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 보이는 것들
나는 관찰하는 사람이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걸 본다. 그들은 내가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보고 있을 뿐이다. 보는 것과 쓰는 것 사이에는 시차가 있다. 본 것을 쓰기까지, 나는 그것을 먼저 소화해야 한다.
오늘은 화요일 오후 세 시.
이 동네의 카페는 이 시간이면 늘 한산하다. 엄마들은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이고, 직장인들은 아직 사무실에 있다. 나 같은 프리랜서들만이 이 시간을 소유한다.
창밖으로 유모차가 지나간다.
아라다.
그녀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는다. 유모차를 밀고, 천천히, 마치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듯이. 오늘은 남편도 함께다. 준서. 그는 백팩을 메고 아라 옆을 걷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적당하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다.
나는 그들을 안다.
같은 빌라에 산다. 나는 3층, 그들은 2층.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날씨 좋네요.” 그런 말들. 우리는 이웃이지만,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게 적당한 거리다.
하지만 나는 본다.
아라가 아이를 안아 올릴 때의 표정, 준서가 현관문을 열 때의 뒷모습, 밤 열 시가 넘어도 꺼지지 않는 거실 불빛. 나는 그들의 삶을 본다. 아니, 본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는다.
아라와 준서는 보기에 좋은 부부다. 젊고, 교양 있어 보이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라는 차분하고, 준서는 다정해 보인다. 그들의 SNS에는 북유럽풍 인테리어와 아이의 웃는 얼굴이 가득하다. 댓글에는 “부럽다”, “행복해 보여요”라는 말들이 달린다.
나도 그렇게 썼다.
내 칼럼에, “요즘 젊은 부부들”이라는 제목으로. 아라와 준서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모델로 삼았다. 육아와 커리어를 병행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SNS로 소통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족상. 그런 이야기를 썼다.
편집장은 좋아했다. “긍정적이고 현실적이에요.”
하지만 나는 안다.
긍정적이라는 말은 종종 거짓과 가깝다는 걸. 현실적이라는 말은 보이는 것만 현실로 인정한다는 뜻이라는 걸.
유모차는 이제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본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마감은 이틀 후인데, 나는 여전히 첫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글이 막힐 때마다, 나는 사람들을 본다.
보는 것은 쓰는 것보다 쉽다. 보는 것은 책임이 없다. 나는 그저 기록할 뿐이고,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요즘은 보는 것조차 피곤하다. 사람들의 삶이 내 삶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핸드폰이 울린다.
남편이다. 문자 한 줄. “오늘 늦어.”
나는 답장하지 않는다.
그는 늘 늦는다. 회식이 있거나, 야근이 있거나, 약속이 있거나. 이유는 매번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나는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잠든다.
우리는 결혼한 지 5년째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평범한 부부다. 맞벌이에, 아이는 없고,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동네에 작은 빌라를 얻어 산다. 명절 때 친척들을 만나면 “언제 애 낳을 거야?“라는 질문을 받지만, 우리는 웃으며 대답을 피한다. “좀 더 있다가요.”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우리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서로를 원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를 원하지 않게 됐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 대화가 줄어들었고, 손을 잡지 않게 됐고, 잠자리가 사라졌다.
사랑이 식는 데는 사건이 필요 없다.
그냥 서서히, 눈에 띄지 않게, 마치 겨울이 오듯이 차가워진다.
나는 노트북을 닫는다.
오늘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다. 커피는 이미 식었고, 카페 안은 조용하다. 창밖으로는 해가 기울고 있다. 나는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라와 준서의 집 앞을 지난다.
거실 불이 켜져 있다.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인다. 아이를 재우는 중일 것이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불빛을 본다.
따뜻해 보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 3층으로 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텅 빈 거실이 나를 맞는다. 불을 켜지 않은 채로, 나는 소파에 앉는다.
어둠 속에서, 나는 아래층 거실 불빛을 떠올린다.
나는 그날 밤, 노트에 이렇게 썼다.
“아라와 준서는 행복해 보인다.”
거짓말은 아니었다.