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균열의 문장ㅣ18장. 두 번째 남자(은서)

같은 패턴

by 한서

아이가 일곱 살이 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서른아홉이 됐다.


여전히 혼자였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났다.


회사 회식.


오랜만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봐줬다.


“은서야. 오늘은 나가. 너 너무 안 나가.”


“괜찮아. 엄마.”


“안 괜찮아. 사람들이랑 어울려야지.”


엄마가 말했다.


“맨날 집에만 있으면 어떡해.”


“알았어. 갈게.”


술집.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은서 변호사! 오랜만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앉으세요. 여기.”


나는 앉았다.


옆에 남자가 앉았다.


“안녕하세요. 저 새로 온 태민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은서예요.”


“알아요. 유명하시잖아요.”


태민이 웃었다.


서른다섯쯤 보였다.


정장 입은.


안정적으로 보이는.


우리는 이야기했다.


일.


회사.


취미.


“은서 변호사님은 쉴 때 뭐 하세요?”


“저요? 아이 돌보죠.”


“아. 결혼하셨구나.”


“아니요. 이혼했어요.”


“…아.”


태민은 당황했다.


“죄송해요. 몰랐어요.”


“괜찮아요.”


“아이는 몇 살이에요?”


“일곱 살이요.”


“귀엽겠네요.”


태민이 웃었다.


“혼자 키우시는 거예요?”


“네.”


“대단하시네요.”


대단하다.


그 말이 익숙했다.


동정 섞인.


회식이 끝나고.


태민이 말했다.


“은서 변호사님. 집 어디세요?”


“강남이요.”


“저도 근처인데, 같이 가실래요?”


“…좋아요.”


택시를 탔다.


태민이 말했다.


“오늘 재밌었어요.”


“저도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태민을 봤다.


왜 안 돼.


어차피 혼자인데.


“좋아요.”


우리는 만났다.


주말에.


아이는 엄마가 봐줬다.


“은서야. 어디 가?”


“…친구 만나.”


“남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


“은서야. 조심해.”


“뭘?”


“또 다치지 말고.”


“…응.”


카페에서 만났다.


태민은 웃고 있었다.


“오셨어요?”


“네.”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이야기했다.


태민은 다정했다.


도현과 달랐다.


재훈과도 달랐다.


“은서 님. 힘드시죠? 혼자 아이 키우는 거.”


“…좀요.”


“대단해요. 진짜.”


태민이 내 손을 잡았다.


“저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드리고 싶어요.”


따뜻했다.


나는 그 손을 꽉 잡았다.


또.


또 이렇게.


외로움을 채우려 한다.


한 달 후.


우리는 사귀고 있었다.


빨랐다.


또.


태민은 좋은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배려심 많고.


**도현, 재훈과 달랐다.**


“은서 님. 아이 만나도 될까요?”


“…아직은.”


“알겠어요. 천천히 해요.”


태민이 웃었다.


“저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착했다.


도현, 재훈과 달랐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다를 거야.


두 달 후.


태민이 말했다.


“은서 님. 사랑해요.”


“…저도요.”


거짓말이었다.


사랑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필요했다.


외롭지 않으려고.


“결혼 생각 있으세요?”


태민이 물었다.


나는 멈췄다.


“결혼요?”


“네. 저 진지해요. 은서 님이랑.”


“아이는…”


“아이도 괜찮아요. 제가 아빠 되면 되죠.”


태민이 웃었다.


착하다.


진짜 착하다.


이번에는 다르다.


“생각해볼게요.”


“천천히 생각하세요. 전 기다릴게요.”


하지만.


균열은 조금씩 왔다.


태민이 아이를 만났다.


“안녕. 나 태민 삼촌이야.”


아이는 태민을 봤다.


숨었다.


내 뒤에.


“OO아. 인사해.”


“싫어.”


“OO아.”


“엄마. 저 사람 누구야?”


아이가 물었다.


“엄마 친구야.”


“아빠야?”


**가슴이 아팠다.**


“아니야. 친구.”


아이는 태민을 쳐다보지 않았다.


태민은 당황했다.


“시간이 필요한가봐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이해해요.”


하지만.


표정이 굳어 있었다.


세 달 후.


태민이 말했다.


“은서 님. 아이가 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필요해요.”


“벌써 3개월이 지났어요.”


“알아요. 근데…”


“은서 님.”


태민이 말했다.


“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가 계속 이러면 힘들 것 같아요.”


“뭐라고요?”


“결혼하려면 아이도 저를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태민이 말했다.


“근데 아이가 계속 거부하면…”


“그럼 어쩌자는 거예요?”


“좀 더 노력해주세요. 아이한테.”


가슴이 차가워졌다.


“제가 노력하라고요?”


“네. 엄마니까요.”


나는 생각했다.


태민은 착하다.


하지만.


결국 똑같다.


아이는 부담이다.


내 아이는.


장애물이다.


사랑에.


네 달 후.


태민과 싸웠다.


“은서 님. 주말에 여행 갈까요?”


“아이가 있어서…”


“아이는 할머니가 봐주시면 되잖아요.”


“매번 엄마한테 맡길 수는 없어요.”


“왜요?”


“엄마도 힘드시잖아요.”


“그럼 우리는 언제 시간 보내요?”


태민이 짜증 냈다.


“맨날 아이, 아이. 저도 중요하잖아요.”


가슴이 무너졌다.


“뭐라고요?”


“솔직히 말할게요.”


태민이 말했다.


“저 아이 키워본 적 없어요. 쉽지 않아요.”


“그럼 왜 괜찮다고 했어요? 처음에.”


“처음엔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근데 생각보다 힘들어요.”


태민이 말했다.


“은서 님은 항상 아이 먼저고, 전 나중이에요.”


“당연하잖아요. 제 딸인데.”


“알아요. 근데 저도 사람이에요.”


우리는 헤어졌다.


일주일 후.


“미안해요, 은서 님.”


“괜찮아요.”


“저 생각보다 준비가 안 됐나봐요.”


“알아요.”


태민은 나갔다.


나는 혼자 남았다.


또.


하지만.


외로움은 남았다.


여전히.


나는 견디지 못했다.


또.


태민과 헤어진 지 두 달 후.


회사 선배 소개로.


다른 남자를 만났다.


준호.


마흔둘.


자영업.


이혼남.


“아이 있으세요?”


내가 물었다.


“없어요. 전 처하고 아이 안 가졌어요.”


아이 없다.


부담 없겠다.


“은서 씨는요?”


“딸 하나 있어요. 일곱 살.”


“아. 그래요?”


준호가 웃었다.


“귀엽겠네요.”


착해 보였다.


태민처럼.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또.


일주일에 두세 번 만났다.


준호는 다정했다.


“은서 씨. 아이 키우느라 힘드시죠?”


“…네.”


“제가 도와드릴게요.”


따뜻했다.


나는 그 말에 기댔다.


또.


한 달 후.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데이트하고.


영화 보고.


이야기하고.


“은서 씨.”


“응.”


“좋아해요.”


“…저도요.”


또 거짓말.


사랑인지 아닌지 몰랐다.


하지만 필요했다.


두 달 후.


준호가 말했다.


“은서 씨.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뭔데요?”


“사업 자금이 좀 필요해서요.”


“…얼마요?”


“500만 원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멈췄다.


“500만 원이요?”


“네. 다음 달에 꼭 갚을게요.”


준호가 내 손을 잡았다.


“제발요. 이번에 사업 잘 되면 바로 갚을게요.”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외롭지 않고 싶었으니까.


“…알겠어요.”


“고마워요!”


준호가 나를 안았다.


“사랑해요. 진짜.”


500만 원을 보냈다.


준호는 고마워했다.


“꼭 갚을게요. 다음 달에.”


“응.”


“은서 씨 최고예요.”


하지만.


다음 달이 와도.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준호 씨. 돈은요?”


“아. 그게요. 이번 달은 좀 어려워서요.”


“언제 갚을 수 있어요?”


“다다음 달까지는 꼭요.”


“…알겠어요.”


다다음 달.


여전히 돈은 없었다.


“준호 씨.”


“미안해요. 사업이 생각보다 안 돼서요.”


“500만 원이에요. 언제 갚을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응?”


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미안한데, 300만 원만 더 빌려줄 수 있어요?”


“뭐라고요?”


“사업 정리하려면 추가 자금이 필요해서요.”


“안 돼요.”


“은서 씨. 제발요.”


준호가 매달렸다.


“이것만 해결하면 다 갚을게요. 진짜.”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또 주었다.


300만 원.


왜냐하면.


혼자가 되기 싫었으니까.


그 후.


준호는 점점 더 요구했다.


“200만 원만 더요.”


“100만 원만요.”


“이번에 진짜 마지막이에요.”


나는 계속 주었다.


총 1,500만 원.


내 저축.


다.


3개월 후.


준호가 말했다.


“은서 씨. 저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뭐라고요?”


“사업 기회가 있어서요. 부산에.”


“…그럼 돈은요?”


“거기서 벌어서 갚을게요.”


“언제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준호가 말했다.


“꼭 갚을게요. 약속해요.”


준호는 떠났다.


부산으로.


연락이 끊겼다.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사라졌다.


1,500만 원과 함께.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거실에서.


또.


또 당했다.


도현.


재훈.


태민.


그리고 준호.


다 달랐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혼자.


상처.


잃은 것들.


민지에게 전화했다.


“민지야.”


“응. 왜?”


“나… 1,500만 원 잃었어.”


“뭐? 어떻게?”


“남자한테 빌려줬는데… 안 갚고 사라졌어.”


전화기 너머로 침묵.


“은서야. 미쳤어?”


“…알아.”


“또 남자야? 또?”


민지가 소리쳤다.


“은서야. 너 정신 차려. 왜 자꾸 이래?”


나는 울었다.


“…모르겠어.”


“너 계속 똑같은 짓 반복하고 있어.”


민지가 말했다.


“도현, 재훈, 태민, 그리고 이제 준호? 다 똑같잖아. 패턴이야.”


“알아.”


“알면서 왜 멈추지 못해?”


“…외로워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혼자 있으면 미칠 것 같아.”


“그래서 남자 만나고, 또 망가지고, 반복하는 거야?”


“…응.”


민지는 한숨을 쉬었다.


“은서야. 너 이제 그만해야 돼.”


“알아.”


“진짜로.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알겠어?”


“…응.”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왜?”


“나… 돈 좀 잃었어.”


“얼마?”


“…1,500만 원.”


엄마의 표정이 굳었다.


“어떻게?”


“남자한테 빌려줬는데…”


“또 남자야?”


엄마가 소리쳤다.


“은서야! 너 왜 자꾸 이래!”


“미안해.”


“미안하긴! 1,500만 원이야! 너 저축 다 날린 거잖아!”


엄마가 울었다.


“은서야. 너 왜 이렇게 됐어.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겠으니까.


밤.


아이가 잤다.


나는 아이 옆에 누웠다.


아이를 봤다.


내 딸.


유일하게 남은.


그리고 나는.


또.


또 망가졌다.


네 명.


다 다른 방식으로.


나를 망가뜨렸다.


다 달랐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나는 혼자.


상처받고.


잃었다.


나는 알았다.


문제는 남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도현도.


재훈도.


태민도.


준호도.


그들은 그냥 패턴의 일부였다.


진짜 문제는.


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


그리고 이제.


마흔.


혼자.


아이 하나.


저축 없음.


상처투성이.


이게 내 삶이다.*


패턴의 결과.


나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더 이상은 안 돼.


이제.


멈춰야 한다.


이 반복을.


*하지만.


할 수 있을까.


외로움이 또 오면.


또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똑같다.


그리고.


이제.


돈도 없다.


남은 건.


아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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