


“응.”


침묵.


“준서는 어때?”


은서가 물었다.


“…그냥.”


“아직도 같이 살아?”


“응.”


“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일까.


왜 아직도 같이 살까.


“잘 모르겠어.”


“이혼은 생각 안 해?”


“가끔 해. 근데…”


“근데?”


“무서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혼자가.”


은서는 웃었다.


쓴웃음.


“나도 그랬어. 근데 결국 혼자더라.”


“알아.”


준서가 저녁에 들어왔다.


여덟 시.


“왔어.”


“응.”


“저녁은?”


“먹었어.”


“어디서?”


“친구랑.”


준서는 소파에 앉았다.


TV를 켰다.


나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


우리는 대화하지 않는다.


5년째.


아이를 재웠다.


“엄마. 이야기 해줘.”


“무슨 이야기?”


“공주 이야기.”


나는 공주 이야기를 해줬다.


“옛날 옛날에 공주가 살았어요.”


“왕자님은?”


“왕자님도 있었어요.”


“결혼했어?”


“응. 결혼했어.”


“행복하게 살았어?”


나는 멈췄다.


행복하게 살았을까.


“…응. 행복하게 살았어.”


거짓말.


아이는 잠들었다.


나는 아이를 봤다.


미안해.


거짓말해서.


공주랑 왕자는 행복하지 않아.


결혼해도.


엄마 아빠처럼.


거실로 나왔다.


준서는 여전히 TV를 보고 있었다.


“준서야.”


“응.”


“우리 얘기 좀 하자.”


“뭐?”


“우리.”


준서는 TV를 껐다.


나를 봤다.


“뭔데?”


“우리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이게 뭔데?”


“이렇게. 같은 집에 살지만 남남처럼.”


준서는 한숨을 쉬었다.


“또 시작이네.”


“또가 아니야. 우리 진짜…”


“아라야. 피곤해.”


준서가 일어났다.


“자러 갈게.”


“준서야!”


“내일 얘기하자.”


준서는 방으로 갔다.


문 닫는 소리.


나는 혼자 남았다.


또.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5년.


아이가 두 돌 때부터.


준서와 나는 끝났다.


하지만 계속 같이 산다.


왜.


잘 모르겠다.


아이 때문.


경제적 이유.


체면.


외로움.*


다.


핸드폰을 봤다.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새 게시물을 만들었다.


사진은.


없다.


올릴 게 없다.


갤러리를 다시 봤다.


한 달 전 운동회 사진.


그걸 올렸다.


“우리 가족의 소중한 시간�”


거짓말.


하지만 올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봐야 하니까.


*우리가 괜찮다고.


아직 가족이라고.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행복해 보여요.”


“부러워요.”


“가족이 화목하네요.”


나는 댓글을 읽었다.


하나하나.


그리고 믿으려고 했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가족이라고.


화목하다고.


하지만 알았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밤.


침대에 누웠다.


준서는 이미 자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나는 천장을 봤다.


5년.


아이가 두 돌 때부터.


끝났다.


우리 관계는.


하지만 계속된다.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끝내지 않으니까.


무서우니까.


혼자가.


세상의 시선이.


‘이혼녀’라는 타이틀이.


그래서 계속 산다.


같은 집에.


하지만 남남처럼.


다음 날 아침.


준서는 먼저 나갔다.


“나 갔다 올게.”


“응.”


문이 닫혔다.


나는 아이를 깨웠다.


학교 보냈다.


혼자 집에 돌아왔다.


또 하루.


똑같은.


번역 일을 했다.


마감 내일.


집중했다.


일할 때만.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준서.


끝난 관계.


거짓말 같은 삶.


오후 3시.


일을 끝냈다.


파일을 보냈다.


끝.


할 일이 없었다.


거실에 앉아 있었다.


TV를 켰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


핸드폰을 봤다.


인스타그램.


어제 올린 사진.


좋아요 203개.


댓글 34개.


“정말 행복해 보여요.”


“남편분이 다정하시네요.”


나는 웃었다.


다정.

준서가?

거짓말.


준서는 나한테 관심 없다.*


5년째.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학교 앞.


“엄마!”


“응. 잘 놀았어?”


“응!”


아이가 그림을 보여줬다.


“이거 봐. 우리 가족.”


그림에는.


엄마, 아빠, 아이.


손을 잡고 있는.


**아이의 상상.**


**현실이 아닌.**


“예쁘다.”


내가 말했다.


“아빠한테 보여줄 거야.”


“…그래.”


하지만 알았다.


준서는 관심 없을 거라는 것을.


집.


준서는 아직 안 왔다.


아이는 숙제를 했다.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준서 몫도.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준비한다.


언제나.


일곱 시.


여덟 시.


준서는 오지 않았다.


아이와 둘이 먹었다.


“엄마. 아빠는?”


“일 때문에 늦으신대.”


“맨날 늦어.”


“바쁘셔.”


“친구들 아빠는 같이 밥 먹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를 재웠다.


“엄마. 오늘 그린 그림 아빠한테 보여줬어?”


“아직. 아빠 안 오셨어.”


“언제 와?”


“조금 있으면.”


“…그럼 내일 보여줄래.”


“그래.”


아이는 잠들었다.


나는 거실로 나왔다.


혼자.


준서는 열한 시에 들어왔다.


술 냄새.


“왔어.”


“응.”


“저녁은?”


“남겨뒀어.”


“괜찮아. 먹었어.”


준서는 샤워하러 갔다.


나는 남은 음식을 정리했다.


버렸다.


언제나처럼.


침대.


준서는 이미 자고 있었다.


나는 옆에 누웠다.


멀찍이.


닿지 않게.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잔다.


5년째.


하지만 우리는 멀다.


나는 생각했다.


왜 계속 이럴까.


왜 끝내지 못할까.


이혼하면 되잖아.


끝난 관계.


형식만 남은.


왜 못 끝내지.


무서워서.


혼자가.


이혼녀라는 타이틀이.


사람들의 시선이.


“아라 이혼했대.”


“역시 안 될 줄 알았어.”


“건축가 남편이 뭐라고.”


그런 말들.


듣기 싫어서.


그래서 계속 산다.


끝났지만.


끝내지 못하고.


SNS.


거기서는 우리가 행복하다.


사진 속에서.


“행복한 가족.”

“소중한 시간.”

“사랑하는 우리 가족.”

거짓말.


다.


하지만 올린다.


계속.


왜냐하면.


그게 나를 지탱하니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건축가 남편.”


“행복한 가족.”


그 타이틀.


그게 없으면.


나는 뭐지.


아침.


준서는 먼저 나갔다.


“나 갔다 올게.”


“응.”


똑같다.


매일.


나는 아이를 깨웠다.


학교 보냈다.


일했다.


아이 데리러 갔다.


저녁 준비했다.


준서 기다렸다.


안 왔다.


아이 재웠다.


혼자 앉아 있었다.


매일.


똑같다.


5년째.


나는 알았다.


이게 내 삶이라는 것을.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형식만 남은.


하지만 계속되는.


왜냐하면.


나는 끝낼 용기가 없으니까.


혼자가 무섭니까.


그래서.


계속 산다.


준서와.


아이와.


거짓말과.


SNS에 사진을 올렸다.


아이 사진.


웃고 있는.


“우리 딸 최고�”


좋아요가 눌렸다.


댓글이 달렸다.


“예쁘네요.”


“행복해 보여요.”


나는 댓글을 읽었다.


그리고 믿으려고 했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하지만 알았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준서도.


나도.


아마 아이도.


하지만 계속된다.


이 거짓말.


끝나지 않는.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을 봤다.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똑같을 것이다.*


*우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끝낼 수 없으니까.


그리고 계속될 것이다.


이 거짓말.


사진 속의 행복.


끝나지 않은 것들.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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